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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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말씀/주보
2026년 4월 8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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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08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91:1-2
1) 지극히 높으신 분의 비밀스러운 곳에 사는 자는 전능하신 그분의 그늘 아래 머물게 되리라.
2) 내가 여호와를 내 피난처이시요, 내 요새이시며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리라.

예배 기원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저녁 예배의 자리로 나아왔습니다.
세상에서 안고 온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사오니, 그 마음들 붙잡아 주시고 지친 영혼이 참된 쉼을 얻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191장 / 내가 매일 기쁘게

기도인도 : 지순자 권사

성경 봉독 : 출애굽기 5:20-23

설교 : 순종의 자리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이 말씀이, 막막하고 답답한 우리의 일상을 뚫고 들어오는 선명한 지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의 자리에서도 주님의 선하신 손길이 우리를 든든히 붙들고 계심을 깊이 깨닫게 하여 주시고,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남은 한 주를 넉넉히 살아갈 힘을 얻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연말 연시라던가, 또는 특별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이제부터는 내 삶의 방향을 온전히 주님께로 돌이키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깊이 결단합니다. 예를 들어, 그래, 내가 올해는 정말 다른 것은 몰라도 수요예배의 자리만큼은 절대로 빠지지 않고 지켜야겠다 라고 마음 먹습니다.

지금 함께 예배드리는 분들 중에도 이런 거룩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처음 나오셨던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일이 바쁘고 피곤한 일이 겹쳐도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이 예배의 자리를 신실하게 잘 지켜오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결심과 순종의 모습으로 교회에 들어오실 때, 바쁘고 지친 일상을 뒤로하고 주님 앞에 나와 엎드릴 때, 우리의 마음속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기대감이 피어오릅니다. 내가 이렇게 피곤함을 무릅쓰고 나의 소중한 시간과 정성을 구별하여 순종하였으니,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내게 큰 은혜를 부어주시겠지? 내가 오랫동안 눈물 흘리며 붙들고 있던 기도 제목들도 이제는 속 시원하게 응답해 주실 것이고, 막혀있던 내 삶의 문제들도 눈 녹듯이 부드럽게 풀려지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거야 '라는 기대를 하게 되죠.

이처럼 우리는 순종의 대가로 내 삶의 문제가 풀리고 기도가 응답되는 축복을 간절히 기대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이러한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갈 때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순종하며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될 줄 알았던 문제들은 오히려 산더미처럼 더 커져만 갑니다. 이제는 좀 풀리려나 싶었던 일들은 더 복잡하게 꼬여만 가고, 갑자기 건강마저 안 좋아지면서 여러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겪게 됩니다. 내 삶에 뭐 하나 속 시원하게 뻥 뚫리는 일이 없고, 캄캄한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은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갈등과 회의감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수요예배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가? 하는 자책감이 들면서, 새벽에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을 결심합니다. 그렇게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시작했지만, 영적인 충만함보다는 피곤함이 먼저 몰려옵니다. 너무 피곤하다 보니 낮에 일하면서 별일 아닌 일에도 짜증을 내게 되고, 늦잠도 자게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짓누르던 답답한 삶의 문제들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문제는 그대로인 상황을 보면서 결국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순종했는데 왜 좋은 일이 생기지 않고 상황이 더 복잡해집니까 하면서 깊은 낙심과 원망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결국 기도의 자리를 포기하게 되고, 순종의 걸음을 멈추어 버리는 성도님들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죄 짓고 방탕하게 살다가 이런 어려움을 당했다면 회개라도 할 텐데, 선하고 헌신된 마음으로 나아갔는데 돌아오는 것은 바뀐 것이 없거나 더 어려워 질 때, 우리는 깊은 영적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이런 억울함과 답답함을 안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도 지금 우리의 모습과 똑같은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화려한 궁전에서 왕자로 남부럽지 않게 자라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이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서, 장인의 양을 치며 처가살이를 하는 40년의 기나긴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모세는 그 40년 동안 젊은 날의 꿈을 모두 잃어버리고 소망 없이 늙어가는 80세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긴 침묵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집트로 다시 내려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라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명을 내리십니다. 모세는 절대로 안 간다고 자신의 무능함을 호소했습니다. 입이 뻣뻣하고 말을 못 한다고 변명하자, 하나님께서는 말 잘하는 형 아론을 붙여주겠다며 끝까지 설득하셨습니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그 강력한 부르심에 꺾여서, 마지못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애굽으로 향하며 순종하게 됩니다.

이집트에 도착한 처음 분위기는 너무 좋았습니다. 모세가 도착하자마자 하나님이 예비하신 형 아론을 만났고, 확신에 차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장로들을 모아놓고 표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는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경배했습니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가는 듯했고, 모세의 마음속에도 아, 일이 잘 풀리는구나.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길 잘했구나 라는 마음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기세를 몰아, 바로 왕에게 당당하게 걸어 나가서, 우리 민족이 광야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우리 백성들을 풀어주십시오 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장벽은 모세의 순진한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 버렸습니다. 바로 왕은 콧방귀를 뀌며,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백성을 보내겠느냐 라고 불같이 화를 내며 거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왕은 예배를 드리겠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끔찍한 보복과 탄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동이 편안하고 게을러 빠져서 제사를 드리겠다는 헛소리를 한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리고는 벽돌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재료인 짚을 더 이상 주지 말고 그들이 직접 들판을 헤매며 주워 오게 하면서, 하루에 만들어야 하는 벽돌 생산량은 단 한 개도 줄이지 말라는 악독한 명령을 내립니다. 짚도 안 주면서 예전과 똑같은 수량을 맞추라는 것은 말되 안되는 명령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짚을 찾느라 온 땅을 헤맸지만 수량을 채우지 못했고, 애굽의 감독관들에게 무자비한 매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보다 더 아픈 것은 어제까지만 해도 환호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된 백성들은 모세를 찾아가 원망과 저주를 퍼부었습니다.당신 때문에 우리가 바로의 눈에 벗어나게 되었고, 이렇게 힘든 일을 겪게 됐다면서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 뿐인데 순종의 결과로 동족들은 학대를 당하게 되었고, 자신은 동족들로 부터 원망과 저주를 당하게 되자 모세의 마음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결국 모세는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2절과 23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제가 언제 가겠다고 했습니까? 못 간다고 수없이 거절했는데, 가라고 등을 떠밀어서 순종하며 왔잖아요. 도대체 왜 바로가 내 말을 듣지 않고 아무 죄 없는 백성들만 더 학대당하게 하십니까? 라며 억울함과 불평을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성도님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며 외치는 모세의 불평 속에서, 혹시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여 예배의 자리에 나오고 기도도 했는데, 내 삶의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가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 모세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세의 이 원망하는 모습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순종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순종에 대하여 우리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순종을 일종의 조건이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원하는 음료수가 무조건 떨어져야 하는 것처럼, 내가 순종이라는 값을 지불했으니, 하나님도 그에 합당한 축복과 문제 해결이라는 보상을 내려주셔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나님과 일종의 거래를 하는 것처럼 순종에 대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순종은 결코 수단이 아닙니다. 순종은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겠다는 마땅한 도리이자 아름다운 모습일 뿐입니다. 결코 우리가 원하는 욕망이나 내 삶의 문제 해결을 이루어내기 위한 조건이나 거래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순종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순종 그 자체를 우상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아름다운 행위가 어느새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밀어내고 순종이 우상의 자리에 앉아버릴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인 것입니다.

예배를 빠지지 않았으니 내 기도가 응답되어야 한다. 착하게 살았으니 나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 라고 당당하게 청구서를 내미는 것은 순종이 아닌 거래인 것이죠.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묵묵히 선을 행하고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유일한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부터 나를 택하시고 십자가 보혈로 나를 구원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순종을 보시고 기뻐하시면, 우리는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보상받은 것이고 그것으로 족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모세가 그토록 원망했던 이유는, 지금 당장은 눈앞에 펼쳐진 출애굽기 5장이라는 이 좁은 현실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조금 뒤에 하나님께서 열 가지 놀라운 재앙으로 애굽의 우상들을 무너뜨리시고, 홍해를 가시며 위대한 승리를 주실 것을 모르고 있었죠.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표를 알지 못하기에 너무나 성급하게 절망하고 맙니다. 우리가 순종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그토록 힘든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나의 계획에 얽매여서 내 상황을 판단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세의 불평과 대조되는 참된 순종의 모습을 보여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 역시 철저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사람인데요. 원래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환상을 보여주시며 길을 막으시고 유럽으로 넘어가라고 강권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지만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아무런 연고도 없는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로 건너갔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계획을 꺾고 순종해서 갔으니, 그곳에는 엄청난 부흥과 화려한 길이 열려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이 철저히 순종하며 도착한 그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귀신 들려 점을 치던 여종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쳐주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종의 주인들이 돈줄이 끊긴 것 때문에 앙심을 품고 바울을 거짓으로 모함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두 발에는 쇠고랑이 채워지는 비참한 현실을 당하게 됩니다. 복음 전파는 고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출애굽기 5장의 모세였다면, 그리고 우리였다면 어땠을까요? 또다시 하나님을 향해 거침없이 따졌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오겠다고 했습니까? 가라고 환상까지 보여주시며 등 떠밀어서 순종하게 해 놓고, 감옥이 뭡니까? 귀신을 쫓아준 선한 일을 했는데 돌아오는 건 왜 이 모양입니까 라며 원망하며 절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바울은 모세처럼, 우리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억울하게 피를 흘리며 옥에 갇힌 그 처참한 결과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매몰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캄캄하고 차가운 감옥에 있을지라도, 지금 이 자리가 하나님이 가라고 명하신 영광스러운 순종의 자리임을 확신했습니다. 육신은 묶여있으나 영혼은 순종 안에서 자유했고, 오히려 그 어둡고 절망적인 감옥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내가 이렇게 억울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찬양하고 기도하면 옥문이 열리겠지 하는 계산에서 나온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전부를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에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감옥이라는 환경을 초월하여 주님 그분 자체만으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렇게 찬양할 때 한밤중에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기적은 바울이 순종을 대가로 얻어낸 보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친히 구출해 주신 놀라운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참된 순종은 세상을 움직이는 수단이 아니라,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깊이 연합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 자체임을 바울은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순종의 가장 완벽한 완성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귀결됩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끝에서 예수님이 마주하신 것은 온갖 조롱과 무자비한 채찍질, 그리고 십자가의 끔찍한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히고, 벌거벗겨지셨으며, 결국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버림을 받으셨고, 예수님의 가장 처절한 순종의 고난을 통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십자가 복음이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여러분의 그 막막한 삶의 자리를 다시 바라보길 원합니다. 순종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여러가지 문제들. 응답 없는 길고 긴 기도의 시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나의 순종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나 공로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내 삶 전체가 십자가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합니다.

당장 눈앞의 상황이 캄캄하고 어려워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창세 전부터 영원까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크고 섬세한 손길이, 여러분의 삶 속에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지를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감옥에서도 끝까지 찬양했던 바울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수없이 매를 맞고, 파선되고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끝까지 순종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은 그를 통해 세계 선교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처음엔 원망하던 모세 역시 불평을 거두고 인내하며 다시 엎드려 순종의 자리에 머물렀을 때, 바로 왕은 두 손 들고 항복하게 되었고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도구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힘들고 어려운 우리 가정을 신실하게 이끄시는 선한 목자되신 주님을 소망 중에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순종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내시어, 내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주님께 순종한다고 하면서 나의 욕망을 채우려 했고, 내 계획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연약하게 흔들리며 불평하고 주님을 원망했습니다. 순종을 나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켰던 우리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감옥 속에서도 찬양했던 사도 바울처럼, 비록 내 현실이 앞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곳이 주님이 명하신 거룩한 순종의 자리라면 기꺼이 감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앞의 상황에 요동치지 않도록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단단히 붙잡아 주시옵소서.

절망과 피곤에 지쳐 사명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떠나려는 성도들 있다면, 강권적으로 붙잡아 주셔서 식어진 그들의 마음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고,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굳건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446장 / 주 음성 외에는

폐회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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