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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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5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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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15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빌립보서 4:6-7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구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십시오.
7) 그리하면 모든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예배 기원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주의 절반을 지나며 다시 예배의 자리로 나아왔습니다.
며칠 동안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살아가느라, 우리의 몸과 마음은 조금 지쳐있기도 합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세상의 일들과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하던 생각들을 이 시간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참된 위로와 쉼이 필요하여 모인 성도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저희의 찬양과 기도를 기쁘게 받아 주시고, 이 저녁,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우리 심령에 넉넉히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540장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기도인도 : 최길환 장로

성경 봉독 : 골로새서 3:12-14

설교 :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엽니다. 세상의 크고 작은 소리들에 치여 복잡하고 피곤해진 우리 심령에, 오늘 들려주시는 말씀이 밝히 보여주시는 길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닫힌 귀를 열어 주시고 굳은 마음은 만져 주사, 남은 한 주를 흔들림 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옷이라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옷이 날개다 라는 말도 있죠. 내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집에서 편안하게 늘어난 잠옷을 입고 있을 때와 아주 중요한 모임에 가려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었을 때를 비교해 보시죠. 정장을 입으면 나도 모르게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말투도 정중하게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옷을 비유를 들어서,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아주 쉽게 알려줍니다. 우리가 운동할 때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수영장에 갈 때는 수영복을 입어야 하고, 산에 오를 때는 등산복을 입고 발목을 꽉 잡아주는 튼튼한 등산화도 신어야 합니다. 각 상황에 맞는 옷을 입어야 편하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 성도들에게도 입어야 할 영적인 옷이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2)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 곧 거룩하고 사랑하심을 받은 사람들같이 긍휼과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으십시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어떤 옷을 입을지 설명하기 전에, 우리가 누구인지부터 먼저 알려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사랑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진짜 정체성이죠.

우리가 뭔가 대단히 잘나서, 혹은 엄청 착해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죄인이었고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인해 이렇게 택함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100퍼센트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죠. 내가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도 이렇게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진짜로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결코 사람들 앞에서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십자가 은혜가 우리를 한없이 낮아지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오래 참을 수 있는 자리로 우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줍니다.

이런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은 당연히 옛날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흙먼지 날리는 건축현장에서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식사를 하는데, 그 먼지투성이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식탁에 앉는 분은 없으시죠? 먼저 깨끗하게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분노, 악한 마음, 남을 헐뜯는 말, 부끄러운 행동 같은, 나쁜 습관이라는 옛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속마음, 즉 성품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 의지나 억지 노력으로 꾸며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꼭 붙어만 있으면 생명을 공급받아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듯이, 내 안에 계신 주님과 동행하며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이런 거룩한 성품들이 성령의 열매로 자연스럽게 내 삶에 맺히게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옷 다섯 가지를 보여줍니다. 바로 긍휼, 친절, 겸손,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입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오래 참음에 대해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낡은 옛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 옷을 입고 교회에 왔다고 해서 모든 게 하루아침에 완벽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대단한 의인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아프고 상처받은 죄인들이 모여서 서로 치료받는 병원과도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아직도 옛날 성질과 습관이 남아있어서, 성도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싹트고 다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거리가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바울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바로 용납과 용서입니다.

용납은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묵묵히 견뎌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줄 때 똑같이 되갚아 주는 게 아니라, 넉넉한 마음으로 품어주는 것이죠. 상대방의 모자란 부분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를 용서하라고 합니다. 용납이 서로 다름을 이해해 주는 거라면,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죄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용납이 성격 차이나 생활 방식의 차이를 품는 거라면, 용서는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의 잘못을 덮어주는 훨씬 더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그리고 용서는 쌍방향입니다. 우리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항상 나 혼자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도 정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무심코 툭 던진 말이 상대방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똑같은 죄인임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따뜻하게 용서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솔직히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머리로는 용서해야지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절대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우리 삶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런 꽉 막힌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 줍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의 비유를 다들 아실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의 무게는 일만 달란트, 즉 내 힘으로는 평생 갚아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빚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이 무서운 빚, 즉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전부 덮어주셨습니다. 조건 없이 탕감해 주신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빚을 탕감받은 우리가, 나에게 아주 작은 상처를 준 사람의 멱살을 잡고 빚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있어서는 안되겠죠. 내 의지나 힘으로는 미운 마음이 드는 형제자매를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십자가에서 받은 그 용서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깊이 기억하고, 분노가 아니라 그 끝없는 용서에 대한 감사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을 의지하여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 비유가 나오는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그 비유 마지막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입니다.
35)만일 너희가 진심으로 자기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행하실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구원을 빼앗기고 지옥에 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고 누려야 할 그 풍성한 은혜와 영적인 기쁨들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메마른 삶을 살게 된다는 아주 아픈 경고의 말씀입니다.


성도님들. 씩씩대며 분노를 품고 남을 미워하는 내 모습이 좋으십니까? 아니면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눈물로 감사하며,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기쁨을 맘껏 누리는 내 모습이 좋으십니까?

나에게 뼈아픈 상처를 준 사람을 끝내 용서하지 않고, 그 사람과 그 사람이 했던 독한 말들을 머릿속에 계속 되새기면서 독을 품고 살면, 결국 가장 큰 피해를 입고 다치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미움을 버리지 못하면, 예배를 드려도 아무런 은혜가 없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해도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죠.

그리고 미움으로 가득 찬 내 마음에 어느새 사탄이 슬금슬금 비집고 들어옵니다. 사탄이 내 마음에 마구 뿌려대는 우울함, 지독한 열등감, 폭발하는 분노라는 감정들이 우리의 영혼을 심각하게 병들게 만듭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독을 품고 사는 건, 결국 내 스스로를 미움이라는 감옥에 꽁꽁 가두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를 조건 없이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과감하게 용서에 도전해 보시죠. 그래야 사탄이 들어올 틈이 완전히 막혀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사과하면 손해 보는 것 같고 억울한 마음이 들겠지만, 홧김에 분노를 쏟아내서 얻는 잠깐의 시원함보다, 주님이 부어주시는 진정한 자유와 참된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이렇게 들어도, 내 마음을 여전히 닫히게 만들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 정말 억울한 피해자일 때 그렇다는 것이죠. 우리가 세상에서 배운 상식으로는, 분명히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가 먼저 와서 고개를 숙이고 사과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지 간에, 영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이 먼저 자존심을 내려놓고 부드럽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요?

잠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 사이에 목초지 때문에 큰 다툼이 일어났을 때, 세상의 상식으로 따지면 아브라함은 나이가 훨씬 많은 윗어른이었고 롯을 거두어 키워준 은인이었으니까 당연히 어린 롯이 먼저 와서 사과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어른으로서의 자기 체면을 과감히 내려놓고, 자기가 먼저 조카 롯을 찾아가서 화해를 청했습니다. 심지어 눈앞에 보이는 가장 좋은 땅마저도 조카에게 흔쾌히 양보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만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현실적인 고민이 생깁니다. 내가 십자가를 생각하며 큰맘 먹고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는데, 상대방의 반응이 미지근하거나 적반하장으로 무례하게 나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보통 어떻게 합니까? 내가 진짜 미쳤지. 다시는 너 같은 인간하고 상종을 하나 봐라 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큰 분노와 앙심을 품고 씩씩대며 돌아오기도 하죠.

하지만 여러분, 나를 밀어내는 상대방의 차가운 반응은 내가 어떻게 통제하거나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내가 넓은 마음으로 손을 내밀면 저 사람도 감동해서 자기 잘못을 깨닫고 펑펑 울면서 사과하겠지? 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너무 순진하거나, 아니면 내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의지해서 내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 딱 거기까지가 내가 해야 할 온전한 순종입니다. 내 역할과 책임은 거기까지인 것이죠. 굳어있는 상대방의 완악한 마음을 깨뜨리고 변화시키시는 일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실 일입니다.

그러니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상대방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억울해하시거나 분을 품지 마십시오. 말씀에 순종하려고 손을 내밀었던 그 귀한 순간에 다시 화를 내게 되면, 다시 사탄에게 내 마음을 내어주는 틈을 주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 사람의 교만을 깨뜨리실 날을 묵묵히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려 주는 것. 바로 그것이 오래 참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용서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시급하게 적용해야 할 중요한 대상이 한 명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수많은 믿는 분들이 과거에 자신이 지은 부끄러운 죄나 뼈아픈 실패에 얽매여서 스스로를 가혹하게 학대합니다. 다 나 때문이야, 내가 그때 그렇게 해서 일이 이렇게 망쳐진 거야. 나 때문에, 나 때문에 하면서 매일 가슴을 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심으로 회개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의 그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온 우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시고,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 라고 꼭 안아주시는데, 왜 피조물인 우리가 그 말씀을 거부하고 자꾸 스스로를 정죄의 감옥에 가두고 계십니까? 그것은 절대 겸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자신을 따뜻하게 토닥여주며 스스로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용서했다면, 그 다음으로 용서해야 할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바로 남편, 아내, 자녀, 부모님, 그리고 내 형제들이죠.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내 마음에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를 가장 속속들이 잘 아는 가족과 친한 지인들이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우리를 가장 아프게 찌르는 것이죠.

도대체 왜 그럴까요? 왜 내가 제일 사랑하는 가족이 나에게 그토록 날카롭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그들의 마음속을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아직 낫지 않고 곪아 있는 과거의 아픈 상처가 숨어 있습니다. 제발 나 좀 따뜻하게 사랑해 달라는 애타는 목마름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밖에서는 꾹 참았던 그런 아픔과 외로운 마음들이, 가장 만만하고 편한 가족에게 가시 돋친 말로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가족들의 지친 어깨를 가만히 바라봐 주시고, 그 거친 말 속에 숨겨진 상처를 이해하려고 한 번만 더 노력해 주십시오. 나에게 쏘아붙이는 그 듣기 싫은 잔소리 속에 숨어있는 사랑받고 싶은 외로운 마음을 부드럽게 읽어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모든 권면의 결론을 14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14)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온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옷을 입을 때는 얇은 속옷 위에 아주 헐렁하고 품이 넓은 겉옷을 걸치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허리에 튼튼한 띠를 꽉 매어야만 옷이 땅에 끌리지 않고 거추장스럽지 않게 되고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온전한 옷차림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 옷의 비유를 들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완성하는 결론이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이라는 이 멋진 영적 옷들을 흐트러지지 않게 꽉 묶어주고 완성시켜 주는 마지막 띠가 바로 사랑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죠. 내 마음에서 사랑이 빠져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이 없는 긍휼은 상대를 기분 나쁘게 깔아뭉개는 동정이 되어버립니다. 사랑이 없는 자비는 내 돈 많음을 자랑하는 위선이 됩니다. 사랑 없는 겸손은 속으로 욕하며 굽실거리는 비굴함이 됩니다. 사랑이 없는 온유함은 내 시커먼 속을 감추는 차가운 가식이 됩니다. 사랑이 빠진 오래 참음은 그저 참다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무서운 화병이 될 뿐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수십 년을 땀 흘려 봉사한다고 할지라도, 그 행동의 밑바탕에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튼튼한 띠를 매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시끄러운 소음일 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죠. 그저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마무리는 반드시 사랑으로 완성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영적인 옷들은 내 결심이나 의지로 입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완전히 다스려 주실 때, 그리고 우리가 그 다스리심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자연스럽게 맺히는 생명의 열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매일매일 단정하게 입으시고, 마지막으로 모든 영적 옷차림의 완성인 사랑의 띠를 단단하게 묶으시길 바랍니다. 매일매일 오래 참음의 옷을 입고 사랑의 띠를 단단히 매며 제자의 길, 순종의 좁은 길, 믿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십자가의 그 큰 사랑을 거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자존심을 뻣뻣하게 앞세우며 형제를 미워하고 끝까지 용서하지 못하며 살았습니다. 우리의 차가운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냄새나는 옛사람의 옷을 벗어 던지게 하시고,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새 옷을 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힘과 결심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사오니,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만져주시고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그 미움과 분노의 마음들을 십자가 앞에 온전히 내려놓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띠를 단단히 매고, 믿음의 길 묵묵히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183장 / 빈 들에 마른 풀같이

폐회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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