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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3월 25일 수요예배 | 운영자 | 2026-03-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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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25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4:8 8) 내가 편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한 곳에 살게 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뿐이십니다. 예배 기원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 오늘 하루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지켜주시고, 이 저녁,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지칠 때도 있었고, 당장 내일 해야 할 일들로 마음이 분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만큼은 분주했던 마음을 멈추고, 주님의 넓은 품에 머물길 원합니다. 예배의 자리로 나아온 사랑하시는 성도들의 마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412장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기도인도 : 성경 봉독 : 에베소서 5:15-21 설교 :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순종의 발걸음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고단했던 하루를 지나고, 이제 저희의 마음을 열어 생명의 말씀 앞에 섭니다. 내 생각과 굳어진 습관으로 닫혀 있던 마음을 이 시간 열어주시고, 주시는 말씀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다 이해되지 않던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는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시고, 다시 며칠간의 일상을 묵묵히 걸어갈 용기를 얻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수요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우리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도, 신실하게 우리를 인도해주신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평안한 저녁, 함께 말씀을 나누며 우리의 영혼이 참된 쉼과 새 힘을 얻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아마도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사람의 속마음을 깊이 헤아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보면, 부모는 자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아는 것 같지만 때로는 그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할 때가 있고, 자녀 역시 자신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희생의 무게를 훗날 자신이 부모가 되고 나이가 들어서야 조금씩 이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조차도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다 안다고 장담하기 어렵죠.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도 이토록 길고 험난한데, 하물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일은 어떻겠습니까?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오신 우리 성도님들 마음속에는 누구나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알고 싶어 하는 거룩한 갈망이 있으실 것입니다. 내 인생의 수많은 굴곡들, 때로는 기뻤고 때로는 남몰래 눈물 흘려야 했던 그 지나온 시간들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가 진정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기를 간절히 소망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 저를 향한, 그리고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알고 싶어하는 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시고, 차근차근 설명해주시고 이해시켜주시면, 그제서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의 전체 지도를 쫙 펼쳐서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시고, 우리의 이성을 완벽하게 납득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길로 가면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오고, 이 선택을 하면 어떤 열매가 맺히는지 명확한 청사진을 쥐어 주셔야만 아멘하고 기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베소서 5장 15절에서 17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15)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행할 것인지 주의 깊게 살펴 어리석은 사람들같이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들같이 사십시오. 16)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17) 그러므로 지각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십시오. 15절에서 지혜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보고 행하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16절에서는 그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이 세월을 아끼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그 세월을 아끼는 모습이,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방법이 된다는 것인데요.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행할지를 세밀하게 살피고, 그것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머리로만 고민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일상의 성실한 발걸음으로 순종하며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 신실한 행동의 흔적들이 하루하루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진정 무엇인지를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되는 놀라운 영적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다 이해하고 난 후에야 돌다리를 두드리며 안전하게 움직이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결코 그런 식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믿음으로 먼저 행동하고 순종의 발걸음을 뗀 후에야,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명확하게 깨달아지는 것이죠. 이해가 행동을 낳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행동이 하나님의 섭리를 향한 온전한 이해를 낳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거장들의 삶을 보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처음부터 100퍼센트 이해하고 길을 떠난 사람은 없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75세의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하나님은 그가 도착할 가나안 땅의 지도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서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이 장면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해 장차 유업으로 받을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라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지, 그곳에 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묵묵히 발걸음을 뗐습니다. 그리고 그 기나긴 순종의 여정을 걷는 동안, 그는 비로소 자신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무려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잊혀진 존재로 조용히 늙어가던 80세의 모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애굽으로 가서 고통받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며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아멘하며 기쁘게 뛰어나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할 것입니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입니다." 라며 끊임없이 핑계를 대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머리로는 들었지만, 마음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가 들고 있던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시고,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겼다가 깨끗하게 회복되는 놀라운 기적을 눈앞에서 직접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버텼고 결국 모세는 기쁨과 확신에 차서 나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애굽을 향해 떠밀려 내려가게 됩니다. 애굽에 도착한 사역 초기에도 모세는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바로 왕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 형 아론의 등 뒤에 숨어 아론의 입을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재앙이 거듭되면서 모세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네 번째 재앙부터는 두려워 떨며 물러서 있던 나약한 모습의 모세는 점차 사라지고, 그가 직접 나서서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소심했던 모세를 이토록 위대한 선지자로 바꾸어 놓았을까요? 머리로 이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명령을, 비록 처음에는 두렵고 억지로였을지라도 직접 순종하여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내밀라 하실 때 지팡이를 내밀고, 선포하라 하실 때 두려운 입술을 열어 선포하는 그 순종의 행위를 통하여,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지팡이를 내밀 때마다 나타나는 기적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 행동으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모세의 영혼 속에는 하나님의 크심과 그 깊으신 구원의 뜻이 선명하게 새겨졌습니다. 나중에 모세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척박하고 메마른 광야로 당당하게 걸어 나옵니다. 만약 모세가 광야로 나가기 전에 식량 조달은 어떻게 할 것인지, 마실 물은 어디서 구할 것인지, 맹수와 적들의 공격은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인간의 논리로 다 이해하고 대책을 세운 후에 움직이려고 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단 한 발자국도 애굽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대신 믿음으로 먼저 홍해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행동할 때 홍해가 갈라졌고, 순종할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으며, 지팡이를 내리칠 때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모세는 이 모든 순종의 행동들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의 본질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발걸음을 떼었던 그 작은 순종들이 하루하루 쌓이고 쌓여, 마침내 하나님을 완벽하게 신뢰하며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위대한 영적 거장의 자리까지 그를 이끌고 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통찰력과 지혜는 가만히 앉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의 발걸음을 묵묵히 내딛는 일상의 성실한 행동과 순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이 영적 원리를 깊이 묵상하시고 삶에 순종으로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본문에서도 주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는 비결은, 매일매일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자세히 살피고 믿음으로 묵묵히 행동하는 순종에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상황의 유불리를 따져보고, 나에게 이익이 될 때만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18절에서 매우 강력하고도 실제적인 권면을 던집니다. 18) 또한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방탕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십시오. 왜 갑자기 바울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대조하고 있을까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언가에 지배를 받고, 무언가에 채워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헛된 쾌락에 취하고, 재물에 취하고, 명예에 취하며, 때로는 내 고집과 자존심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 연약한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취해 있으면 영적인 분별력을 잃게 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귀가 막혀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진정한 영적 처방전을 제시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은 산속에 들어가서 며칠 밤을 새우며 기도할 때만 임하는 거창하고 신비로운 현상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성령으로 충만해지기 위해 실천해야 할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행동 지침을 19절부터 21절까지 기록해 두었습니다. 즉, 성령 충만 역시 구체적인 순종의 행동을 통해 우리 삶에 채워지는 놀라운 은혜라는 사실인 것이죠. 본문은 성령 충만을 받아 누리는 성도의 구체적인 삶의 열매이자 행동을 세 가지로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이 세 가지의 순종이 곧 성령을 내 안에 담아내는 튼튼한 그릇이 되는데요. 첫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찬양하며 예배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19절입니다. 19) 여러분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께 찬송하며 우리는 언제 노래를 부릅니까? 보통 기쁘고 즐거울 때 흥얼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의 찬송은 내 기분이 좋을 때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삶이 외롭고 쓸쓸할 때, 아프고 육신이 쇠하여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을 때에도 우리는 찬송해야 합니다. 홀로 집안에 앉아 있을 때나 공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때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며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찬양의 가사를 의지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부르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노래가 넘쳐나는 삶, 이것이 주님의 뜻을 깨달아가는 첫 번째 행동입니다. 두번째는, 범사에 감사하는 묵묵한 순종입니다. 20절입니다. 2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일에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범사에라는 말은 모든 일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라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 눈앞에 감사할 만한 이유나 기쁜 조건이 주어졌을 때만 감사한다면, 우리 인생에 순수하게 불평 없이 감사할 수 있는 날이 과연 며칠이나 되겠습니까? 내 자녀가 내 마음대로 잘 따라주고, 건강이 넘치고, 재물이 넉넉할 때 감사하는 것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물이 앞을 가리는 상황 속에서도 먼저 찬양하라, 먼저 감사함으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도저히 감사할 조건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지나온 세월 동안 나를 인도하신 그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 순종의 감사가, 이 고난 속에 숨겨진 주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묵묵히 감사를 선택하며 행하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세번째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입니다. 21절입니다.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일수록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이 내 자존심과 고집입니다. 내 방식이 옳다고 믿어온 수십 년의 습관이 있기에, 남에게 나를 굽힌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게 되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철저히 복종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크신 십자가의 사랑이 내 마음에 들어올 때, 내 고집을 꺾고 이웃을 이해하는 것이 내 안에 자리 잡게 됩니다. 내 옆에 앉은 성도,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아내와 남편, 그리고 내 자녀들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그들이 예수님께서 당신의 귀한 피를 흘려 사신 너무나도 존귀하고 아름다운 생명임을 온전히 인식하게 될 때,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회복과 평안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먼저 섬기는 행동,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지혜로운 자들의 아름다운 삶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남은 생애, 당장은 내 머리로 모든 상황의 앞뒤가 꿰어지지 않고 다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감정이 선뜻 동의하지 않아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말씀 앞에 묵묵히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디시기를 바랍니다. 조금은 느릴지라도 순종의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원하심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얽히고설킨 내 인생의 실타래를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엮어가시며, 마침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의 퍼즐이 완성되어 감을 기쁨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삶의 끝자락에서, 지나온 모든 세월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귀한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매일매일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혀 찬송과 감사와 섬김의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름답게 살아 내는 지혜로운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과 쇠약해져 가는 육신의 한계 속에서도,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깊고 변함없는 사랑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먼저 입술을 열어 영광의 찬송을 부르게 하여 주시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바라보는 영적인 눈을 밝혀 주시옵소서. 우리의 남은 헛된 자존심을 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여 주시고, 주님을 경외함으로 내 곁에 주신 사랑하는 가족들과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을 온전히 품고 사랑하며 섬기는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을 부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남아 있는 귀한 세월을 불평이 아닌 감사와 찬양으로 아름답게 채워가는 지혜롭고 복된 삶이 되게 하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288장 /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폐회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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