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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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8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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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18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145:18-19
18) 여호와께서는 주를 부르는 모든 사람들, 진심으로 주를 부르는 모든 사람들 가까이에 계십니다.
19) 주께서는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예배 기원
우리의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게 하여 주시고, 이 저녁, 평안한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저희 마음을 무겁게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여러 생각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저희의 찬양과 기도를 기쁘게 받아 주시고, 이 자리에 모인 성도들의 마음속에, 주님으 평강으로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456장 /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기도인도 : 이승숙 집사

성경 봉독 : 시편 3:1-8

설교 : 다시 부르는 은혜의 노래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이 시간, 세상의 여러 소식들을 향한 저희의 마음을 잠시 닫고, 주님의 음성에만 귀 기울이길 원합니다. 오늘 들려주시는 말씀이, 남은 한 주간을 살아갈 든든한 힘과 위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답답했던 마음은 풀어주시고, 걱정하던 일들 앞에서는 주님의 지혜를 얻게 하사,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여 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성도님들. 여러분의 삶과 가정 위에 주님의 크신 은혜가 풍성하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참으로 많은 고난과 마주하게 됩니다. 아무런 잘못 없이, 사람들의 오해와 억측 때문에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도 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의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지난 삶을 가만히 뒤돌아보면, 사실 나의 어리석은 선택, 욕심, 나의 죄악 때문에 비롯된 고난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 내가 왜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하며 후회하는 순간들이 우리 인생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견디기가 쉽습니다. 사람들은 내 마음을 몰라줘도 하나님이 다 아시니까,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질 거야 하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습니다. 내가 결백하기 때문에 마음은 당당하고 평안합니다. 다윗도 젊은 시절에, 사울 왕에게 억울하게 쫓겨 다닐 때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늘 당당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의로운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견디기 힘든 고난은, 내 잘못과 내 죄로 인해 찾아온 고난입니다. 내가 스스로 돌아봐도 변명할 여지가 없고, 믿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는 깊은 자책감이 몰려올 때, 우리는 무너져 내립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시편 3편의 다윗이 바로 그 참담한 자리, 인생의 가장 깊고 어두운 바닥에 서 있습니다. 이 시편 3편의 제목을 보면 이 시가 쓰인 배경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다윗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영웅이었습니다. 주변의 수많은 적국을 물리친 전설적인 왕입니다. 그런 그가 지금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적군도 아니고, 정치적 경쟁자도 아닌,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친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며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맨발로 울며 성을 빠져나갔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상황에서, 왜 싸우지 않고 도망갔을까요?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다윗의 곁에는 함께 산전수전을 겪은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칼을 뽑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비극이 압살롬의 잘못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궁에 머물며 권력의 단맛에 취해 영적으로 무뎌졌을 때, 다윗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 맨 앞으로 몰아넣어 아주 잔혹하게 살해하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선포했던 무서운 말씀을 다윗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2:9-10
9)네가 헷 사람 우리아를 칼로 쓰러뜨리고 그 아내를 네 것으로 만들지 않았느냐?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했다.
10) 그러니 그 칼이 네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 끔찍한 죄악의 씨앗이 자라나, 장남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범하고, 이에 분노한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는 왕실의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자녀들의 악행 앞에서 아무런 훈계도, 징계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의 묵인과 영적인 침체가 아들의 반역이라는 칼날이 되어서 자신의 목을 겨누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자신의 죄가 너무나 무섭고 아팠던 것입니다.

이 참담한 심정으로 다윗은 1절과 2절에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1) 여호와여, 내게는 적들이 어찌 이리 많습니까! 나를 거스르고 맞서는 사람이 많습니다.
2 )많은 사람들이 나를 두고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얻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다윗은 '많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을 따르는 반역의 무리가 많았고,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오는 군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적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겠습니까? 지금 다윗이 많다, 많다 하고 부르짖는 것은, 단순히 군대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나를 치는 적들이 많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을 거역한 죄가 참으로 많다는 끔찍한 사실이었습니다. 다윗은 지금 자기의 죄를 철저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나를 따르던 수많은 백성들이 다 돌아선 것이, 그 많던 나의 충신들이 다 돌아서서 지금 나를 치는 것은, 결국 내 죄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 죄로 인한 고난 앞에서 핑계 대지 말고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 죄가 이렇게 많습니다. 저는 이토록 부족하고 부패한 사람입니다 라고 내 죄를 철저히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대적이 이토록 많고 나를 치는 자가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대적합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내 죄 때문입니다… 다윗은 지금 이 위급한 상황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내 안에 있는 이 많은 죄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통곡하며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궁지에 몰린 다윗을 보며 수군거립니다. 이제 다윗은 끝났다. 저렇게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도 그를 버리셨다.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이것이 세상의 논리이고, 인과응보의 법칙이죠. 그리고 마귀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 귓가에 속삭입니다. 너 같이 죄 많은 인간이 무슨 하나님의 자녀냐? 너는 끝났다. 이런 차가운 비난과 정죄의 화살이 다윗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성도님들. 우리도 이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내 잘못으로 무너졌을 때, 주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내 내면의 죄책감 때문에, 나는 이제 끝났구나, 하나님도 나를 포기하셨을 거야 라며 다 포기하고 주저 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진리는 세상의 논리와 다릅니다. 세상은 죄가 많으니 구원받지 못한다 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가 아무리 흠이 많고 더럽고 씻을 수 없는 죄악 투성이라 할지라도, 그 바닥에서 엎드려 나의 많고 많은 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다시금 우리를 안아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다윗이 피난길에서 시므이라는 자를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사울의 친족이었던 시므이는 도망가는 다윗을 향해 돌을 던지며,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하면서 저주와 모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곁을 지키던 호위대장 아비새가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그를 막아섭니다. 다윗은 그 사람의 저주 속에서 자기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았습니다. 왕이라는 권위를 다 내려놓고, 철저하게 죄인의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억울한 욕을 먹을 때, 무조건 맞서 싸우고 분노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내게 깨닫게 하시려는 뜻이 있구나 하며 겸손히 엎드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깊은 절망과 고통의 한가운데서, 다윗은 놀라운 믿음의 선포를 시작합니다. 3절입니다.
3)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내 방패이시며 내 영광이시며 내 머리를 드시는 분이시니

다윗을 둘러싼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군대는 여전히 쫓아오고 있고, 너는 구원 못 받는다는 세상의 조롱 소리도 여전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세 가지로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첫째, 주는 나의 방패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방패는 병사의 온몸을 사방에서 완벽하게 감싸서 보호해 주는 거대한 대형 방패를 뜻합니다. 내 착한 행동이나 내 의로움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아닙니다. 다윗은 수많은 대적에게 둘러싸여 죽을 위기에 처해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의 방패가 자신을 사방으로 완벽하게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둘째, 다윗은 주는 나의 영광이시요 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영광의 상징이었던 화려한 왕관도, 권력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그는 모든 영광을 빼앗긴 패배자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절망의 자리에서 다윗은 선포합니다. 하나님, 세상 사람들이 내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도, 하나님 한 분만이 나의 결코 빼앗길 수 없는 진짜 영광입니다.

셋째, 주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지독한 죄책감과 아들의 반역으로 인한 수치심 때문에 다윗의 고개는 땅을 향해 꺾여 있었습니다. 인간의 어떤 위로로도 들 수 없었던 그 절망의 머리를, 하나님께서 친히 다가오셔서 자비롭고 강한 손으로 부드럽게 들어 올려 주신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아, 네가 비록 죄를 짓고 고난을 당하지만, 내가 너를 용서했다. 너는 여전히 나의 사랑하는 자녀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아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서 그는 기도합니다.
4) 내가 여호와께 큰 소리로 부르짖을 때 주의 거룩한 산에서 내게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도망치는 신세에 무슨 기도가 나오고 무슨 응답이 있겠습니까마는, 다윗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소에 말씀으로 훈련되고,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던 사람은, 그 순간에도 기도가 나오는 것이죠.

다윗은 피난을 떠날 때,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매고 따라오려 하자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언약궤를 부적처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리적인 언약궤가 내 곁에 없을지라도, 내가 있는 이 광야의 한복판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확신으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5절입니다.
5) 내가 누워 잠들었다 깨어나는 것은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시는 것이니

여러분, 밤에 누워 자고 아침에 깨어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닌 평범한 일상 같지만, 지금 다윗의 상황은, 아들이 칼을 들고 쫓아옵니다. 언제 암살자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광야의 두려운 밤입니다. 수치심과 죄책감, 분노와 억울함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잠을 잡니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깨어납니다. 하나님이 그를 안아주시고 붙들고 계심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응답이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이미 응답받은 사람처럼, 문제가 해결된 사람처럼 평안히 누워 자는 것입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서 아내가 편안하게 잠을 잔다면, 그것은 운전자를 향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다윗은 내 인생의 운전대를 쥐고 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기에, 그 두려운 밤에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살아 숨 쉬며 일어난 것은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밤새 나를 지키시고 붙드셨기 때문이구나. 오늘 하루도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사명을 다하며 살아내라는 하나님의 뜻이구나.

그리고 여기서 "나를 붙드시는 것이니"에 쓰인 히브리어 단어는 무거운 것을 밑에서 단단히 떠받쳐 지탱해 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과 미래가, 자기가 밤새 눈을 뜨고 불안해하며 노력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지탱해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내 모든 것이 달려 있음을 철저히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큰 위기 속에서 걱정을 내려놓고 평안히 잠을 잔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 삶의 진짜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가장 위대한 믿음의 행위이며 최고의 예배였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 성도님들 중에 여전히 내 죄 때문에 낙심하고,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다윗처럼 철저한 회개와 믿음의 기도를 통해 다시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의 스데반 집사를 잔인하게 죽이는데 동참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살겠다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했던 비겁한 사람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들이 지은 죄를 생각하면 평생 골방에 숨어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격 없는 자신들을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일어나서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물론 죄를 짓고도 회개 없이 뻔뻔하게 살면 안 됩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회개한 후에도,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여전히 낙심하고 좌절만 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아무 일도 하실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체험한 다윗은 이제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6절입니다.
6)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거슬러 둘러싼다 해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라던 다윗이,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도 두렵지 않다"라고 고백합니다. 상황은 단 하나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그는 도망자이고, 적들은 그를 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이 변했습니다. 말씀이 기억했으며,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을 확신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크고 두려워 보여도,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세상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크기보다 하나님의 크심을 바라볼 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다윗은 7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7)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내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주께서 내 모든 원수들의 턱을 치시고 악인들의 이를 부숴 주소서!

다윗의 기도는 점잖지 않습니다. 솔직하고 거칠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 품에 안긴 자녀의 특권입니다. 거룩한 척, 괜찮은 척 포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억울함, 분노, 두려움, 수치심을 있는 그대로 아버지께 쏟아놓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괴롭히는 저 악한 자들의 기세를 꺾어주십시오. 저들의 입을 다물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정직한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윗은 마지막 8절에서 모든 승리의 결론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8) 구원이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나의 도덕적 깨끗함이나 종교적인 열심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자격 없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십자가의 은혜만이 나를 살리고 구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셔서 잠자리에 누우실 때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내 삶에는 여전히 아프고 억울한 문제가 많습니다. 내 안에는 여전히 부끄러운 죄악이 있습니다. 천만인이 진을 친 것처럼 현실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며, 수치심에 꺾인 내 머리를 들어 올려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내 인생의 결론은 내 능력이 아니라 십자가 은혜에 달려 있음을 굳게 믿고, 이 모든 문제의 짐을 주님께 맡겨드린 채 오늘 밤 저는 주님 품 안에서 평안히 잠을 자겠습니다.

이런 믿음의 기도를 통해, 정죄와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의 놀라운 안식과 승리를 매일의 삶 속에서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의 아버지 하나님. 다윗의 그 많은 죄악이 바로 나의 죄이며, 내 힘으로 인생의 주인이 되려 했던 교만과 어리석음이었음을 깊이 회개합니다. 긍휼히 보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주님이 나의 유일한 방패이시며 참된 영광이심을 굳게 붙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상황이 변하지 않고 천만인이 우리를 에워싸서 위협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철저히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무거운 짐과 염려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따뜻한 날개 아래서 평안히 눕고 자는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365장 /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폐회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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