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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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1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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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11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116:5-7
5) 여호와는 은혜롭고 의로우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가 가득하십니다.
6) 여호와께서는 순박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분이셔서 내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7) 오 내 영혼아, 편히 쉬어라.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네게 관대하셨도다.

예배 기원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며칠 동안도 저희의 일상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저녁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참된 안식이 되시는 주님, 온 마음을 다해 올려드리는 찬양과 기도를 기쁘게 받아주시고, 이 자리에 모인 성도님들의 심령 위에 위로와 평강을 부어 주시옵소서.
이 예배가 온전한 쉼과 회복이 되게 하여 주시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길 소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88장 / 내 진정 사모하는

기도인도 : 이수임 권사

성경 봉독 : 창세기 25장 7-8절

설교 : 믿음의 완주자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저녁 흩어져 있던 저희의 마음을 모아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여 나아온 주님의 자녀들 기억하여 주시고,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들을 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말씀따라 믿음으로 살아갈 결단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수요예배로 나오신 성도님들. 여러분의 삶과 가정 속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가 마침내 끝을 맺는 마지막 장면 앞에 서 있습니다. 창세기 25장 7절과 8절은 아브라함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5:7-8
7)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습니다.
8) 아브라함이 복된 삶을 살다가 늙어 백발이 돼 숨을 거두고 자기 조상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던 갈대아 우르에서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니, 그는 1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 굳게 붙들고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 100년 동안 아브라함은 결코 흠 없이 완벽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흉년이 두려워 이집트로 도망쳤고, 살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부끄러운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고, 약속의 아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첩을 취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처럼 연약하고, 두려움에 떨며, 자주 흔들리던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 마지막을 기록한 8절 말씀의 원어를 살펴보면, 단지 노환으로 육신의 기력이 소진되어 숨을 거두었다는 생물학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충분히 만족할 만큼 가득 채워졌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모든 사명과 인생의 숙제들을 훌륭하게 완수하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진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맞이하는 가장 복된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빈 껍데기처럼 허무하게 늙어 죽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꽉 찬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표현인 것이죠.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이 눈물과 기쁨으로 걸어온 100년의 발자취를 천천히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진정으로 기대하시는 참된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남겨야 할 진정한 유산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의 175년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칭찬하며 증언합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해 장차 유업으로 받을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고대 문명의 중심지로, 오늘날의 대도시처럼 안전과 풍요가 보장된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가라고 명령하신 가나안은 이름조차 생소하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황량한 낯선 땅이었습니다. 경찰도 군대도 없던 고대 부족 사회에서, 75세의 노인이 평생의 기반과 친척이라는 튼튼한 울타리를 등지고 떠난다는 것은, 사실상 생존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무모한 결정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행동합니까? 아주 철저하게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예상되는 위험 요소는 없는지 꼼꼼히 따져봅니다. 그것은 똑똑하고 지혜로운 행동이죠.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계산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복을 주고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 붙잡고,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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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눈앞의 계산기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히브리서 11장 10절은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의 순종은 눈에 보이는 땅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위대한 소망이었던 것입니다.

진짜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내 눈앞에 앞으로의 완벽한 청사진이 펼쳐져 있고,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질 때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이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확인일 뿐입니다. 진짜 믿음은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안개 속에서도, 당장 내일 실패할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도,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묵묵히 떨리는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죠.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는 내일 당장 병에 걸릴지,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밤에 평안하게 잠들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도착할 정확한 목적지를 미리 알아서가 아닙니다. 캄캄한 길에서 우리의 손을 잡고 이끄시는 가이드, 인도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지도를 달달 외우는 것보다, 나와 함께 걷는 인도자가 실수하지 않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신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답답함을 토로하며 이렇게 조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 인생의 계획표를 속 시원하게 다 보여주십시오. 제가 언제쯤 이 지독한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이 질병이 언제쯤 낫게 될지 그 결과를 보여주시면 제가 아무 의심 없이 헌신하며 순종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전체 지도를 한 번에 펼쳐서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매일 아침 우리가 눈을 뜰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은 아직 걱정하지 마라. 오늘 내가 여기 너와 함께 있으니, 오늘 하루 딱 한 걸음만 나와 함께 손잡고 걷자.

하나님은 우리를 왜 그렇게 답답하게 이끄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결과물에만 집착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 목적지로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 아주 깊이 대화하며 사귀는 성숙한 사람으로 빚어지기를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의 결과를 다 알고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주님을 애타게 찾겠습니까? 모든 것이 100퍼센트 확실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그저 편하게 눈으로 즐기는 확인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마자 겪게 될 끔찍한 기근이나, 이집트에서 아내를 빼앗길 뻔한 수치스러운 위기, 그토록 아끼던 조카 롯과의 뼈아픈 갈등에 대해 단 한 번도 미리 경고하지 않으셨습니다. 100세에 아들을 얻기까지 25년이라는 긴 기다림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미리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고통과 두려움에 떨며 엎드려 우는 그 현장마다 직접 찾아오셔서 그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15:1입니다.
1) 그 후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임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방패니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뢰의 본질입니다. 내 상황이 내 맘에 쏙 들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캄캄하고 절망적이며 꼬여버린 상황마저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뒤집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가 믿기에, 오늘 하루를 묵묵히 견뎌 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무려 1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 신뢰를 단단히 키워갔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고 아내를 누이라 속이던 연약하고 겁 많은 사람이었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목숨보다 귀한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마저도 하나님이 바치라 하실 때 기꺼이 제단에 눕힐 수 있는, 위대한 믿음의 거목으로 자라났습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놓인 인생이 안개가 너무 짙고 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십니까? 왜 내 인생은 남들처럼 뻥 뚫린 고속도로가 아니라 이토록 굴곡 많은 흙길만 이어지는지 원망스러우십니까? 우리 앞을 가로막는 안개는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 망하게 하려는 저주가 아닙니다. 내 힘으로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더 세게 잡을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내 힘으로 결과를 미리 확인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을 향한 진짜 신뢰가 싹트기 시작하는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거듭하면서, 그의 삶에 나타난 또 다른 분명한 변화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물질을 대했던 태도와 삶의 자세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가축과 은금이 넘쳐나는 엄청난 부자였다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토록 그 많은 재물에 자기 마음을 빼앗기거나 돈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그 큰 복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 복을 세상을 향해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이런 훌륭한 물질관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연약하여 넘어지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세상의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훈련을 계속해서 시키셨습니다.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의 목자들과 좋은 땅과 물을 두고 다툼이 일어났을 때,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습니다. "우리가 다투어서는 안 된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라고 했죠.

당시에 비옥한 땅과 물을 차지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좋은 땅을 남에게 양보한다는 것은 나와 내 가족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렇지도 않게 양보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내 삶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진짜 주인은 비옥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창세기 14장에서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소돔 왕이 막대한 전리품과 금은보화를 아브라함이 가지라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눈앞에 쌓인 보물을 단칼에 거절합니다. 14장 23절입니다.
23) 왕께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신발 끈 하나라도 받지 않겠습니다. 왕께서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돈에 기대어, 세상 사람의 눈치를 보며 부자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자신의 부요함과 성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혼자 잘살기 위해 재물을 창고에 쌓아두는 썩은 물 같은 저수지가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대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이웃을 향해 아낌없이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로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남들보다 더 많은 재물, 더 강한 건강, 더 좋은 지식을 주셨다면, 그것은 나 혼자 누리라고 주신 이기적인 축복이 아닙니다. 나보다 부족하고 고통받는 누군가에게 내 손을 펴서 나누어 주라는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언젠가 아브라함처럼 생을 마감하고 주님의 심판대에 서는 날, 내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내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는가를 보고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경이 말하는 복의 개념이 무엇인지 나누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라는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이 구절을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헌금하면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고, 사업이 번창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의 전부라고 착각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런 은총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진짜 복의 본질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짜 아브라함의 복의 정체를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8절에서 아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8)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인해 이방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실 것을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이방 사람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전해주신 선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복음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해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이며,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온 세상 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핵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위대한 구원의 복을 위해 자신의 100년을 기꺼이 헌신했습니다. 그는 살아서 그 모든 약속이 자기 눈앞에서 완벽히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죽을 때 소유한 땅이라고는, 아내를 묻은 무덤 막벨라 굴 하나뿐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헛수고하고 실패한 인생 같지만, 히브리서는 그가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했지만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으며"라고 기록합니다. 그는 먼 훗날 자신을 통해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으로 인해 이루어질 거대한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어야만 합니다.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 우리 가정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께 돌아오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꿔야 할 영원한 복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100년의 믿음의 길은 꽃길이 아니라 눈물과 한숨이 가득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캄캄한 길에서 단 한 번도 그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고난 중에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의 살아계신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도 아브라함의 삶처럼, 믿음의 뿌리가 더욱더 깊어지고, 이웃을 품는 마음은 더욱더 넓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비록 육신은 늙고 약해져 갈지라도, 영혼은 날마다 독수리처럼 비상하는 은혜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수하고, 주님 품에 안기며, 정말 수고했다, 잘하였도다. 나의 사랑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칭찬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사명을 마치고 충분히 만족할 만큼 가득 채워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던 것처럼, 우리의 죽음 또한 끝이 아니라 우리를 가득 채워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영광스러운 안식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우리 인생의 방향을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계산을 내려놓고 순종했던 아브라함처럼, 저희도 주님께 내 삶을 온전히 맡기는 굳센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신 복을, 나 혼자 움켜쥐는 자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아파하는 이웃과 어두운 세상을 향해 흘려 보내는 구원의 통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은 낡아질지라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게 강건하여지게 하여 주시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여 평안히 주님의 품에 안기는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301장 / 지금까지 지내온 것

폐회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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