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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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말씀/주보
2026년 3월 4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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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04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이사야 26:3-4
3) ‘주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주께서 평화를 넘치도록 부어 주십시오. 그가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4) 영원히 여호와를 신뢰하라. 여호와 그분만이 영원한 바위이시기 때문이다.

예배 기원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이 저녁 은혜의 자리로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분주했던 많은 시간들을 내려놓습니다. 예배를 통해 새 힘을 얻게 하여 주시고, 말씀으로 저희의 심령이 충만케 되는 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430장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기도인도 : 이세훈 장로

성경 봉독 : 창세기 23장 1-2절

설교 : 믿음의 토대, 막벨라 굴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위로와 소망의 하나님.
이 저녁, 세상으로 향하던 저희의 시선을 거두고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어온 성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오늘 주시는 말씀이 우리 삶의 든든한 등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 마음에 얽힌 근심들이 풀어지게 하여 주시고 근심이 변하여 찬송이 되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우리 성도님들. 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23장 말씀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절과 2절을 보면 1)사라는 127세까지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녀가 누린 수명이었습니다.
2)그녀는 기럇 아르바, 곧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서 사라를 위해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여성의 수명과 죽음, 그리고 장례를 어떻게 치렀는지 이렇게 자세하게 적힌 곳은 창세기 23장이 유일합니다. 이것은 사라가 단순히 아브라함이라는 족장의 평범한 아내로 머물렀던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함께 믿음의 여정을 걸으며 여러 가지 시험과 어려움을 함께 견뎌 낸 아내이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함께 이루어간 믿음의 동역자였던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 때, 사라는 예순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녀도 익숙하고 화려한 문명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을 의지하여 짐을 꾸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나그네의 삶은 결코 낭만적인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와 그랄 땅으로 이주했을 때는, 끔찍한 수모와 공포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하나님이 자식을 주겠다고 하셨는데도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아흔 살 할머니 때, 하나님은 아들 이삭을 안겨주셨고 이삭과 함께 보낸 37년의 세월은 참으로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행복했던 시간이 끝나고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평생을 함께 고생했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브라함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을까요?. "아브라함이 가서 사라를 위해 슬퍼하며 울었습니다"라는 말씀 속에 있는 히브리어 단어들은, 그냥 점잖게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말한 것이 아니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극한의 애통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아브라함은 아주 잔인한 현실에 부딪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라 고향을 떠난지 60년이 지났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장례를 치를 땅 한 평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도 주시고, 땅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죽은 그 슬픈 순간, 그 약속의 땅에서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된 땅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3절부터 보면, 아브라함은 그 땅에 원래부터 살고 있었던 헷 족속 사람들과 협상을 시작하는데요. 창세기 23장 4절에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4)”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사는 이방 사람이며 나그네입니다. 죽은 제 아내를 장사 지낼 수 있게 여러분들의 땅을 제게 좀 나눠 주십시오”

여기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이방사람과 나그네라고 부른 것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닙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임시로 머무는 자로서 이 나라의 시민권도 없고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도 전혀 없는 불리한 신분이라는 법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수많은 가축을 거느린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여전히 남의 땅에 얹혀사는 나그네와 이방인으로서 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몸을 낮추고, 아내를 묻을 묘실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요청을 들은 헷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아주 마음씨 좋은 대답을 내놓습니다. 6절을 보시면, 6)“내 주여, 들어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입니다. 우리 묘지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을 골라 돌아가신 부인을 장사 지내십시오. 어른께서 돌아가신 부인을 장사 지내신다는데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자기 묘지라고 해서 거절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방인인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높여 부르면서, 돈을 낼 필요 없이 자기들의 빈 묘실에 그냥 묻어도 된다고 제안을 합니다.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얼마나 존경하고 높이 평가했는지, 당시 아브라함의 사회적 지위와 명망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대화만 보면 헷 족속 사람들은 아주 넓은 마음을 가지진 자비를 베푸는 착한 이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당신의 법률과 문화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 친절함 속에는 아주 교묘하고 무서운 계산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돈도 많고 명망도 있는 아브라함은 왜 이때까지 땅 한 평도 가질 수 없었을까요? 그리고 땅을 사려고 해도 왜 쉽게 살 수가 없었을까요?

지금은 돈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땅을 사고팔 수 있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땅을 사고 파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법적으로도 원주민끼리가 아닌 이방인에게 땅을 파는 것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고, 그 땅 주인이 속한 공동체의 복잡한 원칙을 따라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헷 족속은 아브라함이라는 이 강력한 이방인이 자신들의 땅에 대한 영구적인 소유권을 갖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그들의 말대로 무덤을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빌려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첫째로, 아브라함은 평생 헷 족속들에게 빚을 진 사람이 됩니다. 혹시 땅 주인이 마음을 바꿔서 나가라고 하면 죽은 아내의 뼈를 안고 쫓겨나야 하는 불안한 처지가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기는 헷 사람들의 무덤을 함께 쓴다는 것은, 이방 문화 속에 섞여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겉으로는 친절해 보였지만, 사실은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방식 아래 묶어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이 친절함 뒤에 숨겨진 함정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에브론이라는 사람이 소유한 막벨라 굴을 충분한 대가를 주고 사겠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그러자 마침내 땅 주인인 에브론이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5)“내 주여, 들어 보십시오. 그 땅은 은 400세겔이 나가지만 저와 어른 사이에 그런 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냥 어른의 돌아가신 부인을 장사하십시오.”

아브라함의 간절한 부탁에, 에브론은 은 사백 세겔이라는 엄청나게 큰 액수를 부릅니다. 이것은 사실상 땅을 팔 의도가 없다는 것을 돌려서 말한 것입니다. 당시 은 십 세겔은 한 사람이 일 년간 일해서 받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은 사백 세겔은 한 사람이 40년간 일하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만 만질 수 있는 상상도 못할 비싼 금액인 것입니다. 에브론이 이렇게 엄청난 땅값을 부른 것은 그 땅이 정말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자신은 팔 마음이 없으니 말도 안되는 비싼 가격을 불러서라도 아브라함이 포기하게 만들려는 계산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엄청난 가격을 듣자마자, 깍아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은 사백 세겔을 지불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땅을 사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똑똑히 볼 수 있는 대목인데요.

도대체 아브라함은 왜 이렇게 무리한 듯 보이는 거래를 한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지금 동네 사람과 단순하게 부동산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과 온 세상 앞에서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은 분명 사라의 죽음으로 시작했지만, 창세기 23장 총 20절의 말씀 중에서 사라의 죽음에 관한 구절은 단 두 구절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나머지 열여덟 구절을 온통 땅을 사는 이야기로 길게 기록했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창세기 12장 7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7)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무려 60년이나 지난 오래된 약속인데요, 이제서야 아브라함은 비로소 자기 이름으로 된 자기 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을 때 이런 기대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약속하셨다면, 그 복이 바로, 즉각적으로, 그리고 속 시원하게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땅을 주겠다 약속하셨으니,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신기한 방법으로 비싼 땅이 공짜로 내 차지가 되어 있는 그런 식의 응답을 상상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가끔은 그렇게 급하고 신기한 방법으로 일하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이야기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묵묵히 기도하는 우리의 삶을 보면 하나님은 보통 그런 식으로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우리에게 일하시는 방식은 아주 긴 세월 동안 성숙하게 다듬으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굳게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를 지으면 돌이키고 회개하게 하시면서 아브라함을 계속해서 성장시켜 가신 것입니다.

땅을 주시는 방식도, 오늘부터 여기가 무조건 네 땅이다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헷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돈을 주고 땅을 구입할 수 있도록 미리 부유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한 오늘 헷 사람들의 반응에서 볼 수 있듯이, 무덤을 거저 주겠다고 할 정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는 훌륭한 인품도 길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복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을 올바르게 잘 다룰 수 있는 성숙한 성품까지 함께 키워 주시는 것입니다.

복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을 때에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긴 시간 속에서도, 인내하며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굳건한 마음을 빚어 가시는 것이죠. 그리고 마침내 주신 그 복을 나 혼자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을 가지고 이웃과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넓은 여유와 넉넉함까지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런 깊으신 하나님의 마음은 바라보지 못한 채 그저 눈앞의 복이라는 그 결과물에만 매여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힘들고 원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이 땅 사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고 자세하게 서술한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태어나기도 전인 창세기 15장 13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분명히 알아라. 네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가 돼 그들을 섬길 것이며 400년 동안 그들은 네 자손을 괴롭힐 것이다.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겠지만, 다른 나라에서 400년 동안이나 종살이를 하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예언이었습니다. 그러나 14절부터 16절을 보면 하나님은 절망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400년 만에 큰 재물을 이끌고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어디로 돌아온다는 것일까요?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살았던 이 땅, 헤브론 마므레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시신 앞에서 이 약속을 정확히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은 사백 세겔이라는 큰 돈을 지불하면서 자기 가문의 영원한 고향을 구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훗날 자손들이 끔찍한 종살이를 하다가도 400년 뒤에 돌아와서 다시 뭉칠 수 있는 영적인 구심점을 미리 마련해 둔 것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다. 내 후손들이 비록 고생을 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죠. 어떤 분들은 이것을 ‘믿음의 알박기’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믿음은 후대로 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창세기 47장 30절을 보면, 야곱이 죽을 때 아들 요셉에게 이렇게 유언을 합니다. 30)내가 내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이집트에서 메고 올라가 조상들의 무덤 곁에 묻어 주기 바란다.”

야곱이 묻히기를 원했던 조상의 무덤이 바로 오늘 아브라함이 구입한 막벨라 굴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을 마음 깊이 새겨들었던 요셉 역시, 자신이 죽을 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맹세시킵니다. 창세기 50장 24절과 25절입니다. 24)그런 후에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죽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히 여러분을 돌아보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데리고 나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5)요셉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맹세시키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여러분을 돌아보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제 뼈를 이곳에서 갖고 나가 주십시오.”

요셉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믿음은 바로 아브라함이 은 사백 세겔을 주고 산 막벨라 굴과 창세기 15장의 언약의 말씀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보여준 믿음의 모습들을 잘 살펴보면, 오늘 땅을 사고파는 협상 과정이 왜 이렇게 길게 기록되어 있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아내 사라는 죽었고, 아브라함 자신도 언제 육신의 장막을 벗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 자신은 지금 이 가나안 땅을 누리지 못하고 곧 인생을 마감하겠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후손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며 그 땅의 주인이 될 것을 확신했기에, 엄청난 값을 치르고서라도 막벨라 굴을 사기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막벨라 굴은 그저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비극적인 모습이며, 그 과정 중에 바가지를 쓴 어리석은 거래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눈에 그 굴은 결코 끝이 아니었습니다. 막벨라 굴은 단순히 아내와 자신의 시신을 묻을 매장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전적으로 믿고 기다리겠다는 구체적인 믿음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님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서 후손들이 돌아올 영적인 고향을 만들어 주었듯이, 오늘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이 방황하다가도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막벨라 굴을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특별히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첫발걸음을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는데요. 하나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 자녀들과 교회의 다음 세대들이 돌아갈 곳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저들의 인생을 주관하여 주시고, 끝까지 하나님만 믿고 따르는 축복받은 세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혹시 저들이 믿음의 길을 떠나 방황하는 시간이 오더라도 그들을 다시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의 자리를 지켜내는 우리 모든 믿음의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하고 소망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향해 큰 대가도 기꺼이 지불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받는 복이 진짜 복이 되게 하시려고 오랜 시간 우리를 다듬으시며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도 알게 하셨습니다.

솔직히 저희는 늘 눈앞에 보이는 복만을 구하기에 급급했지, 내 삶 자체가 세상을 향해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내 마음대로 빨리 편안해지기만을 바랬던 저희의 좁고 어리석은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의 육신의 자녀들과 영적인 자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들이 항상 주님의 자녀답게 믿음 안에 서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잠시 길을 잃을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여 주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저희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384장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폐회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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