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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월 28일 수요예배 | 운영자 | 2026-01-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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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28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37:23-24 23) 선한 사람의 걸음을 여호와께서 정하시니 그분은 그 길을 기뻐하십니다. 24) 그는 넘어지더라도 아주 엎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으로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배 기원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1월의 마지막 수요일, 분주했던 한 달을 마무리하며 주님 앞에 섭니다. 새해의 벅찬 기대는 어느새 익숙한 일상이 되었지만,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도 주님이 주신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넘어질지라도 아주 주저앉지 않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고 계시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이 저녁, 말씀으로 동행하는 은혜를 깨닫게 하여 주시고, 다시 믿음의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438장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기도인도 : 류시성 집사 성경 봉독 : 창세기 20장 1-18절 설교 : 우리의 수치를 덮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주시는 말씀이 우리 삶의 단단한 기준이 되기를 원합니다.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여 주시고, 그 말씀 위에서 내 삶을 해석하는 믿음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수요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신 여러분의 심령 위에, 주님이 주시는 따뜻한 위로와 하늘의 평강이 가득 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느덧 1월의 마지막 수요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새해 첫날, 뜨거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달.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되돌아 보면 감사한 일들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아쉬운 기억들도 떠오르실 겁니다. 우리는 늘 그렇습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할 때만 해도 우리는 굳은 결심을 합니다. 하나님, 올해는 정말 다르게 살아보겠습니다. 더 거룩하게, 더 신실하게,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보겠습니다. 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월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의 그 결심은 흐지부지되고, 작심삼일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마도 올 한 해가 저물어갈 때쯤이면, 우리는 또다시 지금과 비슷한 후회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으로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지와 육신은 너무나 연약하기에 번번이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입니다. 때로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서, 내 내면에 깊숙이 뿌리박힌 죄성과 악한 습관들이 끈질기게 되살아나는 것을 보며 깊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그 순간, 우리의 인격이 단번에 변하고 도덕적으로 완벽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즉시 솔로몬처럼 지혜로워지고, 영적으로 예민해지며, 예수님처럼 온화한 성품으로 변하게 된다면,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신분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육체 안에는 자기를 사랑하고, 죄짓기를 즐거워하는 옛 본성이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남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일 수 있지만, 거룩해지는 과정, 즉 성화는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치열한 싸움인 것이죠. 갓 태어난 아기가 하루아침에 어른이 될 수 없듯이, 우리의 신앙도 넘어지고 깨지며 자라나는 성숙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긴 여정 동안, 죄는 마치 그림자처럼 우리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큰 위로를 받는 이유는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도 우리와 전혀 다른 인물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그들의 영웅담만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철저한 실패와 연약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모세는 혈기를 참지 못해서 살인을 저질렀던 사람이고, 삼손은 평생 정욕에 이끌려 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다윗은 충직한 부하의 아내를 범하고 살인을 교사하는 끔찍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성경은 이들의 치부를 절대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충격적인 실패를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오랫동안 머물던 익숙한 땅 마므레를 떠나서 남쪽 그랄 땅으로 이사를 갑니다. 성경은 그가 왜 이사를 했는지 명확한 이유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당시 상황을 짐작해 볼 때, 아마도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아서 멸망할 때, 엄청난 연기와 재가 온 하늘을 뒤덮었을 것입니다. 목축을 하는 아브라함에게는 더 이상 살기 힘든 환경이 되었겠죠. 무엇보다, 조카 롯이 살던 곳이 하루아침에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면서 아브라함은 큰 충격과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이제 낯선 이방 땅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아브라함은 또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25년 전, 믿음의 여정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집트에서 썼던 바로 그 방법,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는 그 수법을 다시 꺼내 듭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말합니다. 여보,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거친 사람들이오. 당신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름다우니, 사람들이 당신을 차지하려고 나를 죽일까 겁이 나오. 그러니 우리 예전 이집트 때처럼 오누이라고 합시다. 그래야 당신 덕분에 내 목숨도 부지하고 대접도 받을 수 있지 않겠소? 만약 여러분이 사라였다면 심정이 어떠셨을까요?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이 비겁한 제안을 듣고 엄청 화가 나셨겠죠. 여보, 또 그 소리에요? 지난 25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셨는데, 아직도 하나님을 못 믿어요? 라고 따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지금 당장의 생존이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급박하고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창세기 12장의 거짓말은 그가 믿음이 어릴 때, 초보 신자일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로부터 무려 25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동안 전쟁에서 이겼고,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으며, 불과 얼마 전에는, 내년 이맘때 아들이 있으리라는 구체적인 약속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위기가 닥치자, 그 모든 은혜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정확히 25년 전의 그 불신앙의 자리로 되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브라함이 겁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막상 내 생존과 이익이 걸린 결정적인 위기 앞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내 안전과 내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기보다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내가 직접 통제하려는 불신앙의 태도인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모습,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삶의 어려움 앞에서 우리도 자주 하나님을 잊어버리죠. 적당한 거짓말과 타협이라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비겁함은 곧 우리의 비겁함입니다. 아브라함의 거짓말은 겉으로는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죽이지 않았고, 사라를 궁으로 데려갔으며, 아브라함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가 끊어질 뻔한 위기였습니다. 지금 아비멜렉의 궁으로 끌려간 사라는 장차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이삭이 태어나야 할 거룩한 통로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 하나 건지겠다고, 그 소중한 약속의 통로를 이방 왕의 첩으로 밀어 넣어버린 것입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그다음 장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아브라함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내를 사지로 몰아넣고 이웃을 속였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왕 아비멜렉은 어떻습니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책망하실 때, 그는 너무나 억울해하며 항변합니다. 20장 4-5절입니다. 4) 아비멜렉은 아직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말했습니다. “내 주여, 주께서는 죄 없는 백성도 멸하시려 하십니까? 5) 그가 제게 ‘그녀는 내 여동생’이라고 했고 그 여자도 역시 ‘그는 내 오빠’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 일을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당시의 상식과 법도를 지켰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는 남의 아내를 탐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브라함을 불러 호통을 칩니다. 20장 9절입니다. 9) 그리고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 말했습니다. “네가 우리에게 어찌 이럴 수 있느냐?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네가 나와 내 왕국에 이렇게 엄청난 죄를 불러들였느냐? 너는 내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너는 내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여러분, 이 말은 본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셔야 할 책망인데, 지금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왕이 믿음의 조상을 꾸짖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11절에서 11)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저는 ‘이곳은 분명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내 아내 때문에 나를 죽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나를 죽일까 봐 그랬다고 변명했지만, 정작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주여라고 부른 사람은 이방인 아비멜렉이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거망동한 사람은 아브라함 자신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비판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법을 지키고, 상식을 지키고, 윤리를 지키려 애쓰는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가 은혜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세상의 도덕적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많이 있죠. 아브라함의 모든 계획은 실패했고, 망신은 망신대로 당했습니다. 인과응보의 법칙대로라면 아브라함은 "너 같은 비겁한 놈은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을 찾겠다"라는 말씀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바로 이 벼랑 끝에 몰린 순간에 인간의 모든 실패를 덮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 드라마를 목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아브라함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아브라함이 저지른 이 엄청난 사고를 직접 수습하십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말씀하십니다. 6)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또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역시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 일을 했다는 것을 안다. 네가 내게 죄짓지 않도록 내가 너를 막은 것이다. 그 때문에 내가 너로 하여금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게 한 것이다. "내가 너를 막은 것이다." 이 말씀에 보시죠. 아비멜렉이 사라를 범하지 않은 것은 그가 도덕적으로 탁월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과 환경을 주권적으로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시면서도, 절대적인 섭리로 최악의 죄를 짓지 못하도록 억제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으로 지키지 못한 아내를, 아브라함이 두려움 때문에 내팽개친 언약의 거룩함을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지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 큰 죄를 짓지 않고 무사히 지냈다면, 그것은 내가 거룩하고 의지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를 막아주셨고, 죄지을 기회를 차단해 주셨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호칭입니다. 7절입니다.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주어라. 그는 예언자니 그가 너를 위해 기도해 주면 네가 살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그녀를 돌려주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사람이 다 죽게 될 것이다.” 지금 아브라함의 꼴이 어떻습니까? 거짓말쟁이, 겁쟁이, 자기 살겠다고 아내를 팔아먹은 못난 남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꾸짖는 왕 앞에서 "그는 나의 예언자다. 선지자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지금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이삭을 바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 아닙니다. 가장 밑바닥을 보인 실패의 현장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그 순간에 하나님은 그를 변호하고 계십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와 맺은 언약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기 때문에, 그가 비록 진흙탕에 넘어져 뒹굴고 있어도 하나님께 그는 여전히 존귀한 선지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변호하십니다. 그가 비록 지금은 엉망이지만, 그는 내 사람이다. 그를 건드리지 마라. 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것이 우리가 붙들어야 할 소망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작은 실수 하나를 가지고도, 네가 무슨 믿는 사람이냐, 네가 무슨 집사고 권사냐 라고 조롱할지 모릅니다. 여러분 스스로도 거울을 보며, 나는 자격이 없다 라고 자책하며 괴로워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여러분을 향해 오늘도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우리의 어떠함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빈손으로 쫓겨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비멜렉을 통해 많은 재물을 얻게 하시고, 은 천 개를 주어 사라의 수치를 가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 집안의 태를 여시며 치료해 주셨습니다. 실패자가 도리어 축복의 통로가 되어 피해자를 위해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자신이 머리 굴려 생각해낸 거짓말이라는 안전장치가 자기를 지켜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올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통장 잔고, 인맥, 나의 경험... 이 모든 것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분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보호하심만이 우리의 영원한 방패가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밤, 주무시기 전에 여러분을 계속해서 넘어뜨리는 익숙하고 오래된 죄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또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넘어진 그 자리에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 죄가 나에게 달콤하게 손짓할 때, 그때는 나의 꾀가 아닌, 나를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조차 두려움 앞에서는 무력하게 무너지는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통해, 나이가 들고 신앙의 연륜이 쌓였음에도 여전히 세상이 두렵고 내일이 염려되어 인간적인 계산과 거짓 뒤에 숨으려 했던 저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님, 연약함과 악한 본성으로 인해 똑같은 죄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리고, 아브라함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치를 가려주신 그 놀라운 사랑이 오늘 저희에게도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연약하여 넘어진 그 자리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두려움 때문에 비겁해지는 인생이 아니라,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비록 부족할지라도 우리를 세상의 중보자로 부르셨사오니, 우리의 기도를 통해 가정이 살고, 일터가 회복되고, 이웃이 치유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542장 / 구주 예수 의지함이 폐회 : 주기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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