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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월 21일 수요예배 | 운영자 | 2026-0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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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21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139:1-3, 10 1) 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니 나를 아실 것입니다. 2) 내가 앉고 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에서도 내 생각을 아십니다. 3) 주께서는 내가 길을 다니는 것과 내가 눕는 것을 아시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샅샅이 알고 계십니다. 10) 어디에서든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으로 나를 꼭 붙드실 것입니다. 예배 기원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때로는 무의미해 보이고 때로는 버거웠던 우리의 걸음을 주님은 다 지켜보셨음을 믿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다 말하지 못했던 속상함과 남몰래 삼켰던 한숨까지도 아시는 주님 앞에 섭니다. 이 시간, 차가운 겨울바람에 움츠러들었던 저희의 마음이 주님의 따뜻한 말씀 안에서 녹아지기를 원합니다. 내가 앉고 일어섰던 그 모든 자리에 주님이 함께 계셨음을 믿으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445장 /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기도인도 : 김주환 집사 성경 봉독 : 창세기 19장 23-32절 설교 : 심판을 이긴 은혜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 이 시간 말씀이 거울이 되어, 저희 영혼의 현주소를 정직하게 비추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포장된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을 만지시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수요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영혼의 깊은 울림과 회복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십니까? 아마 대다수의 성도님들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은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능히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선하시고,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인자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위로를 얻고 안식을 누립니다. 이것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조심스럽게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여기까지만 생각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듣고 싶어 하고, 믿고 싶어 하는 달콤한 속성들 뒤에 엄연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지만, 악에 대해서 영원히 눈감아 주시는 분은 결코 아니십니다. 창세기 6장을 보시면,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실 정도로 슬퍼하셨고, 결국 대홍수라는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창세기 11장에서는 인간의 교만이 하늘 끝까지 닿으려 했던 바벨탑 사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한순간에 그 문명을 뒤엎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만 있으시고, 인간이 저지르는 끔찍한 죄악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면, 죄에 대한 형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더 이상 공의의 하나님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십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안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임계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19장의 본문은 바로 그 하나님의 공의가 불처럼 타오르는 현장입니다. 천사들은 이미 롯에게 소돔 성의 멸망을 예고했습니다. 밤이 지나고 이제 동이 트려 하는데, 롯은 여전히 떠나지 않고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천사들이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딸의 손을 잡아끌어서 성 밖으로 이끌어 냅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도망가라고 다급하게 명령하죠. 그런데 이 긴박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롯의 반응은, 20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20) 보십시오. 저기 있는 성이 도망치기에도 가깝고 작은 마을이니 제가 그곳으로 도망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목숨이 보존될 것입니다.” 천사는, 이곳은 곧 유황불이 끓어 넘치는 지옥이 될 테니 무조건 높은 산으로 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산은 너무 멀고 험하니, 저기 보이는 작은 도시로 가게 해달라고 흥정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롯은 이 멸망의 순간에도 자신의 안락함을 포기하지 못한 것입니다. 거칠고 불편한 산이나 동굴보다는, 비록 작더라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 자신이 이제까지 누려왔던 문명의 혜택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임박한 그 순간까지도, 소돔에서 누리던 풍요와 안락함을 놓기 싫었고, 도시적인 삶을 떠나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롯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구원은 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 거친 산으로 가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그냥 적당히 세상 문화도 즐기고, 몸도 편안한, 이 작은 성읍 정도에서 신앙 생활하게 해주십시오. 목숨은 구했으니 이제 된 것 아니냐는 안일함, 저 소돔 성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당장 내 몸 하나 편한 곳에 머물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롯의 대답 속에 숨어 있습니다. 결국 천사들은 롯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하나님은 강제로 우리를 로봇처럼 조종하지 않으시고, 때로는 우리의 미련한 고집조차 허용하시며 깨닫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롯이 소알에 들어갈 그 때를, 23절에서 “해가 지평선 위로 솟아올았을 때”라고 기록합니다. 밤새 공포에 떨며 도망쳤던 롯의 가족에게 그 아침 햇살은 얼마나 평화롭게 느껴졌을까요? 아, 이제 살았구나. 이제 끔찍한 밤은 지났구나 라고 안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24절과 25절입니다. 24) 그러자 여호와께서 바로 하늘로부터, 곧 여호와께로부터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을 비처럼 쏟아부으셨습니다. 25) 여호와께서 그 성들과 온 들판과 그 성에 사는 모든 사람들과 그 땅의 모든 식물들을 다 뒤엎어 버리셨습니다. 성경은, 해 돋는 아침과 유황 불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이 가장 평안하다라고 생각할 때,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라고 방심할 때 임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은 “여호와께서 바로 하늘로부터, 곧 여호와께로부터”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두 번이나 반복하며 이 심판의 주체를 명확히 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것을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영국의 지질학자 그레이엄 해리스 박사는 이 지역의 지하에 엄청난 가연성 메탄가스층이 있었고, 지진판이 움직이면서 가스가 분출되고 불이 붙었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연 법칙을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을 단순한 지진이나 자연재해로 치부하려고 하겠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이것은 자연적 우연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 곧 “여호와께로부터” 내린 불이었다고 말합니다. 당시 소돔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3-4절 말씀을 보면, 3)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자기 정욕을 따라 행하고 조롱하며 4) 말하기를 “그가 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똑같이 이렇게 그대로 있다”라고 할 것입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은,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똑같이 그냥 있다 라고 하며 심판을 부인합니다. 어제도 해가 떴고 오늘도 떴으니 내일도 뜨겠지,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냐는 안일함을 말하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도둑같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며 오래 참으시지만, 더 이상 돌이킬 가능성이 없을 때, 그 날에는 심판이 집행되는 것입니다. 소돔은 단순히 불에 탄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 도시를 “뒤엎어 버리셨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그 도시가 자랑하던 번영, 질서, 가치관, 그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리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심판의 현장에서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바로 롯의 아내입니다. 26절입니다. 26) 그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롯의 가족이 소알 근처에 이르렀을 때, 롯의 아내는 끝내 참지 못하고 소돔을 바라보고 말았습니다. 천사들이 그렇게 뒤 돌아보지 마라. 멈춰 서지 마라 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명령을 어겼습니다. 왜 돌아보았을까요?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었을까요? 쾅쾅거리는 소리가 궁금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녀의 몸은 천사의 손에 이끌려 성 밖으로 나왔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그 멸망할 도시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사랑했던 타락한 이웃들, 화려하고 안락한 생활... 그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다라는 원어를 살펴보면, 단순히 힐끗 보는 것이 아닙니다. 열망을 가지고 응시하다. 주의 깊게 바라보다 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생명보다, 소돔이 주던 쾌락과 재물을 더 가치 있게 여겼던 것입니다. 아마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 소알까지 왔으니 이제 안전하겠지. 잠깐 뒤돌아본다고 무슨 일이 있겠어?. 마치 롯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사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그녀는 롯을 따라 신앙생활을 했고, 아브라함과도 교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지배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소돔의 화려한 문화와 가치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보면 사해 근처에 기괴하게 서 있는 소금 기둥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이드들은 농담처럼, 저게 롯의 아내입니다 라고 소개하기도 하는데요. 성도님들, 롯의 아내는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채, 영원히, 뒤를 돌아본 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대조되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사라는 소돔 같은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 투박한 장막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장막이라고 하니 운치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불편한 유목민의 천막 생활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의 화려함을 쫓는 대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살았을 때,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사라는 90세에 약속의 아들을 얻었고, 열국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순종의 길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데, 자꾸만 두고 온 세상의 미련이 발목을 잡습니다. 그때가 좋았는데, 내가 그 돈을 어떻게 모았는데... 그러나 여러분,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시선을 돌려 아브라함을 보겠습니다. 27절과 28절에 보면, 27)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그가 여호와 앞에 섰던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28) 그는 소돔과 고모라와 그 들판의 온 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가 보니 그 땅의 연기가 화로에서 피어나는 연기처럼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 앞에 섰던 곳으로 갑니다. 그곳은 하나님께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말아 주옵소서 라고 간절히 매달렸던 중보기도의 자리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소돔을 보니, 화로에서 피어나는 연기처럼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결국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억장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아, 끝났구나. 내 조카 롯도 저 불길 속에서 죽었겠구나. 내가 더 말렸어야 했는데... 그는 롯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기도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깊은 절망감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창세기 19장의 핵심 구절인 29절 말씀이 등장합니다. 29) 하나님께서는 들판의 성들을 멸망시키실 때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롯이 살던 성들을 뒤엎으실 때 그 뒤엎으심 가운데서 롯을 구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롯이 구원받은 이유는, 의로워서도, 믿음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습니다” 여기서 기억하셨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단순히 머릿속으로, 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 라고 떠올리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언약을 기억하여 구체적으로 행동하다 라는 강력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롯의 자격 없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산 위에서 눈물로 기도하던 아브라함을 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롯을 그 심판의 한복판에서 강권적으로 끄집어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기도가 허공에 흩어졌다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가장 신실한 방법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왜 아직까지 살아있습니까? 그 많은 죄악과 실수 속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의 자리에 있습니까? 우리의 공로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사 우리를 건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도가 부족해도, 내 삶이 연약해도, 우리 주님의 중보가 있기에 우리는 안전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이렇게 끝났으면 좋겠지만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롯의 이후의 모습은 우리를 씁쓸하게 합니다. 30절을 보시죠. 30) 롯과 그의 두 딸은 소알에서 사는 것이 무서워 소알을 떠나 산에서 살았습니다. 그와 두 딸은 동굴에서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소알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더니, 막상 소알에 가니 겁이 났습니다. 소돔이 멸망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봤으니 트라우마가 생겼겠죠. 이 작은 성도 언제 불벼락을 맞을지 몰라 라는 생각과 이방인들 틈에서 해코지를 당할까 봐 두려웠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피난처를 버리고, 스스로 산으로 들어가 동굴에 숨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그는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단절된 동굴 속에서 끔찍한 죄악이 잉태됩니다. 롯의 두 딸들이 모의를 합니다. 31-32절입니다. 31) 큰딸이 작은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는데 이 땅에는 세상의 관습을 따라 우리와 결혼할 사람이 없구나. 32) 자,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아버지와 동침해 우리 아버지의 자손을 보존하자.” 이 딸들의 말을 보시죠. “이 땅에는 세상의 관습을 따라 우리와 결혼한 사람이 없다.” 그들은 지금 극도의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으니 세상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당시에는 큰 재앙을 당한 지역의 여성들과는 결혼하지 않는 그런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들의 입장에서는 소망이 없어진 것이죠.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그것이 근친상간이라는 패륜적인 죄일지라도, 어떻게든 살길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손을 잇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방법은 하나님의 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관습을 따라, 즉 자손을 잇는 다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목적이 선하다 해도 수단과 방법이 악하면 그것은 죄입니다. 결국 롯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딸들과 동침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함께 길을 떠났던 롯의 말년은 이렇게 비참하고 부끄러운 동굴 속의 범죄로 끝이 납니다. 성경은 롯이 언제 죽었는지, 어디에 묻혔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치욕만 남긴 채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리를 따라 산 아브라함과, 세상의 도리와 자신의 안위를 따라 산 롯의 결말은 이렇게나 다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는 창세기 19장의 참혹하고도 은혜로운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소돔은 불탔고,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으며, 롯과 딸들은 두려움의 동굴에서 죄를 범했습니다. 이것이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민낯입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으로도, 소돔의 불 심판으로도 인간의 죄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이야기 속에 한 줄기 빛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건지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결단이나 도덕성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에 달려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첫째, 미련의 소금 기둥이 되지 마십시오. 지나간 과거, 내가 누렸던 세상의 안락함,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소돔의 보물들을 과감히 끊어내시길 바랍니다. 둘째, 두려움의 동굴에서 나오십시오. 노후가 불안하고, 자녀의 미래가 걱정되고, 건강이 염려되십니까? 그래서 롯의 딸들처럼 세상적인 방법과 타협하고 싶은 유혹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으실 거야 라는 불신앙의 동굴을 깨고 나오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불길 속에서도 여러분을 건져내신 분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던 하나님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그 은혜를 믿고, 믿음의길 온전히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소돔의 멸망과 롯의 가족들을 통해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뒤를 돌아보았던 롯의 아내처럼, 저희도 여전히 놓지 못하는 세상의 미련이 있음을 회개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던 저희의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롯을 구해 주셨다는 이 은혜의 말씀이 저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의지하여 다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과거를 뒤로하고, 두려움의 동굴에서 걸어 나와, 주님이 예비하신 거룩한 산을 향해 믿음으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540장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폐회 : 주기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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