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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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말씀/주보
2026년 1월 14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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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14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40:1-3
1) 내가 참고 참으며 여호와를 기다렸더니 그분이 내게 귀를 기울이시고 내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2) 그분이 무서운 구덩이에서, 진흙탕 속에서 나를 끌어내셔서 내 발을 바위 위에 두어 내가 안전하게 걷도록 하셨습니다.
3) 그분이 내 입에 새 노래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넣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주를 믿게 될 것입니다.

예배 기원
우리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정신없이 흘러가는 한 주의 중간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내 힘으로 해결하려다 지쳐버린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로 답답했던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깊은 웅덩이처럼 우리를 가라앉게 만드는 걱정과 무기력함에서 우리 마음을 건져 주시옵소서. 흔들리는 마음을 주님이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세워주시고, 불안했던 입술에 다시 감사의 노래가 채워지는 회복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302장 /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기도인도 : 김정림 집사

성경 봉독 : 창세기 19장 12-22절

설교 : 머뭇거리는 손을 잡아끄시는 은혜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제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의 소란스러운 마음을 차분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시선을 돌려 말씀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시는 말씀이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게 하여 주시고, 헝클어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 주는 지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여, 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이 여러분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다시금 주님을 붙들 수 있는 새 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롯의 집에 닥친 위급한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려던 롯의 집을 포위하고, 폭력적인 욕망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소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성읍이 왜 멸망당해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롯은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딸들까지 내어놓는 비윤리적인 타협을 시도했지만, 소돔의 죄악은 이미 통제 불능의 상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소란스러운 밤이 지나고, 이제 막 아침이 밝아오는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소돔은 다시 고요해졌을지 모릅니다. 폭도들은 물러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가장 긴박하고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직전의 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고 어리석은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보여줍니다. 롯의 머뭇거리는 손을 잡아끄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영적 주소를 확인하고 다시금 복음의 산으로 향하는 결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시작을 보겠습니다. 소돔의 죄악이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은 심판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심판 앞에서도 하나님은 롯을 생각하십니다. 천사들은 롯에게 소돔의 멸망을 예고하며 마지막 기회를 줍니다.

12-13절을 보면,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이 성에 사위나 네 아들들이나 네 딸들이나 네게 속한 다른 사람들이 또 없느냐? 그들을 모두 이곳에서 내보내거라
13) 우리가 이곳을 멸망시키려고 한다. 이들의 죄로 인해 여호와께 부르짖음이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망시키기 위해 우리를 보내셨다.”

이것은 롯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비의 기회였습니다. 롯은 급히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이 엄청난 소식을 전합니다. 장인의 입에서 나온, 생사가 걸린 경고였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당황하거나,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진지하게 묻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14절 끝부분에 기록된 사위들의 반응은 참으로 참담합니다.
14) 그러나 그의 사위들은 그 말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사위들은 롯의 말을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아침부터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하늘을 보세요. 이렇게 맑은데 무슨 불벼락이 떨어진다는 겁니까? 그들에게 롯의 외침은 한 노인의 실없는 농담 정도로 들렸던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이것은 롯의 평상시 삶이 그들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갔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 1절을 보면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성문에 앉는다는 것은 그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롯은 소돔에서 꽤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굴러온 돌이었지만, 악착같이 노력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위치에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사회적 지위가 곧 영적 권위는 아닙니다. 롯은 세상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롯은 사위들에게조차 아무런 영적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롯은 죄악에는 동참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 죄악에 맞서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도덕적인 시민으로 살며, 소돔의 문화를 즐기고 그 안락함에 젖어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위들이 보기에 롯은 자신들과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 그가 좋아하는 것, 그가 시간을 쓰는 방식이 소돔 사람들과 똑같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평소에 롯이 보여준 삶에, 거룩함이 없었기에, 그의 말에도 무게가 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평상시에 사위들에게 보여줬던 롯의 모습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 죄와 타협하지 않는 단호함, 손해를 보더라도 말씀을 따르는 결단... 이런 모습들이 쌓여 있었다면, 사위들은, 아버님이 저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증거가 없었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선포한 그의 복음은 힘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어야 삽니다. 심판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라고 아무리 외쳐도 세상이 비웃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그들과 똑같이 세상의 성공과 안락함만을 쫓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영적 권위는 화려한 언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떨며 순종하는 삶의 모습에서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말은 가족과 이웃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반복되는 지루한 이야기로 취급받고 있습니까?

롯의 비극은 소돔의 멸망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조차 구원해낼 영적 권위가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의 삶이, 말이 아닌 삶으로 증명되는 진짜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분의 말이 자녀들과 이웃을 살리는 생명의 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위들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15절을 보시죠.
15) 동틀 무렵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며 말했습니다. “서둘러라.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네 두 딸을 데리고 가거라. 그러지 않으면 이 성에 심판의 벌이 내릴 때 너희도 멸망할 것이다.”

이 정도 상황이면 롯은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뛰쳐나가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16절의 첫 마디를 보겠습니다.
16) 롯이 꾸물거리자

히브리어로 이 말은 단순히 동작이 느리다는 뜻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갈등과 마비 상태를 의미합니다. 머리로는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천사들이 눈앞에 있고, 심판의 예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돔에 있습니다. 롯은 짐을 싸는 척하며 꾸물거리고 있습니다.
정말 가야 하나? 정말 불이 떨어질까? 내가 평생 모은 이 재산은 다 어떡하지? 내 사회적 지위는? 내 친구들은?

롯은 멸망을 알았습니다. 천사의 경고를 믿었습니다. 머리로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소돔에서 누렸던 그 안락한 도시 생활을 포기하기가 너무나 아까웠던 것입니다.

롯에게 소돔은 그의 정체성이었고, 아브라함을 떠나 고생 끝에 얻은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곳인 줄 알면서도, 그 죄가 주는 쾌락과 풍요로움에 이미 깊이 중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죄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그 자리에 주저앉게 만듭니다.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이것이 나를 죽이는 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독이 주는 달콤함에 중독되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게 만듭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설교를 들을 때는, 아멘, 그렇게 살아야지 라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다시 롯이 됩니다.
하나님, 지금 당장 끊어내기엔 손해가 너무 큽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적당히 즐기며 사는데, 굳이 유별나게 살 필요가 있습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이것만 정리하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핑계를 대며 지체합니다. 심판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적인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세상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영적인 마비 상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는 결코 이 죄의 사슬을 끊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롯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도 롯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답답한 상황은 어떻게 해결이 될까요? 롯이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 순간, 인간의 가능성이 완전히 끝난 그 지점에서, 성경은 놀라운 반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16절 말씀입니다.
16) 롯이 꾸물거리자 그 사람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그의 두 딸의 손을 잡아끌어서 성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여호와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롯은 머뭇거렸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는 강제력을 행사하십니다. 여기서 손을 잡아라는 말은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꽉 움켜쥐다, 강제로 낚아채다, 압도적인 힘으로 붙들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불이 난 건물 안에서 무서워 떨며 나오지 못하는 아이를 소방관이 거칠게 품에 안고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체하는 롯의 손목을 움켜쥐고 성 밖으로 끌고 나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거칠고도 강권적인 행동의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16절 하반절입니다.
16) 여호와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은혜인 것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롯보다 의로워서, 결단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의 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여전히 세상의 미련 때문에 뒤를 돌아보고 있을 때,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피 묻은 손길, 그 은혜가 우리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과정을 한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제 발로 걸어 나온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때로는 실패를 통해, 때로는 질병을 통해, 때로는 사람을 통해, 때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환경을 통해 내 손을 꽉 붙들고 여기까지 끌고 오신 줄로 믿습니다. 내가 그 손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칠 때조차, 하나님은 내 손을 놓지 않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님들. 낙심하지 마십시오.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이 약할까, 나는 왜 이렇게 결단력이 없을까 자책하는 분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믿음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큽니다. 여러분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자비의 손이 오늘 여러분을 붙들고 계신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강권적인 은혜로 구원받았으면, 이제 정신 차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야겠지만, 롯의 모습은 우리를 또 한 번 실망시킵니다.
17절에서 천사는 멈춰서지 말고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롯은 18-20절에서
18) 롯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제발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19) 주의 종이 주께 은총을 입었고 주께서 제게 큰 자비를 베풀어 제 목숨을 살려 주셨지만 저는 저 산까지 도망갈 수 없습니다. 저 산에 이르기도 전에 이 재앙이 미쳐서 제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20) 보십시오. 저기 있는 성이 도망치기에도 가깝고 작은 마을이니 제가 그곳으로 도망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목숨이 보존될 것입니다.”

롯은 성 밖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산으로 가라고 하셨으면 산이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그런데 롯은 자기 눈에 안전해 보이는 작은 성읍 소알을 제안합니다. 그는 여전히 도시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산의 불편함보다는 비록 작더라도 문명의 혜택이 있는 곳을 원한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편의와 타협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21-22절을 보시죠.
21) 그가 롯에게 말했습니다. “보아라. 내가 이 일에도 네 부탁을 들어주겠노라. 네가 말한 그 성을 내가 뒤엎지 않을 것이다.
22) 서둘러서 그곳으로 도망가거라. 네가 거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그리하여 이 마을은 소알이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롯의 눈높이에 맞춰주시고 피난처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이죠. 완벽한 순종을 강요하기보다, 연약한 롯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피난처를 허락해 주십니다. 심지어 롯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소알 성 전체의 심판을 유보하시기까지 하십니다.

하지만 여러분, 롯이 선택한 소알의 결말은 어떻습니까? 본문 뒤에 나오는 30절을 보면, 롯은 결국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다시 산으로 올라가 굴에 거주하게 됩니다. 자기가 선택한 소알은 진정한 평안을 주지 못했습니다. 도시의 편리함을 좇아갔지만, 그곳에서도 그는 불안에 떨었고, 결국 비참한 모습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대신 선택한 소알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잠시 편할 수는 있어도, 결국 우리를 더 큰 두려움으로 몰고 갈 뿐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산, 비록 험해 보이고 힘들어 보일지라도 주님이 지시하신 그곳만이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에서는 성공한 듯 보이나, 영적 영향력은 잃어버린 모습, 심판의 문턱에서도 미련 때문에 머뭇거리는 우유부단함, 구원의 은혜를 입고서도 끊임없이 내 편의를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얄팍한 신앙... 이것은 롯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오늘 설교의 진짜 주인공은 롯이 아닙니다. 이 못난 롯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세상 속에서 그를 건져내시며, 머뭇거리는 손을 억지로 잡아끌어 내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자비가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성도님들.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서 계십니까? 혹시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소돔의 안락함 때문에 발을 떼지 못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조금만 더를 외치며 주님의 재촉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때, 나를 살리기 위해 찢기신 주님의 손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그 손을 꼭 잡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는 거룩한 산을 향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롯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세상의 즐거움에 마음을 뺏겨 거룩한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심판의 경고 앞에서도 안락함을 놓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연약한 롯이 바로 저희들임을 고백합니다.
떠나야 할 자리, 끊어야 할 습관을 알면서도 머뭇거렸던 저희들의 우유부단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주님,
우리가 주저앉아 있을 때,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강한 손으로 우리의 손을 잡아끌어 주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나의 의지보다 강한 주님의 사랑이, 나의 고집보다 끈질긴 주님의 자비가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의 손길을 의지하여 거룩한 산을 향해, 사명의 자리를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435장 / 나의 영원하신 기업

폐회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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