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 홈 >
  • 말씀과 주보 >
  • 수요예배 말씀/주보
수요예배 말씀/주보
2026년 1월 7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6-01-08
  • 추천 0
  • 댓글 0
  • 조회 23

http://heimchurch.onmam.com/bbs/bbsView/15/6596304

26-01-07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143:8, 10
8) 내가 주를 의지하니 아침에 주의 변함없는 사랑을 듣게 하소서.
주께 내 영혼을 올려 드리니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소서.
10) 나를 가르쳐 주의 뜻대로 하게 하소서. 주는 내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영은 선하십니다. 나를 평탄한 땅으로 인도하소서.

예배 기원
길과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분주했던 3일간의 세상살이 속에서 저희의 영혼을 다시 예배의 자리로 부르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저녁, 캄캄한 인생길을 비추는 말씀의 등불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고집대로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주님이 가라 하시는 그 길을 묵묵히 걷기로 다짐하는 순종의 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183장 / 빈들에 마른 풀 같이

기도인도 : 김선미 권사

성경 봉독 : 창세기 19장 1-11절

설교 : 위태로운 번영의 자리에서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좌우에 날 선 검 같은 말씀이, 우리 심령을 관통하기를 원합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진리의 칼날 앞에 우리 자신을 내려 놓습니다. 내 자아는 죽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살아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씀이 새해를 살아낼 힘이 되고, 세상을 이겨낼 능력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히 인도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수요예배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그 간절한 발걸음을 기뻐하시며, 오늘 말씀을 통해 새 힘과 위로를 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난주 창세기 18장을 통해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은 친밀함 그 자체였습니다. 친구처럼 대화하시고, 비밀을 나누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대화하시는 동안, 동행했던 두 천사는 어디론가 이미 떠났습니다. 바로 죄악이 넘치는 도시, 소돔이었죠.

오늘 창세기 19장의 이야기는. 그 소돔 땅에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 무렵에 시작됩니다. 이 시간, 롯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을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깊이 묵상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인 19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저녁때 두 천사가 소돔에 도착했습니다. 롯이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자마자 얼른 일어나 맞이하고 땅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두 천사가 소돔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때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도시를 덮기 시작하는 시간인데요.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을 넘어서 소돔의 영적 상태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때 롯은, 성문에 앉아 있었다라고 기록합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성문이라는 장소는 단순히 사람들이 오고 가는 출입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그 도시의 유력자들이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도시의 행정과 정치가 이루어지고, 중요한 상거래가 계약되며,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는 법정이 열리는 곳, 다시 말해 그 도시의 심장부였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듯이, 창세기 13장에서 롯이 처음 아브라함을 떠날 때만 해도 그는 단지 소돔 근처에 장막을 쳤을 것입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고, 그저 주변부를 맴돌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소돔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가장 깊숙한 곳, 그 주류 사회의 중심인 성문에 당당히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텃세가 심하고 배타적인 고대 도시 국가에서 이방인이 성문에 앉을 만큼 출세했다는 것은, 그가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을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의 문화를 익히고, 그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꿈을 이룬 성공한 이민자이자, 자수성가한 인물이었습니다.

롯은 처음 소돔 땅을 바라보았을 때의 그 설렘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과도 같았던 그 땅. 물이 넉넉하고, 문화가 발달하고, 풍요로운 그곳에 들어가면 내 인생도 꽃필 것이라 믿었고, 마침내 그는 해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소돔 시민권을 얻었고,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이 얻은 성공 뒤에는, 감추어진 치명적인 대가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미 13장에서 소돔에 대해 "소돔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서 아주 악한 죄를 짓고 있었다." 라고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롯은 이 영적인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풍요로움이 영적인 위험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소돔을 변화시키기 위해 들어간 선교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소돔이 주는 안락함과 쾌락, 세련된 문화를 누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소돔을 동경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다 보니, 어느새 그는 소돔의 한복판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의 영혼은 소돔의 죄악 된 문화에 흠뻑 젖어 병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것은 롯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역시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때로는 그들의 방식에 맞춰주기도 해야 합니다. 성실하게 사는 것, 성공을 꿈꾸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거룩한 구별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물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죠. 마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또는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우리가 죄악 된 가치관과 조금씩 타협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영적으로 마비되어 갑니다.

남들도 다 이렇게 한다. 사회생활 하다보면 어쩔 수 없다. 딱 한 번인데 뭐 어때.
이런 합리화가 쌓이고 쌓여서, 어느새 우리의 영혼은 세상의 색깔로 칠해져 버립니다. 롯은 지금 성공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멸망의 벼랑 끝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한 채, 화려한 성문에 앉아 만족해하는 롯의 모습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방 문화와의 무분별한 혼합을 경고해 왔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경고했습니다.
여호수아 23:12-13
12)그러나 만약 너희가 어떤 경우라도 마음을 돌이켜 이 남은 민족들에게, 곧 너희 가운데 남아 있는 이들에게 붙어 그들과 서로 결혼하고 이리저리 어울려 지내면
13)그때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더 이상 너희 앞에서 이 민족들을 내쫓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 두라. 그리고 그들은 너희에게 덫이 되고 함정이 될 것이요, 너희 옆구리의 채찍이 되고 너희 눈에 가시가 돼 너희가 결국에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외국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민족주의적인 외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악 된 문화, 그 가치관이 우리 삶에 침투해 들어올 때, 그것이 처음에는 달콤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우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 우리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덫이 된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조차 이 덫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며 타협했을 때, 결국 그 지혜롭던 왕도 우상 숭배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신약의 바울 사도 역시 고린도전서 5장에서,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세상 밖으로 나가서 혼자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믿는 자라 칭하면서도 여전히 죄악 가운데 머물며 회개하지 않는 자들과의 교제가, 우리의 거룩함을 훼손할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롯은 이 영적 원리를 간과했습니다. 그는 소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괜찮아라고 자만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가 소돔 사람들을 거룩하게 변화시켰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롯의 영적 감각은 무뎌졌고, 그의 가정 안에 소돔의 음란하고 패역한 문화가 깊숙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롯은 성문에 앉아 있다가 두 천사를 발견합니다. 비록 소돔에 살고 있었지만, 아브라함에게서 배운 환대의 습관이 남아 있었던지, 아니면 소돔의 밤거리가 나그네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기 때문인지 롯은 간청하여 그들을 집으로 모십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됩니다. 4절과 5절을 보시죠.
4)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 성의 사람들, 곧 소돔 사람들이 젊은이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사방에서 몰려나와 그 집을 에워쌌습니다.
5)그들이 롯에게 외쳤습니다. “이 저녁에 너를 찾아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우리에게로 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욕보여야겠다.”

여기서 우리는 소돔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목격하게 됩니다.
첫째, 젊은이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모였습니다. 젊은이의 혈기뿐만 아니라 노인의 탐욕까지, 세대 전체가 타락했습니다.
둘째, 사방에서 몰려왔습니다. 도시 전체가 악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셋째, 그들은 욕보여야겠다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집단적인 성폭행을 하겠다는 끔찍하고도 노골적인 선포입니다.

우리는 흔히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동성애로만 국한해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큰 죄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돔의 죄를 더 포괄적으로 설명합니다.
에스겔 16장은 소돔의 죄악이 "교만함, 음식물의 풍족함, 태평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음"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소돔은 성적인 타락뿐만 아니라, 풍요 속에서 교만해져서 약자를 짓밟고, 나그네를 학대하는 총체적인 부도덕함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타락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롯은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이렇게 말합니다.
7)내 형제들이여, 이런 악한 일을 하지 마시오.

그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어떻게든 그들을 진정시키고, 자신이 쌓아온 인맥과 지위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8절에서 롯은 우리의 귀를 의심케 하는 제안을 합니다.
8)보시오. 내게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소. 내가 두 딸들을 내보낼 테니 그 애들에게 여러분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니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도 하지 마시오.”

아무리 고대 사회에서 손님 접대가 중요한 덕목이었다 해도, 아버지가 자신의 친딸들을 폭도들에게 내어주겠다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악입니다. 이것은 롯의 도덕성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는 지금 악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악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더 큰 죄를 피하기 위해 작은 죄는 지어도 된다는 식의 타협입니다.

롯은 소돔에 살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믿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그의 내면에서 튀어나온 해결 방식은 소돔 사람들의 방식과 똑같았습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고, 힘의 논리에 굴복하며, 적당히 타협해서 내 안위를 지키려는 그 비겁함. 롯의 영혼은 이미 병들대로 병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롯은 자신의 협상력이 통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딸을 희생시켜서라도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입니까? 9절을 보면 군중들은 비웃습니다.
9)그들이 “저리 비켜라” 하고 외치며 다시 말했습니다. “이놈이 나그네로 지내다 여기 와서 사는 주제에 우리를 다스리고자 하는구나. 이제 우리가 저들보다 너를 더 혼내 주어야겠다.” 그들은 롯을 밀치고 문을 부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롯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롯이 가진 돈과 지위는 부러워했을지 몰라도, 그의 영적인 권위는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롯은 소돔의 중심에 들어갔지만, 결국 그들을 변화시키지도 못했고, 자신의 가정도 지키지 못했으며, 심지어 자기 자신을 지킬 힘 조차 없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집 안에 있던 두 천사가 손을 내밀어 롯을 집 안으로 끌어당기고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리고 문 밖의 무리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문을 찾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흔히 롯이 천사들을 대접하고 보호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롯이 천사를 지킨 것이 아니라, 천사가 롯을 지켰습니다.
롯은 자신의 어설픈 지혜와 끔찍한 타협안으로 상황을 통제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롯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롯이 구원받은 것은 그가 의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도덕적으로 훌륭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건져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리고 죄악 된 세상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롯을 죽음의 자리에서 끌어내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 세상을 좇아갔습니다. 자신이 보기에 가장 좋은 땅, 성공이 보장된 땅, 소돔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문에 앉을 만큼 성공했습니다. 물질도 얻었고 지위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롯의 결말은 무엇입니까? 그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소돔이 멸망할 때 그의 재물은 불타 사라졌고, 그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으며, 그의 딸들은 아버지와의 근친상간이라는 끔찍한 죄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베드로후서에서는 롯이 그들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심령이 상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죄를 즐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죄악의 자리에서 떠나지는 못했습니다. 괴로워하면서도 그곳이 주는 유익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이 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앉아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소돔의 성문 앞입니까?
우리는 겨우 구원만 받은, 부끄러운 구원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롯은 불 가운데서 겨우 목숨만 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살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결단하길 원합니다. 롯의 손을 강제로 잡아끌어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을 붙잡고 계십니다. 내 힘으로는 끊을 수 없는 죄악의 고리가 있다면, 주님께 도움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주여, 나를 이 소돔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내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세상과 협상하지 마시고, 악을 악으로 막으려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직 거룩함과 정직함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여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마치 미지근한 물에 들어앉아 그것이 죽음의 길인 줄도 모르고 만족해하는 어리석은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롯처럼 세상의 성공을 위해 신앙을 타협하고, 가정을 지킨다는 핑계로 세상의 가치관을 받아들였던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깨우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붙들고, 죄악 된 자리에서 일어나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모든 성도들의 머리 위에 주님의 크신 능력이 함께할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419장 /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폐회 : 주기도문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26년 1월 14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6.01.15 0 24
다음글 2025년 12월 24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5.12.26 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