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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2월 24일 수요예배 | 운영자 | 2025-12-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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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24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73:25-26, 28 25) 하늘에서 주 말고 내게 누가 있겠습니까? 땅에서도 내가 바라는 것은 주밖에 없습니다. 26) 내 몸과 내 마음은 다 쇠약해졌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힘이시요, 영원히 지속되는 내 몫이십니다. 28) 나는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주 하나님을 믿어 왔기에 주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다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 기원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썩어질 것들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소진했던 우리의 지난 3일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육체와 마음은 지쳤지만, 다시금 우리의 유일한 반석이신 주님께 닻을 내리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 시간, 세상이 말하는 복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유일한 복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헛된 갈망은 끊어지고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채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270장 /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기도인도 : 이세훈 장로 성경 봉독 : 창세기 18장 16-29절 설교 : 무모한 기도의 담대함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익숙함에 젖어 무뎌진 우리의 귀를 엽니다. 이 시간 선포되는 말씀이 단순한 교훈이나 정보가 아니라, 내 삶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사건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양심을 깨우고, 숨겨진 죄와 연약함을 드러내어 주님 앞에 다시 엎드리기를 원합니다. 오직 성령의 강권하심만이 저희를 이끄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히 인도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수요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이 시간 주시는 말씀이 우리 영혼에 생수가 되고, 힘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주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찾아온 나그네들을 극진히 대접했고, 그 식탁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내년 이맘때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감격과 회복의 은혜가 가득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식사 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천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아브라함은 손님들을 배웅하기 위해 함께 길을 나섭니다. 성경을 보면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함께 걸어갔는데요. 화려하지만 위태로운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눈에 들어오는 바로 그 지점입니다. 아브라함의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을까요? 내년이면 아들을 주신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발아래로 소돔과 고모라가 보입니다. 물이 넉넉하고 화려한 도시,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아 보이는 그곳. 아브라함은 그 풍경을 보며 조카 롯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래, 저 좋은 땅을 골라서 갔으니 잘 살고 있겠지. 별일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충격적인 말씀을 꺼내십니다. 17절입니다. 17) 그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는가? 당시 고대 근동 문화에서 신은 인간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왕이 노예에게 국정 운영 계획을 브리핑하지 않듯이, 신은 그저 명령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우주의 창조주께서 한낱 인간인 아브라함에게, 내가 하려는 일을 너에게 숨기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단순히 피조물이나 종으로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친구이자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갈 동역자로 대우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토록 중요한 비밀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18절과 19절에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18) 아브라함은 분명히 크고 강한 민족이 될 것이며 땅의 모든 나라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9)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아브라함이 그의 자녀와 그의 집안 자손들에게 명해 여호와의 길을 지켜 의와 공의를 실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말한 것을 그를 위해 다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은, 단순히 그에게 복을 주어 잘 먹고 잘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세우실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가르치고 싶으셨습니다. 그 나라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나라와는 달라야 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길을 지켜 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나라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런 것이죠. 아브라함아, 너는 단순히 복을 받는 자가 아니라, 정의와 공의를 가르치고 실천해야 할 자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공의가 무너진 소돔 땅에 어떤 심판이 임하는지 너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깨달아 너의 자손들에게 똑바로 가르쳐라.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심판의 계획을 숨기지 않으시고 말씀하신 첫 번째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20절과 21절을 보시죠 20)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겁다. 21) 내가 내려가서 그들이 한 짓이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살펴보고 알고자 한다. 여기서 부르짖음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시끄러운 소리가 아닙니다. 억울하게 압제당하는 자들, 폭력에 짓밟힌 고아와 과부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자들의 절규를 의미합니다. 소돔은 화려하고 번영된 도시였지만, 그 화려함의 밑바닥에는 억울한 자들의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직접 확인하러 가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현장을 확인하러 가셔야 합니까? 하늘에서 다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공정하고 철저하게 심판하시겠다는, 공의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판단하시는 재판장이심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나, 소돔 심판하러 간다... 라고 통보하셔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굳이 이 심판의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하나님의 마음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브라함아, 내가 저 죄악 된 도시를 심판하려 한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저들을 위해 기도할 생각이 없느냐? 너는 세상의 복이 되라고 부름받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지금 아브라함의 반응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가 단순히 자기 가족의 안위만 챙기는 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로 설 것인지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너는 네 이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느냐? 부조리한 세상을 보며 욕만 하고 있느냐? 아니면 그들을 위해 내 앞에 나와 기도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엄청난 폭풍이 일어납니다. 소돔 성에는 조카 롯이 살고 있습니다. 비록 삼촌의 곁을 떠나 세상의 화려함을 쫓아간 철없는 조카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나 다름없는 혈육입니다. 소돔이 멸망하면 롯도 죽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대로라면 소돔은 불타야 마땅합니다. 저들의 죄악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조카를 생각하면 심판을 막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저 악한 놈들, 다 쓸어버리십시오. 정의를 보여주십시오 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제 조카만은 살려주십시오. 나머지는 알 바 아닙니다 라고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종종 뉴스를 보며 세상의 악함에 분노합니다. 저런 흉악범은 사형시켜야지. 하지만 만약 그 죄인이 내 형제라면, 내 친구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지금,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하는 조카를 향한 긍휼, 그 사이에 서 있습니다. 두 천사는 이미 소돔을 향해 내려갔습니다. 시간은 흘러갑니다. 하나님께서도 떠나려 하십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용기를 냅니다. 그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묻습니다. 23절입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면서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의인을 악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그리고 25절에서 아주 대담한, 어찌 보면 무모할 정도로 충격적인 발언을 합니다. 25) 의인을 악인과 같이 죽이고 의인을 악인처럼 대하시는 것은 주께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인 주께서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피조물이 창조주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따져 묻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 아니십니까? 그런데 악인을 잡겠다고 의인까지 다 죽이신다면 그게 과연 정의입니까? 그건 하나님답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반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 즉 공의를 붙들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본질입니다. 기도는 내 욕심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바르게 이루어지기를 탄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만약 그 성에 의인 50명이 있다면,,, 45명이 있다면,,, 40명, 30명, 20명, 그리고 마침내 10명까지 내려갑니다. 많은 성도님이 이 장면을 보며, 아브라함의 끈질긴 기도를 배우자, 기도는 협상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여러분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더 깊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숫자를 50에서 10까지 여섯 번이나 낮추는 동안, 하나님이 귀찮아하시거나 짜증을 내셨나요? 아니면, 30명은 좀 애매한데 계산 좀 해보자 하시며 흥정을 하셨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숫자를 부를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설득해서 마음을 돌이킨 것이 아니라, 이 대화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확인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엄격한 심판관으로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죄를 지으면 벌주시려고 벼르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심판하기를 즐겨 하시는 분이 아니라, 어떻게든 구원할 이유를 찾고 계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10명만 찾아봐라. 단 10명만 있어도, 나는 심판을 거두고 그 도시를 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하나님은 심판보다 용서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10명에서 멈췄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떠나셨습니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십니다. 왜 10명에서 멈췄을까? 1명까지 끝까지 해보지... 아마도 아브라함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여섯 번이나 확인하면서, 동시에 소돔의 타락이 10명의 의인조차 찾기 힘들 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결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실 분이 아니다 라는 신뢰가 생겼기에 기도를 멈추고 하나님께 결과를 맡겨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했습니다. 그 큰 도시에 의인 10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롯은 그곳에 살았지만, 도시를 변화시키는 의인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그 간절한 중보기도도 소돔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기도는 실패한 것일까요? 헛 수고를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수천 년 후, 이 세상은 소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대로라면 이 세상은 벌써 불타 없어졌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놀라운 결단을 내리십니다. 소돔을 구원할 의인 10명을 찾지 못하셨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단 한 명의 참된 의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단 한 명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저와 여러분을, 그리고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에 응답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 즉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며 우리의 삶으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의롭다고 믿었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를 하고, 금식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분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에는 사랑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죄인들을 보며, 나는 저들과 다르다, 저런 것들은 벌 받아야 한다 라고 정죄하며 자신의 의를 자랑했습니다. 손가락질만 하는 의,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의는 죽은 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르쳐주신 의,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의는 다릅니다. 죄는 미워하시되 죄인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심판이 마땅한 상황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는 마음, 죄악 된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하기보다 그들을 위해 무릎 꿇고 눈물 흘리는 마음.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직장과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 뉴스를 장식하는 정치인들, 때로는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이웃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저 사람은 진짜 안 돼. 저 인간은 망해봐야 정신 차리지 하며 정죄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내 가족 중에, 내 가장 가까운 친구 중에 여전히 하나님을 모르고 소돔과 같은 위태로운 삶을 사는 이들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때, 오늘의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는 소돔을 위해 창피함을 무릅쓰고 여섯 번이나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런 중보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가망 없다고 포기했던 그 사람,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을 기도로 품어 보시길 바랍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 저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 가정을 포기하지 마옵소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에게는 의가 없지만,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그 기도가 비록 티끌과 같이 작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롯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중보기도를 통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 기도를 시작할 때, 여러분은 단순히 기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비를 이 땅에 흘려보내는 통로이고, 복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하나님의 친구, 거룩한 중보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때로 세상의 악함을 보며 절망했고, 나의 연약함을 핑계 삼아 기도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소돔을 바라보며 비난하고 정죄하기에 바빴던 우리의 교만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받은 그 사랑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매달리는 중보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어가는 영혼이 살아나고, 무너진 곳이 회복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455장 /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자 폐회 : 주기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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