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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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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말씀/주보
2025년 12월 17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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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7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27:7, 9
7) 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을 때 들으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응답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진노로 주의 종을 외면하지 마소서.
주께서 이제껏 내 도움이 되지 않으셨습니까!
오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나를 떠나지 마시고 버리지 마소서.

예배 기원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세상에서 입고 있던 수많은 역할과 가면을 벗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섭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세상의 평가, 내 안의 핑계들을 내려 놓고 오직 주님의 말씀과 마주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이 자리가 우리의 무너진 마음이 회복되고, 흐려진 삶의 목적이 다시 선명해지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191장 / 내가 매일 기쁘게

기도인도 : 지순자 권사

성경 봉독 : 창세기 18장 6-15절

설교 : 웃음의 의미가 바뀌는 그날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익숙함에 젖어 무뎌진 우리의 귀를 엽니다. 이 시간 선포되는 말씀이 단순한 교훈이나 정보가 아니라, 내 삶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사건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양심을 깨우고, 숨겨진 죄와 연약함을 드러내어 주님 앞에 다시 엎드리기를 원합니다. 오직 성령의 강권하심만이 저희를 이끄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히 인도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수요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사건의 서막을 살펴 보았다면, 오늘은 그 만남의 현장 속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사건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마므레의 큰 나무 아래, 한낮의 열기 속에서 아브라함은 낯선 나그네 셋을 발견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아주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는데요.
6절입니다.
6) 아브라함은 서둘러 장막 안에 있던 사라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얼른 고운 밀가루 3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해 빵을 만드시오.”

보면, '서둘러', '얼른'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99세의 노인이 마치 청년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준비한 음식의 양을 보시면, 고운 가루 세 스아 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단위로 환산하면 약 20kg이 넘는 엄청난 양입니다. 성인 수십 명이 먹고도 남을 빵을, 겨우 세 명의 손님을 위해 준비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차원을 넘어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7절에 보면
7) 아브라함이 가축들이 있는 데로 달려가서 가장 살지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 하인에게 주니 하인이 서둘러 요리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축 떼로 달려가서 그냥 송아지가 아니라, 가장 좋은 송아지를 직접 골라 잡습니다. 양 한 마리만 잡아도 충분했을 텐데, 그는 최고의 것을 내어놓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환대'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믿음은 평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믿음이라고 하면 예배를 드리는 것,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매일 성경을 읽는 것 등을 떠올립니다. 물론 이것들은 신앙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믿음을 입증하는 또 다른 중요한 모습이 바로, 환대 라는 사실입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의 태도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믿음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고 입증해야 할 모습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타인을 향한 따뜻한 환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바쁜 시대를 살아갑니다. 내 코가 석 자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환대 라는 단어가 참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웃을 향한 환대를 명령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의 풍경을 이렇게 말씀하셨죠.
35절입니다.
35)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됐을 때 나를 맞아들였다.

의인들이 깜짝 놀라서, 우리가 언제 주님을 대접했습니까? 라고 물을 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40절입니다.
40)무엇이든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성경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아브라함은 이 나그네들이 하나님이신 줄 처음에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낯선 이를 주님 대하듯 섬겼을 때, 그는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을 대접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실지 모릅니다. 때로는 가난한 이웃의 모습으로, 때로는 병들고 지친 자의 모습으로, 혹은 도움이 필요한 낯선 이의 모습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 그 대상이 누구든,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명확합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의 말씀처럼,
23)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해 하십시오.

직장 생활을 할 때, 상사나 동료를 대할 때,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를 대할 때, 우리는 그들 안에 계신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말 한마디, 정성껏 건네는 커피 한 잔, 진심 어린 경청의 자세가 믿음의 증거입니다.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내가 더 수고하는 것 같아 억울할 때가 있으실텐데요. 그때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격 없는 죄인이었을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가장 큰 환대로 우리를 맞아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마땅히 그 사랑을 흘려보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나무 아래에는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습니다. 버터와 우유, 갓 구운 빵, 그리고 송아지 고기가 놓여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먹는 것을 지켜보며 시중을 듭니다.
여기까지는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나무 그늘, 그리고 지극한 정성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식사가 무르익을 무렵, 대화의 주제가 급격히 전환됩니다.
나그네 중 한 사람이 묻습니다. 네 아내 사라는 어디 있느냐?
아브라함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처음 보는 이들이 어떻게 내 아내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요? 그것도 예전 이름 사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얼마 전 바꿔주신 새 이름 사라를 정확히 부르고 있습니다. 이 순간 아브라함은 직감했을 것입니다. 이분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보내신 분들이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10절입니다.
10)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년 이맘때쯤 반드시 네게 돌아오겠다. 그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뒤에 있는 장막 입구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막연한 약속이 아니라, 내년 이맘때쯤이라고, 구체적인 시간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직전 17장에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엎드려 웃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웃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사라의 반응을 보시죠. 사라는 장막 문 뒤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목민의 장막 구조상 안쪽은 여인들의 공간이었고, 얇은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의 대화가 다 들렸을 것입니다.
사라는 12절에서 이렇게 반응합니다.
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늙어서 기력이 없고 내 주인도 늙었는데 내게 과연 그런 기쁜 일이 있겠는가?’

사라의, 이 웃음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웃음을 단순히 믿음이 없어서 짓는 비웃음이라고 치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사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1절은 사라의 상태를 아주 냉정하게 진단합니다.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기가 지난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의학적인 사망 선고와 같습니다. 그녀의 몸은 생명을 잉태하기엔 이미,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지난 수십 년간, 아들이라는 약속을 붙들고 살았지만, 돌아온 것은 실패뿐이었습니다. 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면서까지 가정의 불화를 겪어야 했고, 남은 것은 자신의 불가능함뿐이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나이 구십입니다. 거울을 보면 주름진 얼굴이 보이고, 몸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더 이상 희망 고문을 당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저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며 체념 속에서 안정을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낯선 나그네가 와서 그 아픈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것입니다.
내년 이맘때 아들이 있을것이다.
그러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겠죠.
사라의 웃음은 단순한 비웃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90년의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실망과 상처가 만들어낸,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결심한 방어적인 웃음입니다.

사라의 웃음은 어쩌면 오늘날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다가 지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번만은 꼭 도와주세요 라고 매달렸는데 응답이 없을 때, 우리는 낙심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기도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는 논리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이런 논리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우리를 영적인 침체와 메마름 속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죠.

사라는 소리 내어 웃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웃었습니다.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13절입니다.
13) 그러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라는 왜 웃으며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정말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느냐?

사라의 숨소리, 생각, 그 깊은 절망까지 다 듣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4절 말씀, 우리 다 함께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14) 여호와께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 내가 내년 이맘때쯤, 곧 정해진 때에 네게 돌아올 것이며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개역개정에서는,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라고 번역했죠.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기서 "여러워서 못할 일"로 번역된, 원문을 살펴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언할 때, 그의 이름을 '기묘자'라고 불렀던 그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기묘자 즉, 놀랍고, 경이롭고, 지혜롭다 라는 뜻이죠.

하나님은 지금 이렇게 묻고 계신 것입니다.
"여호와에게 너무 기이해서, 너무 놀라워서 감당 못 할 일이 있겠느냐?" 사라야, 너는 너의 늙음을 보고 웃었느냐? 그것이 인간의 눈에는 끝일지 모르나, 나 여호와에게는 그 어떤 것도, 너무 어려워서 불가능한 일이 될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기적이고 경이로운 일들이, 하나님께는 지극히 당연하고 쉬운 일인 것이죠.


사라가 두려워서,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라고 거짓말을 했을 때, 하나님의 반응을 보면,
보통의 권력자라면, 어디 감히 거짓말을 하느냐...라며 진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하지만 자비롭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네가 웃었다."
이것은 정죄가 아닙니다. 너의 그 불신, 너의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의 비웃음을 묵인하지도 않으셨지만, 그녀를 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비웃음을 직면하게 하시고, 결국은 그 웃음을 진짜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못해서 비웃을 때조차,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분의 일을 행하신다는 것, 이것이 은혜인 것이죠.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한이 이르매 사라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90세의 할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이삭인데요, 그 뜻은 '웃음'입니다. 1년 전, 장막 뒤에서 몰래 지었던 그 냉소적인 비웃음이, 이제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의 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라가 아이를 안고 있을 때 사람들은 물었을 것입니다. 왜 아이 이름이 웃음인가요?
그때마다 사라는 무엇을 기억했을까요?
1년 전, 장막 뒤에 숨어서 웃었던 그 부끄러운 웃음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나는 못 믿어서 비웃었는데, 나는 안 된다고 포기했는데...
하지만 동시에, 그 비웃음을 뚫고 들어와 내 품에 생명을 안겨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웃음을 지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훗날 사라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히브리서 11:11절입니다.
11)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비록 그 자신이 너무 늙고 사라도 단산됐지만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는 그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한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비웃었지만, "여호와께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녀의 영혼을 뚫고 들어갔을 때, 그녀는 다시 믿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라는 고백합니다. 창세기 21:6절입니다.
6) 사라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웃게 하시니 이 소식을 듣는 사람이 다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를 돌아봅시다. 우리는 때로 너무 지쳐서, 기도하면서도 속으로는, 안 될 거야 라고 비웃음을 짓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여호와께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

이 질문을 여러분의 가장 아픈 문제, 가장 포기하고 싶은 기도제목 옆에 적어 놓으시길 바랍니다. “여호와께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
우리의 쓴웃음을 기쁨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오랜 기도 제목들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벽한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믿음의 조상으로 빚어가시기 위해 25년을 기다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의심이 변하여 확신이 되고, 우리의 쓴웃음이 변하여 이삭과 같은 기쁨의 웃음이 되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삶에 찾아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다시금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사라처럼 장막 뒤에 숨어, 이제 다 끝났다. 내게 무슨 소망이 있을까 하며 비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겉으로는 믿음 있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내 좁은 경험과 현실 속에 가두려 했던 저희의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여호와께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라는 그 음성이 우리 영혼을 깨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삶의 문제들, 꽉 막힌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쓴웃음이 변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의 찬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 특별히 기도하는 자녀들의 앞길 위에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301장 / 지금까지 지내 온것

폐회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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