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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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6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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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26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스바냐 3:17
17) 네 안에 계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구원을 베푸실 용사이시다. 그분께서 너 때문에 무척이나 기뻐하실 것이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로 인해 노래를 부르시며 기뻐하실 것이다.

예배 기원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분주한 세상 살이를 잠시 멈추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품으로 나아왔습니다. 이 저녁, 우리 가운데 계시는 전능하신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지친 심령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회복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365장 /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기도인도 : 이승숙 집사

성경 봉독 : 창세기 16장 1-13절

설교 :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조명하여 주사,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믿어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뜻만이 온전하게 선포되게 하여 주사, 말씀이 심겨질 때 삶이 변하고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히 인도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여 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수요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우리 성도님들,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축복하고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창세기 15장의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이 겪었던 두려움과 하나님의 위로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치렀지만, 그 후에 찾아온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자식이 없다는 현실 때문에 깊은 근심 속에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고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방패니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죠.

이어서, 아브라함이 집에서 기른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을 때도, 하나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오히려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여주시며, “네 자손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고,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시는 횃불 언약을 통해 그 약속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생은 참으로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약속을 받았으면 금방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데, 현실은 여전히 침묵합니다.

창세기 16장은 아주 건조하게, 현실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희망이 실망으로, 실망이 조바심으로, 마침내, 이제는 안 되는구나 라는 체념으로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도 오랜 침묵의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했지만 변하지 않는 자녀 문제, 쳇바퀴 도는 듯한 경제적 위기, 회복되지 않는 관계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기다림에 지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위로의 말씀입니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아브라함과 사래의 가정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면 내가 내 방식대로 처리해야겠다 라는 강력한 유혹이 고개를 들죠.

사래는 결국 2절에서 아브람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2) “여호와께서 내가 아이 낳는 것을 막으시니 내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어쩌면 내가 그녀를 통해 아이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사래는 지금 홧김에 죄를 짓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매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관습에는, 불임인 아내가 여종을 대리모로 세워 대를 잇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법적으로 보장된 관습이었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여종의 자식이 아니라 법적으로 아내에게 속하게 되어 있었죠.

그러니 사래의 입장에서 이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꺾고서라도 가문을 잇기 위해 내놓은 희생적인 결단이자,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눈물겨운 헌신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죠.

사래의 제안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2절 하반절에 보면
2)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듣다 라는 말은 단순히 귀로 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동의하다, 만족하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브람 입장에서도 사래가 오죽 고통스러우면 이런 제안을 했을까 싶어 못 이기는 척 동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님들. 합리적인 생각이 곧 믿음은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은, 내 계획이 너무나 타당하고 논리적이어서 굳이 기도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때입니다. 아무리 합리적인 방법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물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분명히 제 몸에서 날 자라고 하셨는데, 이 방법이 맞습니까? 라고 질문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묻지 않았습니다. 약속의 본질보다는 성취 방법에만 몰두했던 것이죠.

이 후로, 자신들의 계획대로 일이 잘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하갈이 임신을 했습니다. 사래의 목적은 달성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방법이 성공하는 듯 보이는 그 순간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4절입니다.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임신을 하게 됐습니다.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하갈은 자기 여주인을 업신여겼습니다.

생명이 잉태되는 축복의 순간이,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서로를 헐뜯는 저주의 순간으로 돌변합니다. 하갈은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 얻은 여종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요, 그녀는 주인에게 없던 ‘임신’이라는 권력을 갖게 되자 교만해졌습니다. 나 아니면 이 집안 대가 끊겨... 라며 여주인을 무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사래는 분노합니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습니다. 자신이 제안한 일이었지만, 막상 남편과 여종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니 비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사래는 이 모든 분노를 남편에게 쏟아붓습니다. 5절입니다.
5) 그러자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고통은 모두 당신 책임입니다. 내가 내 종을 당신 품에 두었건만 이제 그녀가 임신했다고 나를 멸시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과 나 사이에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의 가정이 지금 ‘콩가루 집안’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기다림은 사라지고, 시기와 분노, 책임 전가만 남았습니다.

가장인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그는 이 갈등을 중재하고 영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6절에서 이렇게 말하며 뒤로 숨습니다.
6) 아브람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여종은 당신 손에 달렸으니 당신이 좋을 대로 그녀에게 하시오.” 그러자 사래가 하갈을 학대했습니다. 하갈은 사래 앞에서 도망쳤습니다.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방임이자, 비겁함입니다. 나는 당신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귀찮으니 당신이 알아서 해.. 라는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결국 사래는 하갈을 학대합니다. 질투와 분노에 눈이 먼 사래, 교만해진 하갈, 무책임한 아브람... 약속의 자녀를 기다리던 믿음의 가정,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할 가정이, 이제는 서로를 물어뜯고 상처 주는 전쟁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내 손으로 인생을 경영하려 할 때 마주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다 더 큰 문제를 만들게 되고, 관계는 깨어지며,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기게 됩니다. 내가 상황을 통제하려 했지만, 결국 상황이 나를 삼켜버리게 된 것이죠.

결국 하갈은 견디다 못해 광야로 도망칩니다. 임신한 몸으로, 물도 식량도 없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광야로 들어섭니다. 그녀가 향한 곳은 '술 길', 즉 그녀의 고향 이집트로 가는 길목이었지만, 사실상 그것은 살기 위한 도망이라기보다 죽음을 각오한 절규에 가깝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았고, 남편이 될 뻔했던 아브라함에게도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이런 기분을 느껴보신 분이 계십니까? 열심히 살아보려 했지만 상황은 꼬일 대로 꼬이고, 사람들에게 상처 입고, 하나님조차 나를 잊으신 것 같은 상황들...

그러나, 인간의 모든 계획이 실패하고, 가정은 파탄 나고, 임신한 여인이 광야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이 절망적인 순간, 이야기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7절입니다.
7) 여호와의 천사가 광야의 샘 곁, 곧 술 길에 있는 샘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만나셨습니다. 하갈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갈은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녀를 찾아내셨습니다. 인간은 사고를 치고, 서로를 비난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도망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을 놓아버린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실패의 현장으로 직접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8절입니다.
8) 여호와의 천사가 말했습니다. “사래의 종 하갈아, 네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제 주인 사래를 피해 도망치는 중입니다.”

아브라함도, 사래도, 아무도 그녀를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갈아”라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십니다.

하갈은, 저는 제 주인 사래를 피해 도망치는 중입니다. 라고 대답하는데요. 이 대답은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그녀에게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명령을 내리십니다. 9절입니다.
9) 그러자 여호와의 천사가 하갈에게 말했습니다.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녀의 명령에 복종하여라.”

참 가혹하게 들립니다. 그 지옥 같은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 명령은 그녀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는 하나님의 보호였습니다. 광야에서 임신한 여인이 홀로 살아남을 확률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보호하시려는 것이었죠.

그리고 하나님은 그녀를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것과 같은 자손이 번성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시고,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미리 지어주십니다. 그리고 그 뜻은, 여호와께서 네 고난을 들으셨다 라는 것입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사래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여전히 종입니다. 하지만 하갈은 더 이상 예전의 하갈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냥 돌아가라고 등 떠미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갈아, 돌아가라.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고통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너와 함께 간다. 그곳은 이제 학대의 자리가 아니라, 내가 너를 돌보는 은혜의 자리가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갈은 감격에 겨워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죠. 13절입니다.
13) 하갈은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주는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뵐 수 있었단 말인가!”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엘 로이’ 즉,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저 높은 곳에만 계신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을 때, 사람들이 나를 쓰다가 버린 물건 취급할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보고 계셨군요. 내 억울함과 비참함을 다 지켜보고 계셨군요. 라는 뜻이죠.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엘 로이'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내 사정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보고 계십니다. 가족을 위해 자존심을 굽히며 일하는 여러분의 땀방울을 보고 계십니다. 자녀 문제로 밤잠 설치는 부모의 떨리는 어깨를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실수하여 넘어진 그 자리, 내 욕심으로 일을 그르친 그 부끄러운 자리에도 하나님은, 내가 너를 보고 있다 라며 찾아와 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엘 로이' 하나님은, 훗날, 우리를 위해 십자가라는 가장 처절한 광야로 아들을 보내시는 분이시죠.

이제 말씀을 정리하며,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기를 원합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삶의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 억지로 하려는 조급함을 내려놓아 보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좋아 보여도, 기도가 없는 나의 계획은 결국 우리를 광야로 내몰 뿐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거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는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아브람과 사래의 실패를 기억하며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 하나님의 때를 묻고 또 물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그 자리에서 회피하고 도망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그 가정, 그 직장, 그 힘겨운 관계 속에서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수고를 다 보고 계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넉넉히 이길 힘을 얻을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실수합니다. 우리는 자주 넘어집니다. 때로는 아브라함과 사래처럼 내 꾀에 내가 넘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하갈처럼 억울하게 광야로 내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는 아닙니다. 우리의 계획과 지혜가 망가뜨린 그 자리에,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나를 끝까지 지켜보시고 찾아오시는 엘 로이의 하나님을 깊이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바라보심을 의지하며, 다시 여러분의 삶의 자리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지켜보시는 주님의 따뜻한 시선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내 지혜와 내 힘으로 인생을 풀어가려다 더 큰 아픔과 상처를 만들었던 저희들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합리적인 판단보다 주님의 지혜를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아무도 내 사정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셨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고 상황은 어려울지라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369장 / 죄짐 맡은 우리 구주

폐회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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