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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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2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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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2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시편 100:4
4) 감사하면서 그 문으로 들어가고 찬양하면서 그 뜰로 들어가라.
그분께 감사하고 그 이름을 찬양하라.

예배 기원
찬양과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크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배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이 시간 저희의 입술을 열어 주님의 이름을 송축하게 하여주시고, 감사로 드리는 이 예배를 기뻐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382장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기도인도 : 명현옥 집사

성경 봉독 : 창세기 15장 1-6절

설교 : 나는 네 방패니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말씀 앞에 저희들 세워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저희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여 주시며, 그 말씀 붙잡고 세상을 이길 힘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히 인도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여 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창세기 14장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북방 연합왕, 엘람 왕에게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아브라함의 이야기였죠. 자신이 가진 병력은 북방 연합군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숫자였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쫓아갔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인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두 왕을 만납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는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드렸죠. 그리고 또 한 명, 바로 소돔 왕이었습니다. 소돔 왕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전리품을 다 가지라고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실 한 오라기, 신발 끈 하나도 받지 않겠다며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은 소돔 왕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기 싫었고, 그 무엇보다 그 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은 더 싫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전리품을 받는 순간, 소돔 왕과 동맹을 맺는 정치적인 관계가 되는 것인데, 그것 또한 원하지 않았던 것이죠.

여기까지 보면 아브라함은 정말 멋진 믿음의 영웅입니다. 엄청난 군사적 승리를 거뒀고, 영적인 축복도 받았으며, 물질의 유혹까지 단호하게 신앙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는 이제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능력 있고, 가장 영적인 사람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창세기 15장 1절은, 우리가 기대했던 믿음의 영웅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지극히 연약하고 두려움에 흔들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 그 후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임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방패니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

그 후, 바로 큰 승리를 거둔 직후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긴 승리자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첫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브람아, 잘했다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지금, 그 승리의 순간 직후에, 오히려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무엇이 그를 두렵게 했을까요?
첫째는, 현실적인 두려움입니다.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대적했던 엘람 왕은 당시 최강의 권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왕이었습니다. 조공을 끊었다고 주변 부족들을 연합해서 반란을 일으킨 왕들을 초토화시켰던 왕입니다. 이번 롯 구출 작전은 사실 정면승부가 아니라, 밤에 몰래 쳐들어간 기습 작전이 성공한 것입니다. 만약 엘람 왕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전열을 가다듬고 엄청난 군대를 이끌고 보복하러 내려온다면, 다음 전쟁은 아브라함이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둘째는, 내면의 두려움입니다.
저는 액션 영화나 전쟁 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나 괴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치우죠. 그런데 그건 영화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실제 인간의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규모의 살인과 죽음, 그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고, 나 자신도 실제로 죽을 수 있었다는 그 끔찍한 가능성을 경험한 후에,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을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처참하게 다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삶이 언제든지 이렇게 급작스럽게 끝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겠죠. 전쟁의 승리는 기뻤지만, 밤이 되어 홀로 자신의 장막 안에 앉아 있을 때, 그를 사로잡은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텅 빈 장막의 적막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실존적인 공허함'이었습니다. 내가 이런 큰 승리를 얻어봤자 무슨 소용인가? 이 모든 것을 누구에게 물려준단 말인가?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두려움은 의심으로 번져나갑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그를 부르실 때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받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80세가 넘은 나이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아 보이고, 목숨 걸고 되찾아온 조카 롯마저 다시 소돔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모든 소망을 내려놓은 채, 보복의 두려움과 실존적인 공허함 속에서 잠 못 이루고 있던 아브람의 모습을 볼 때 성도님들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브라함의 이런 모습이 실망스러우신가요?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리도 삶을 짓누르는 문제의 무게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과 내 현실의 문제 사이에서 거대한 괴리를 느끼며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가?'라는 의심이 생겨납니다.

그 외로운 장막 안에 홀로 앉아 있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방패니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 보복이 두려운 아브람에게 내가 너의 방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군사를 데려갈 수 있도록 해줄게 가 아니라, 창조주인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친히 막아주겠다고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소돔 왕의 상급(재물)을 거절한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재물이 너의 상급이 아니다. 아브람아, 나 자신이 바로 너의 가장 큰 상급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방패와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는데,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브람의 반응은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납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응어리를 토해냅니다.

2절과 3절입니다.
2) 그러자 아브람이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제가 자식이 없으니 제 재산의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될 것입니다.”
3) 아브람이 다시 말했습니다. “주께서 제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제 집에서 난 하인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상급이요? 도대체 지금 저에게 무엇을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제 상황을 보십시오.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다는 그 상급과 제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습니다. 자손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지가 언젠데, 이제까지 아들 한 명 주시지 않으셨잖아요. 됐습니다. 아들 낳는 거 이제 포기할게요. 그냥 제 집에서 난 하인 엘리에셀을 저의 상속자로 삼겠습니다.

성도님들, 이것은 아브람이 스스로 만든 현실적인 대안이었습니다. 당시 고대 법률에는 나이가 들도록 후사가 없을 경우, 가장 믿을 만한 종을 양자로 삼아 노년을 돌보게 하고 장례까지 치르게 한 뒤 전 재산을 상속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공식적으로 접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장막 안에서, 자신의 논리와 경험이라는 좁은 시야로, 엘리에셀이라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답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그 답을 확인받으려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 앞에서, 자꾸만 우리가 계산해 낸 초라한 엘리에셀을 내밉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너무 크고 비현실적이어서, 내 손에 잡히는 이 작은 현실이라도 붙들고 싶은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브람의 불평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의 논리를 반박하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십니다.

먼저 4절에서, 아브람이 스스로 만든 현실적인 대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4) 그러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네 상속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네 몸에서 나온 사람이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대안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나온 사람" 이라고 말씀하시며, 약속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증하십니다.

그리고는, 5절 말씀입니다.
5)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을 세어 보아라. 과연 셀 수 있겠느냐?”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손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그의 장막 밖으로 이끌어 내십니다. 장막 안에서 아브람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늙어가는 자신의 몸, 불임인 아내, 그리고 종 엘리에셀뿐이었습니다. 그의 시야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절망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을 세어 보아라." 아브람은 고개를 들어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고대 근동 사막의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인간의 시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수의 별들이 보입니다.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 아브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이 얼마나 작은 자인지, 자신의 논리가 얼마나 초라한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한계, 나의 불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장막 안에서, 하나님의 광대하심,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가득 찬 장막 밖으로 아브람의 시야를 옮겨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시선을 문제에서 약속으로, 땅의 현실에서 하늘의 주권자에게로 옮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아브람의 늙은 몸과 사래의 죽은 태를 통해 아이를 만들 것인지, 그 생물학적인 과정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그에게 당신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눈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람아, 저 별들을 누가 만들었느냐? 내가 만들었다. 저 별들을 누가 지금도 붙들고 있느냐? 내가 붙들고 있다. 저 무수한 별들을 이름 하나하나 불러가며 운행하는 내가, 너에게 아들 하나 주는 것을 못하겠느냐?" 그리고 그 별들 아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 자손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압도적인 하나님의 자기 계시 앞에서, 아브람의 모든 의심과 두려움과 논리가 녹아내립니다. 6절입니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그런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이 나이에 무슨 아들입니까"라고 되묻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보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대안'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고,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을 의롭다 여기셨습니다.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의인이 아니지만 의인으로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아브람은 원래도 죄인이었지만, 자식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죄악된 모습을 하나님 앞에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람의 모습을 묵묵히 참고 위로해 주시고,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보여주시며 다시 한 번 약속을 주셨고,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겨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오늘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어두운 장막' 안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엘리에셀', 나만의 ‘대안'을 붙들고 있습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그리고 우리를 그 절망의 장막 밖으로 이끄십니다. "밖으로 나오너라.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아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라고 하시는 '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모든 약속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논리와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십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그 놀라운 복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하늘의 뭇별과 같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그 압도적인 능력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완벽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 아브람처럼, "여호와를 믿는 것"입니다.

이 예배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장막'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현실은 막막할지 모릅니다. 아브라함도 그날 밤 이후, 이삭을 얻기까지 15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사이 '이스마엘'이라는 더 큰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장막 밖으로 나가기 전의 아브람은 '현실'에 갇혀 '약속'을 의심했지만, 텐트 밖을 경험한 후의 아브람은, 비록 '현실' 속에 살지만 '약속'을 품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텐트 안에 살지만, 그 텐트 천장 너머에 있는 하늘의 별들을 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엘리에셀'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려놓고, 여러분의 시선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상황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연약함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대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 믿음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삶 속에는 답답한 일, 앞은 보이지 않고 내 힘으로 해결 못할 일,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아브람처럼 어두운 장막 안에 갇혀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며, 내가 생각하는 대안을 의지하려 했던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다시 우리의 삶의 장막으로 돌아갑니다. 절망으로 가득 찬 그 좁은 장막 밖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시선을 절망적인 현실에서 신실하신 하나님께로 옮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사, 상황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참된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542장 / 구주 예수 의지함이

폐회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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