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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1월 5일 수요예배 | 운영자 | 2025-1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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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05 수요 예배 예배로의 부름 : 이사야 40:31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예배 기원 저희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 한 주간의 삶 속에서 지친 저희들이 주님을 앙망하며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 시간 저희의 연약한 영혼을 만져주시고,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하늘의 새 힘을 부어 주시옵소서. 남은 한 주를 승리하며 살아갈 능력을 덧입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양 : 412장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기도인도 : 김정임 집사 성경 봉독 : 창세기 14장 1-24절 설교 : 승리보다 위대한 선택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수요 저녁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저희의 마음을 열어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 영혼의 참된 양식이 되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히 인도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여 수요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창세기 14장의 이야기입니다. <롯의 선택 : 눈에 보이는 풍요를 좇다> 지난 시간, 우리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나누었습니다. 그는 삼촌 아브라함을 떠나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땅을 선택했습니다. 물이 넉넉해서 마치 에덴동산 같았고, 모든 것이 풍요로워 보이는 애굽 땅 같았던 곳, 바로 소돔이었습니다. 여러분, 롯의 선택은 어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입니다. 더 나은 환경, 더 많은 기회, 더 풍요로운 삶을 좇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이곳에만 가면, 이 문제만 해결되면, 이 직장에만 들어가면, 내 삶이 활짝 필 거야.' 롯도 아마 그런 기대를 가득 품고 소돔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롯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꿈꾸던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가 그토록 원했던 그 땅에서 롯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거대하고 무서운 '전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당시 고대 근동의 패권을 쥔 네 명의 강력한 왕과,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한 다섯 명의 왕이 맞붙은 거대한 전쟁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소돔을 비롯한 다섯 왕이 12년 동안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13년째에 배반을 한 것입니다. 조공을 바치지 않기로 한 거죠. 아마 '이제 우리도 힘을 합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네 왕의 연합군은 다섯 왕의 군대를 무참히 짓밟았고,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12절은 이 거대한 세상의 전쟁이 롯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보여줍니다. 12) 또한 그들은 소돔에 살고 있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의 재산까지 약탈해 갔습니다. 롯은 그 전쟁과 아무 상관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그저 그곳에서 잘살아 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안전을 맡기고 의지했던 '세상의 풍요로운 시스템'이 무너지자, 롯 자신도 그 시스템과 함께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가족과 함께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 : 보이지 않는 약속을 지키다> 자, 바로 그때, 롯이 그 풍요의 땅에서 모든 것을 잃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을 때, 그의 삼촌 아브라함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13절은 한 도망자가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와서 이 소식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아모리 사람 마므레의 큰 나무숲 근처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롯처럼 세상의 중심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약속의 땅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그저 장막 안에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 다 잘되게 해 주시겠죠'라며 기도만 하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13절 하반절을 보면, 마므레는 땅 이름이기도 하지만 사람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에스골과 아넬이라는 형제가 있었죠.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14절을 보면, "아브람은 자기 조카가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 집에서 낳아 훈련받은 사람 318명을 거느리고..." 아브라함에게는 318명이나 되는, 집에서 직접 기르고 훈련시킨 사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키우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롯과 아브라함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라고 하면, 교회에서 열심히 예배드리고, 뜨겁게 기도하고, 봉사하는 모습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런 '교회 안의 믿음'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가나안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가만히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이 땅을 주실 것을 믿었기에,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이 땅을 지키고 관리해야 할지, 필요한 것들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동맹을 맺고, 자신과 가족을 지킬 힘을 길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이었습니다. 입으로만, 마음으로만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으로, 준비함으로, 삶으로 증명되는 진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진짜 시험 : 승리 후에 찾아온 두 명의 왕> 아브라함은 그 조카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이 훈련시킨 318명의 군사를 이끌고 즉시 추격에 나섭니다. 상대는 다섯 나라의 연합군을 격파한, 당대 최강의 네 나라 연합군입니다. 318명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무모해 보이는 싸움입니다. 실패하면 아브라함 자신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맹군인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와 함께, 그 막강한 군대를 밤에 기습하여 격파합니다. 그리고 롯과 그의 모든 재산, 그리고 소돔의 모든 사람을 되찾아 돌아옵니다. 이것은 기적적인 승리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전략이나 318명의 용맹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자, 이제 아브라함은 영웅이 되어 금의환향합니다. 가나안 땅의 새로운 실력자로 떠올랐습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믿음으로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십니다!"라고만 말하고 설교를 마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시험은 전쟁터에서가 아니라, 바로 그 승리의 정점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직후에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17-18절, 승리한 영웅 아브람 앞에 두 명의 왕이 맞이하러 나옵니다. 한 명은 살렘 왕 멜기세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소돔 왕이었습니다. 이 두 왕은 아브라함에게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가치관, 두 개의 복을 제안합니다. <첫 번째 만남 : 살렘 왕 멜기세덱> 아브람이 소돔 왕과 본격적으로 대화하기 직전, 18절에 멜기세덱이 먼저 등장합니다. 18) 그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갖고 왔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살렘', 즉 '평화'의 왕이었습니다. 그가 무엇을 가지고 나왔습니까? '떡과 포도주'입니다. 그는 승리한 아브람에게 승리의 대가를 요구하거나 거래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에 지쳐 돌아온 용사의 허기와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해, '쉼'과 '회복'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것은 '거래'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이 축복의 내용이 정말 중요합니다. 19)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하며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의 창조자인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길 빕니다. 20) 당신의 적들을 당신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찬양하시오.” 아브람은 갖고 있는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이 위대한 승리를 완전히 '재해석'해 줍니다. "아브람이여, 당신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이긴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318명이 강해서도, 당신의 전략이 뛰어나서도 아닙니다. '천지의 주재', 즉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의 주인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대적을 당신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지금 승리의 기쁨에 취해 교만해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순간에 서 있습니다. "내가 해냈어!", "나의 318명이 이겼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멜기세덱이 나타나 그 모든 영광의 초점을 아브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정확하게 옮겨놓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선포 앞에서 아브람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20절 하반절, "아브람은 갖고 있는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십일조입니다. 오늘날 많은 분이 십일조를 율법처럼, 세금처럼 어렵게 생각합니다. "세전으로 내야 합니까, 세후로 내야 합니까?", "자녀 용돈도 십일조를 떼야 합니까?" 이런 계산적인 질문에 갇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이 시작한 십일조는 그런 율법이나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멜기세덱의 선포에 대한 아브람의 '아멘!'이요, '맞습니다!'라는 감격의 고백이었습니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이 모든 승리, 이 모든 전리품은 내 것이 아니라,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일 뿐입니다." 고대 히브리 개념에서 '십분의 일'이나 '첫 번째 것'은, 나머지 아홉을 대표하는, 즉 '전부'를 의미했습니다. 아브람은 십일조라는 행위를 통해, "나의 생명과 나의 모든 소유, 이 100% 전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위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두 번째 만남 : 소돔 왕> 자, 이 거룩하고 감격적인 예배의 순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소돔 왕'이 끼어듭니다. 그가 아브람에게 매우 합리적이고 관대해 보이는 제안을 합니다. 21)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말했습니다. “백성들은 내게 돌려주고 물건들은 그대가 가지시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나는 내 백성들, 즉 사람들만 돌려받으면 족하네. 이 엄청난 재물들, 즉 물품들은 목숨 걸고 싸운 자네가 다 가지게. 자네는 그럴 자격이 있어.' 바로 이 순간이, 아브람이 치렀던 전쟁보다 더 위험하고 더 결정적인 유혹의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돔의 방식', 즉 '세상의 방식'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 '거래'를 제안합니다. "네가 수고했잖아. 네가 밤새웠잖아. 네 능력이 출중하잖아. 그러니 이 성공은 너의 것이야. 이 보상을 마음껏 누려. 너는 이럴 자격이 있어." 만약 아브람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단숨에 가나안 땅 최고의 갑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동시에 평생 소돔 왕에게 '빚진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훗날 사람들은 아브람을 보며 이렇게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저 아브람이 어떻게 저렇게 부자가 되었는지 알아? 다 우리 소돔 왕께서 관대하게 전리품을 몽땅 몰아주셨기 때문이야. 아브람의 성공 뒤에는 우리 왕의 도움이 있었지." <아브라함의 위대한 거절> 아브람은 바로 그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는 '누가 나를 부요하게 하였는가?'라는 질문의 답이 '소돔 왕'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멜기세덱을 통해 ‘천지의 주재'를 만난 아브람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소돔 왕을 향해 손을 들어 단호하게 맹세합니다. 이 22절과 23절의 선포가 오늘 말씀의 절정입니다. 22) 그러나 아브람은 소돔 왕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 손을 들어 맹세합니다. 23) 왕께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신발 끈 하나라도 받지 않겠습니다. 왕께서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아브람은 지금 소돔 왕에게, 방금 멜기세덱이 선포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이름,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외치고 있습니다. "나를 부요하게 하시는 분은 당신, 소돔 왕이 아닙니다. 나의 공급자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왕께서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아브람의 관심은 자신의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명예'였습니다. 그는 창세기 12장에서 "내가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 한 분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자신을 부자로 만드실 분은 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늘의 왕, 하나님이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실 한 오라기, 신발끈 하나"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작은 지분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기 위한 거룩한 결단이었습니다. <우리의 선택: 누구를 왕으로 섬길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래전 이 이야기가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매일 크고 작은 승리를 경험합니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서업이 잘되고, 자녀에게 좋은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승리의 노래를 부를 때, 어김없이 두 왕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세상의 왕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네가 잘나서 그래. 네 능력이야. 그러니 마음껏 누려. 이 정도 타협은 괜찮아." 우리는 세상이 주는 안정감을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주시는 안정감보다 더 신뢰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의 인정까지 겸하여 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참된 멜기세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곁에 서 계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멜기세덱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평강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는 이유는, 예수님이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 그 '떡과 포도주'로 배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굶주려 있으니, 소돔 왕이 주는 세상의 것이 커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한 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보상을 챙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을 만나러 예배의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분이 주신 '떡과 포도주'를 받으며 "주님, 이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 은혜로 배부른 사람,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만이, 세상의 왕 소돔을 향해 아브람처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실 한 오라기'에 내 영혼을 팔지 않겠습니다. 나의 삶을 부요하게 하시는 분은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은 그렇게 큰 부를 포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로 다음 장, 창세기 15장에서 그에게 나타나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방패니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 할렐루야! 아브람은 소돔 왕의 상급을 거절하고, '하나님 자신'을 상급으로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도, 소돔 왕의 달콤한 거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선택하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복된 삶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아브람의 믿음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두 왕, 두 길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롯처럼 눈앞의 풍요를 좇아 소돔 가까이 거주하려 했고, 작은 승리 앞에서도 교만하여 소돔 왕이 주는 것들을 탐냈었던 연약한 죄인들임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를 날마다 만족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은혜가 너무나 커서, 세상이 주는 '실 한 오라기'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할 힘을 주시옵소서. 오직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복이시며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심을 증명하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288장 /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폐회 : 주기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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