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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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2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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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2 "수요 예배 순서" 올립니다. 찬양:


1.목상: 시편 146편 5-10절

2.기원

3.신앙 고백:사도 신경

4. 찬양: 23장 "만임이 내게 있으면":

5. 기도 인도: 이 승숙 집사

6. 성경 봉독: 히브리서 11장 1-11절

7. 말씀 선포: 사순절 말씀 #1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

오늘은 히브리서 11장 13-16절의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2025년도 사순절 말씀 첫 번째로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라는 제목으로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히 11:13-16>
(13)이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했지만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으며 세상에서는 외국 사람이며 나그네임을 고백했습니다.
(14)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향을 찾는 사람들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15)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나은 곳을 사모하는데 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한 도시를 예비하셨습니다.

고향(故鄕=本鄕)이란 무엇입니까?...
사전에 "고향"이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고 정의합니다.
고향은 누구나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곳 고향에는 부모님들과 형제들, 그리고 친척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고향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신나고 즐거운 여행길입니다.

지난 1월 29일, 설 명절은 국내외 상황이 매우 혼란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설 명절을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맞이한 명절 이었습니다. 더욱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혼란한 정국이 많은 사람들의 우려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디.

세상사람들이 명절에 고향을 찾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본향을 그리워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명절에 고향으로 파도처럼 밀려가는 사람들이 온갖 고생도 감수하며 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는 여정(旅情)은 마치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는 산란기(產卵期)의 연어를 연상케 합니다.

사람들은 편안할 때는 고향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다가도 자기의 육신이 병들고 아프면 고향 생각을 합니다. 또 사업에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고향 생각을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蕩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의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은 가진 돈이 있을 때, 허랑 방탕 할 때는 고향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돈 떨어지고, 죽자 살자 하던 친구들 다 멀어지고, 흉년 들어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 그제야 아버지를 생각하고 고향을 생각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사랑의 장’이라고 한다면,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의 장’입니다. 오늘의 본문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불려집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웅장한 믿음의 장이요. 믿음의 역사요. 믿음의 실증론(實證論)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인류의 조상 아벨과 가인의 믿음을 비교한 후, 선사시대의 에녹 같은 이의 믿음을 논거하면서, 이스라엘의 조상이요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의 믿음, 그리고 야곱의 삶을 마치 고향 가는 길로 묘사하여 그의 믿음 생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고, 세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으며,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그 곳을 향하여 인생길을 걸어간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의 선진(先進)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우리가 가야 할 본향(本鄕)에 대한 우리의 여정을 제시해 줍니다.


I.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을 따라 살았고,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본문 13절에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했지만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으며 세상에서는 외국 사람이며 나그네임을 고백했습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첫째는 이 길을 따라 어느 정도 가면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그들의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곳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열차나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직접 자가용을 운전하여 교통 법규를 따라 가야 합니다.

우리의 본향(本鄕)인 하나님이 예비하신 우리의 영원한 고향, 하나님 앞에 가는 길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이며, 그분의 존재하심과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두었을 것이다.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라고 주님은 우리의 본향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 본향은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은 볼 수 없고 약속에 의해 바라보기만 하지만, 그래도 지금 고향에 와 있는 것같이 마음속에 그리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음이라는 것은 성경을 통하여 예언된 말씀을 현재 이루어진 것과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처녀가 한 총각을 마음에 두고 흠모(欽慕)하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그 총각이 처녀에게 청혼을 해 왔습니다. 처녀는 기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결혼 날짜가 두어 달이나 남아 있지만, 벌써 결혼해서 경험하게 되는 것보다 더 진한 행복감에 젖어 있습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약속을 마치 지금 이루어진 것처럼 여기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 명절에 교통 사정이 혼잡함에도 고향으로 향합니다. 그들의 고향은 아직도 멀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후면 도착할 것을 믿고, 그곳에서 부모님과 친구와 친척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과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할 때 벌써부터 그들은 기쁘고 즐거워집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참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미 그 약속이 성취된 것처럼 살았기에 신앙의 조상(祖上)들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말씀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만일 자동차를 타고 고향 가는 사람이라면 교통 법규를 제대로 지키며 가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호를 지키고, 제한 속도도 지키고, 차선도 지키며 안전하게 운행해야 고향에 제대로 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의 길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지켜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 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경우를 예로 들면,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과 형제와 다투지 않는 것, 그리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인 줄 믿으시고 믿음으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믿음의 사람들은 본향을 향해가는 나그네들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천국의 고향길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항상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천국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해 주신 곳입니다. 그곳에서 우리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앞서간 성도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어디나 근심과 걱정과 한숨과 아픔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고향 천국에는 눈물도 근심도 고통도 없는 곳입니다. 요한 계시록 21장 3, 4절 말씀입니다.

(3)그리고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4)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더 이상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나 우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을 것이다. 이는 처음 것(고통이나 슬픔)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에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機會)가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천년만년(千年萬年) 살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떡하면 더 좋은 집과 가구와 차를 마련하느냐? 에 골똘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명보험은 기본이고 노후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통장에는 비자금을 얼마나 비축해 두어야 하는가? 에 대한 염려와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세상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느냐? 보다도 돌아갈 내 고향 천국에서 누릴 상급을 더 귀하게 생각하는 지들이므로 하늘의 것을 먼저 생각하고 영혼의 때를 미리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고린도전서 7장 31절에서
"세상의 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다 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습은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에
"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나은 곳을 사모하는데 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더 좋은 본향이 어디입니까 ?

방랑시인 김삿갓이 한곳에 이르러 해가 저물었습니다. 마침 그 동리에 대궐처럼 큰집이 있는지라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하니 주인은 이 집은 여관방이 아니니 저 건너 객주 집으로 가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때 김삿갓은 묻기를 이 큰집에 몇 대나 살아오시는 겁니까 ? 예 16대를 살아왔습니다. 그 16대 이전의 조상님들이 생존하신가요 ? 그분들이 다 세상을 떠났지요. 그렇다면 당신도 얼마 있다가는 떠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나그네요 나도 나그네로서 같은 처지에 있는데 하룻밤만 쉬었다 갑시다. 그래서 같이 쉬었다 같다고 합니다.

인생은 본향 집(천국)을 떠난 나그네이기 때문에 항상 괴롭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고독하고, 안정이 안됩니다. 이 세상은 어디를 가든지 다 나그네요(벧전2:11, 레25:23, 대상29:15, 시39:12; 119:19, 54, 창47:9), 객지이니 지구촌(거기)에 정착할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나그네가 호텔 방에 들게되면 숙박 계를 쓰게 됩니다. 거기에 보면 여러 가지 질문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첫째: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 (출신지)
둘째: 지금 무엇 하러 여기에 왔습니까 ? (용무)
셋째: 몇 일 동안 이곳에 머물다 가실 것입니까? (숙박일)
넷째: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 ? (행선지)를 기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
신학자 리차드 니버는 그의 "계시의 의미"라는 책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이민간 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치 순례자처럼 "하나님 나라(천국)"라는 거룩한 행선지를 향해 걸어가는 그 순례의 길을 지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순례자의 행로에는 역경과 환난과 시련이 많습니다. 때로는 앞에 가로 놓여 있는 높은 산을 넘고, 험한 골짜기를 지나며, 사나운 파도와 광풍을 헤쳐 나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 어이 여기 왔던고?"라고 한숨쉬며 눈물 골짜기를(시84:6) 지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다음 행선지(천국)를 향하여 뒤를 돌아보지 말고 오직 앞만 바라보고 걸어가야 합니다. 파도가 아무리 높이 휘몰아쳐 오고 광풍이 사납게 불어와도 오직 앞만 향하여 노를 저어 나가야 합니다. 산이 아무리 높고 골짜기가 아무리 깊어도 오직 위만 바라보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순례자는 영광의 행선지(목적지)인 천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애굽을 떠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 광야에서 40년간 순례의 길을 걸어가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마침내 "Cannan"이라는 최종 행선지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나그네이지만, 최종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 가나안 복지(천국)입니다. 거기는 젖과 꿀이 흐르며 오직 풍성함이 넘칩니다. 한없이 아름답고(계21:2), 먹을 것이 풍부하며 무공해 지역이고(계22:1-3), 온갖 보석으로 꾸며진 화려한 도성(都城)이요(계21:11-27), 사망을 비롯한 인간적 비애(悲哀)가 전혀 없는 곳(계21:4), 하나님이 계셔서 한없는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계22:3-4).

그 최종 행선지에 도착할 때까지 어떤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넘어지지 말고 하나님 말씀의 뜻을 따라 우리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하는 것입니다.


3. 이 세상살이는 늘 천국 소망중에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1940년도에 조경환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로 발매된 “나그네 설움”이라는 가요가 있습니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 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 땅 밟아서 돈 지 십 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속엔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참으로 나그네의 심정을 잘 묘사하였습니다.

나그네는 편안함이 없습니다. 늘 고향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제나 저제나 고향 가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고향에 찾아가 안식을 누릴 때까지, 고난의 떡과 눈물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면서, 이 땅에서의 온갖 시련과 어려움 들을 기쁨으로 참고 인내(忍耐)하였습니다. 비록 땅에서 때로는 환난을 당하고,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오고, 육체의 질병으로 곤고함을 당할지라도, 그들의 삶이 위축되거나 비겁해 지거나 흔들림이 없이 굳세게 믿음의 길을 걸어 나아갔던 것입니다. 아무리 길이 막혀도 고향 가는 길이 즐거운 것처럼, 천국을 향해 가는 인생길은 힘들어도 즐겁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에 가면 영원한 복락과 안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런 소망을 가진 성도에게는 이미 마음의 천국이 있습니다. 하늘의 소망을 가진 성도는 마치 고향으로 가는 귀성 차표를 사 놓고 기뻐하는 사람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울러 본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지난 세월을 한탄하지 않습니다.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애굽의 노래를 부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은 세상 냄새에 취하여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믿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더 나은 것을 향하여 움직이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정체하지 않습니다.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더 나은 것을 바라기 때문에 이 땅에서도 더 나은 것, 더 온전한 것, 더 선한 것, 더 의로운 것 이런 것을 바라며 삽니다.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시는 성령과의 동행을 계속하여 나갑니다. 이것이 세상적으로는 개혁이고 변화지만 우리는 성화(聖化)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순례자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땅을 걷는 순례자이며 동반자입니다. 그분의 제자들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주님이 부르실 때에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2025년도 부활절을 기다리는 나그네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이 세상살이를 오직 믿음으로 살았고, 또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고향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이 세상 나그네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을 말합니다. 고향은 영혼의 안식처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본향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과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찾아가듯이 우리는 본향을 그리워ㅗ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기까지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Amen !!

8. 찬송: 438장 "네 영혼이 은총 입어"

9.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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