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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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5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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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5 "수요 예배 순서" 올립니다.


1.묵상: 시편 121편 1-8절

2.기원:

3.신앙 고백(사도 신경)

4.찬양: 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5. 기도 인도:오 인권 집사

6. 성경 봉독: 느헤미야 1장 1-11절

7.말씀 선포: "그리스도인의 애국심"

<느헤미야 1장 1-11절>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입니다. 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슬르 월 내가 수산 성에 있을 때에
(2) 내 형제 가운데 하나니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유다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그곳에 남아 있는 유다 사람들의 안부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었습니다.
(3) 그들이 내게 말했습니다.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그 지방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지금 큰 고난과 수모를 당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졌고 그 성문들은 다 불에 탔습니다.”
(4) 나는 이 말을 듣고 그만 주저앉아 울고 말았습니다. 나는 몇 날 며칠 동안 슬픔에 잠긴 채 금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5) 말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과 맺은 사랑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6)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주의 종이 밤낮으로 주 앞에 기도하니 주께서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떠서 이 기도를 들으소서. 저와 제 조상의 집을 비롯해 우리 이스라엘 족속이 주님을 거역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7) 우리가 주께 매우 악하게 굴었습니다.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주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우리가 지키지 않았습니다.
(8)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너희가 만약 죄를 지으면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 버릴 것이고
(9) 만약 너희가 내게 돌아와 내 계명을 지키면 너희 포로 된 사람들이 하늘 끝에 있더라도 내가 그들을 거기에서부터 불러 모아 내 이름을 위해 선택해 놓은 곳으로 데려올 것이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10) 그들은 주께서 주의 큰 능력과 주의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들입니다.
(11) 주여, 이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주의 종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오늘 주의 종이 이 사람 앞에서 은총을 입고 잘되게 하소서.” 그때 나는 왕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3월 1일(토요일)은 기미 독립 선언서를 선포한지 106년 째가 되는 삼일절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1919년 3월 1일에 독립 선언서를 선포하였습니다.

1945년 이 땅이 해방되는 날까지 우리는 내 나라 내 땅이면서도 자유롭게 걷지 못하였고,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였으며, 우리의 글도 빼앗겼고, 우리의 고유한 이름마저도 빼앗겨 버렸었습니다.
그때에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여 독립을 외치며 피 흘렸던 날이 우리가 기억하는 3.1절입니다. 일제의 포악한 무력 정치에 대항한 항일투쟁이 국내외에서 고조되고 있을 무렵인 1919년 1월 고종황제가 갑자기 승하셨습니다. 그러자 “일본인들이 황제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일본에 대한 증오심은 극에 달하게 되었고, 일본 동경 유학생들의 2.8선언이 있은후 국내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자주 독립의 결의를 굳게 하고 그것을 선언하여 우리 나라가 독립국가임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 만대에 고하야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장(仗)하야 차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야 차를 포명(布明)함이며, 민족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 발전을 위하야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發露)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대 기운에 순응병진(順應幷進)하기 위하야 차를 제기함이니 시(是)이 천(天)의 명명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공존 동생권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 하물(何物)이던지 차를 저지 억제치 못할 지니라......

독립 선언서의 작성은 최남선이 맡았고 거기에 기독교계에서 16명, 불교계 2명, 천도교 15명이 대표로 서명을 했는데, 3월 3일 고종 황제의 인산일(국장)을 맞아 전국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을 예상하고 33인은 거사 일을 3월 1일로 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립선언서의 낭독은 처음에는 탑골공원에서 하기로 했다가 장소를 변경하여 3월 1일 오후 2시 인사동 태화관에서 낭독하고는 만세를 부른 후 일본 경찰에게 잡혀갔습니다.

그 후 3.1운동은 조직적으로 진행되었고, 삽시간에 전국적인 만세 운동으로 번졌습니다. 그때 일제는 만세를 부르는 군중을 총칼로 잔인하게 탄압하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을 당했고, 특히(수원의) 제암리에서는 사람들을 교회에 가두고 불을 질러 무참히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3.1만세운동에 참가한 사람은 그 수가 2백만이 넘었고, 사망자가 7천5백여명, 부상자가 1만 5천여명 체포되어 감금된 사람이 5만명에 달했다 합니다. 이 3.1운동은 우리나라가 자주 독립국인 것을 온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는데 큰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 운동을 가리켜 단순히 정치운동이 아닌 "민중운동"이라고 규정짓는 학자들도 있고, 종교적 측면에서 "한 민족의 출애굽 운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그 말이 옳습니다. 삼일절의 거사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신앙적 애국심의 폭발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도 더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은 그 3.1운동의 중심에 그리스도인들이 다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소수 집단에 불과했습니다. 3.1운동 당시 그리스도인은 전체 인구의 2%로 채 되지 않는 약 30만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회를 향한 강한 역동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과 30만의 그리스도인들이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섰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탔으며, 민족에게 소망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 천만이 넘는다는 그리스도인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운동이 일어난 지 106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시점에서 "이 운동이 우리에게 남긴 신앙적 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날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 민족의 나갈 길을 신앙인의 입장에서 스스로 결단해야 할 때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정치계에 많이 진출해 있고 요소요소마다 믿는 사람들이 들어가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때처럼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는가?"하는 것도 우리는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은 황폐화된 나라, 흩어져 버린 민족을 생각하며 울었던 『느헤미야』를 통하여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고자 합니다. 느혜미야의 마음을 살펴볼 때 우리 모두에게 나라 사랑의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1.느헤미야는 조국을 위하여 울었습니다.
BC 420 년경 느헤미야는 바사왕 아닥스사스다 1세를 가까이서 모시는 영향력 있는 지위에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족할 만한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본국 유다의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성문들이 다 불타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합니다.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서 울며, 수일 동안을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에게는 동족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며 슬퍼할 줄 아는 가슴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동족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나는 내 형제, 곧 육신을 따라 된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 할지라도 좋겠습니다"고 롬9:3 동족을 향한 애끓는 사랑을 고백했던 바울 사도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슴을 갖고 계셨습니다. 눅19장 42-44절에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고 우시면서
(42)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네 눈에는 이것이 지금 가려져 있구나. (43) 네 원수들이 네 주위에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너를 포위하는 날이 올 것이다. (44) 그들은 너를 짓밟고 너와 함께한 네 자식들도 짓밟을 것이다. 돌 위에 다른 돌 하나라도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도님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 시대를 바라보며 이 나라가 되어지는 모양을 보며 가슴아파하는 이런 살아 있는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나 편하고 나 잘나간다”고 “이 민족이, 나라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망국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느헤미야의 조국과 민족을 향한 뜨거운 심장이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조국이 바벨론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그 곳에서 높은 관직에 올라 편안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형편이 궁금해서 고국엘 다녀온 사람에게 조국의 형편을 묻습니다. 그리고 조국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견딜 수 없어서 왕에게 "유대 땅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조국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모른척할 수도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967년 이스라엘이 아랍권의 13개국과 전쟁을 할 때의 일입니다. 이른바 6일 전쟁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 『다얀』장군은 전 세계를 향하여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군대는 막강한 최신 무기로 무장하였다. 우리는 이 무기로 아랍 연합군을 몇 시간 내에 물리칠 것이다" 이 소식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퍼지자 미국과 당시 소련 등 강대국까지도 초 긴장상태에 돌입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신 병기를 개발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무기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이 개발한 신무기를 알아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알아낼 수가 없었고, 단 6일만에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후 『다얀』장군은 이같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단 세 시간만에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최신 무기 덕분이었다. 이스라엘 전군의 가슴속에 비장되어 있었던 그 무기는 바로 "우리의 불타는 애국심"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3.1운동 당시 33인의 이름으로 선언문이 발표되었지만, 사실은 함께 나선 분들이 70여명이었다고 합니다. 모두 서명하겠다고 하자 고등법원 판사였던 함태영 목사님이 "70인이 한꺼번에 죽어 버리면 다음에 계속할 사람이 없지 않느냐"고 해서 1,2,3회로 나누기로 하고 먼저 25명을 결정했는데, 그럼에도 서로 먼저 죽겠다고 자원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나다 보니 결국 33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 참으로 부서운 결단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선배들은 "조국을 위해서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내가 먼저 바치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울 줄 아는 가슴을 가진 사람, 이 시대에도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 바로 우리가 있기를 원하십니다.


2.느헤미야는 조국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주의 종이 밤낮으로 주 앞에 기도하니 주께서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떠서 이 기도를 들으소서. 저와 제 조상의 집을 비롯해 우리 이스라엘 족속이 주님을 거역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느헤미야의 이 기도는 모세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절하며 범죄한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과 같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니다. 그러나 합의 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2~32)

믿음의 사람들은 백성들의 죄를 위해 대신 기도하되 자기가 범죄한 것처럼 가슴 아파하며 기도했습니다. 교회는 민족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중보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눅23:34) 죄인들을 위한여 중보기도 하셨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3.1운동 관련자 공소 재판에서 "피고는 항상 일, 한 합병에 불평을 품고 조선독립을 희망하였는가?"라는 총독부 판사의 질문에 답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중에 이승훈 선생은 "그렇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바가 있으니 오색 인종 어느 누가 조국의 흥왕과 조국의 번영을 바라지 아니하며, 더욱이 남의 나라에 합병된 자기 나라의 독립을 바라지 아니하였으랴"고 답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위한 중보기도에 늘 힘썼기에 가능했던 대답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이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위정자를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경제인과 군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애국(愛國)인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느헤미야는 동족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주여, 이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주의 종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오늘 주의 종이 이 사람 앞에서 은총을 입고 잘되게 하소서.....”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한 후에 아닥사스다에게 나아가서 조국의 사정을 아뢰었습니다. 왕의 허락을 받고 조국에 돌아가 무너진 성벽을 쌓았습니다. 낙심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에게 소망을 주는 운동이었습니다. 독립선언문 가운데는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이 민족에게 주고자 했던 대목입니다.

선교사 R.E스피아는 한국 선교에 대해 미국 본부에 보고하면서 "교회만이 이 나라에 있어 유일한 희망이다"라고 한 것처럼 기독교만이 이 나라 백성들에게 희망을 줄수 있습니다. 3.1운동 당시 전체 인구의 2%미만이었던 적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무엇도 아닌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조국의 아픔 민족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의 죄를 대신하여, 기도하며 민족에게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2%의 그리스도인들만으로도 민족에 소망을 주었는데, 오늘날 천만이 넘는 그리스도인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과연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3.1운동 당시에는 교회 수나 교인 수가 적었지만, 전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교회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믿어 주지 않습니다. 교회가 사회의 본이 되기는 커녕 사회를 뒤따라 가기에도 바쁩니다. 터지는 사건마다 기독교인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자성할 줄 모르고 고치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완악한지 모릅니다.

저는 수일 전에 SNS에서 ‘일본이 숨기려한 불편한 진실’ 이라는 제목의 기사 때문에 “일본 정부가 발칵뒤집어 졌다”고 합니다. 일본의 한 우익신문의 편집장 가정이 있었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기독교는 나라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국운동은 우리 자신부터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민족의 아픔을 끌어안는 가슴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아픔 때문에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출애굽 지도자 모세처럼 이 나라 이 민족을 끌어 안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물론 국경은 없습니다. 그러나 국경이 없다고 조국이 없겠습니까?

오늘날 이나라 형편을 보십시오. 정치인들은 제밥 그릇만 채우려고 정파적 파벌싸움에 몰두하여 대통령, 국무촐리, 장관들 검사들을 탄핵하였고, 나라의 안위 같은 것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지금 온 나라가 흔들리고 있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훌쩍 이민을 떠나 버립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앞날만 걱정합니다. 그래서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나라의 희망이 되는 사람들, 이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이 나라에 필요한 신앙인들이 되어 뭇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시기를 간구합니다.
Amen !!

8.찬송: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9.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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