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0일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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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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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묵상:시편 78편 1-4절
오 내 백성들아, 내 가르침을 들으라. 내 입으로 하는 말에 귀 기울이라.
내가 입을 열어 비유를 들고 옛날부터 전해 오는 비밀스러운 일들을 말해 주리라.
그것은 우리가 들어서 아는 것이고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자녀들에게 숨기지 않고 여호와께서 하신 훌륭한 일들과 그 능력과 그분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다음 세대에 전해 줄 것이다.
2.기원
3.신앙 고백
4.찬양: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5.기도: 김 주환 집사
6.성경 봉독: 시편 77편 1-12절
7.말씀 선포: “하나님 중심의 삶”
<시편 77편 1-12절>
1.내가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내 목소리로 하나님께 내 말을 들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내게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2.내가 고난 가운데 여호와를 찾았습니다. 밤새도록 지치지 않고 손을 뻗었고 내 영혼은 위로받기조차 거절했습니다.
3.나는 주를 생각하면서 속상해 했습니다. 원망할 수밖에 없었고 내 영이 어쩔 줄 몰랐습니다. (셀라)
4.주께서 눈을 감지도 못하게 하시니 너무 괴로워서 말도 못하겠습니다.
5.내가 옛날, 오래 전 일을 생각해 봅니다.
6.밤에 부르던 내 노래를 기억해 봅니다. 내가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며 영에게 곰곰이 물어봅니다.
7.“여호와께서 영원히 버리시려나? 더 이상 은총을 베풀지 않으시려나?
8.그 신실하신 사랑이 영원히 그쳤는가? 그 약속이 영원히 끝장나 버렸나?
9.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를 잊어버리셨나? 진노하셔서 그 부드럽던 자비의 마음을 거두셨나?” (셀라)
10.그러고 나서 나는 말했습니다. “내가 정말 연약하기 짝이 없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손에 붙잡혀 있을 때를 기억해 보자.”
11.여호와께서 하신 일들을 내가 기억하겠습니다. 내가 정말 오래 전에 주께서 하신 기적들을 기억해 내겠습니다.
12.내가 또한 주의 모든 일들을 깊이 생각하고 주께서 하신 일들을 말하겠습니다.
본문 시편 77편의 부제(副題)에는 ‘아삽의 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삽은 다윗 왕 시대에 레위인으로서 음악 감독이자 찬양 인도자였습니다. 그는 시편의 일부(50편, 73-83편)를 기록한 인물입니다. 아삽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불러 모으셨다'는 뜻을 지니며, 그의 자녀들도 성전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본문은 환란(患亂) 중에 깨닫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람에게 주신 감정 가운데 하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웃이 고통이나 어려움을 당할 때 같이 아파하고 위로와 사랑을 함께 나누는 마음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만 주신 아름다운 감정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과 위로가 필요한 이웃을 발견하도록 하며, 그에게 돕는 손길을 펴게 합니다.
그런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로 향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자기 연민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역사상 그 어느 시대 사람보다 처량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산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집을 갖고 있지 않은가? 저 사람은 나보다 건강하고 유능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잘 생겼고 더 매력적이고 더 부자고 더 좋은 직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비교함으로써, 자기 연민(憐憫)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비교하며 살다보니, 세상은 불공평(不公平)한 것 같고, 나는 몹시 불행한 사람, 불쌍한 사람처럼 보이며, 내 자신이 측은(惻隱)해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밖으로부터 여러 가지 환난(患難)도 우리에게 시험이 되지만, 이와 같이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스스로 시험(temptation)에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오히려 밖으로부터 오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일 수 있습니다. 마음의 균형이 참 중요합니다. 마음의 균형이 흔들려 넘어지면 결국은 다 넘어지고 맙니다. 세상에서 우리 마음의 균형을 잃고 낙심할 때가 가장 큰 위기요 고비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 성경 시편 77편은 아삽의 시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저자는 자기 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처량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내 목소리로 하나님께 내 말을 들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내게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내가 고난 가운데 여호와를 찾았습니다. 밤새도록 지치지 않고 손을 뻗었고 내 영혼은 위로받기조차 거절했습니다.
라고 언급합니다. 그는 환난과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소리높여 부르짖었고,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크게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사정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소원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 체험을 많이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도무지 들으시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밤새도록 두 손을 치켜들고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외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전혀 응답하시는 것 같지 않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을 가지게 된 그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위로를 하신다 해도 그 위로를 거부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셔서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 영혼에 곤궁(困窮)함과 고난과 아픔을 주셔서 하나님을 항상 찾게 하시고, 밤에는 잠도 자지 못하고 금식하면서 기도하도록 만드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애타게 부르짖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응답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아도 원망하거나 불평치 말아야 합니다. 인내로써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연약하기 때문에 자기 연민에 빠지면 자기는 늘 불이익을 당하고, 자기에게 아무 것도 해준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노인이 자기의 먼 친척되는 국회의원에게 다음 번 선거에는 우리 가족의 표를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깜짝 놀란 그 의원은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 도시와 마을을 위해서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해서 새로운 길도 냈고 중고등학교 지붕도 새로 고쳤고 정보 네트워크도 설치했는데 그렇게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노인은 "내 아들과 손녀에게 직장을 구해 주지도 않았고 나에게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지 않느냐"고 투덜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자기 연민에 빠져 있던 저자는 10절에서 “....“내가 정말 연약하기 짝이 없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손에 붙잡혀 있을 때를 기억해 보자.”
라고 한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기억하지 못하고 "네가 최근에 나에게 해 준 일이 무엇이냐?"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시편 77편의 저자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많음에도 최근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여, 마침내는 “하나님은 이제 나에게는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고 단정합니다. 내가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은 없고 답답하여 기도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그 섭섭한 마음에 이제는 하나님이 어떠한 위로를 주신다고 해도 내가 그 위로를 거부하리라고 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연민은 모든 관심을 나에게로만 집중합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이 자기를 도우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불안해 하고 근심하여 마음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처럼 마음이 약하게 되어 잠도 못 자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은 내 불행의 원인이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3-4절을 보시면
"나는 주를 생각하면서 속상해 했습니다. 원망할 수밖에 없었고 내 영이 어쩔 줄 몰랐습니다. (셀라)
주께서 눈을 감지도 못하게 하시니 너무 괴로워서 말도 못하겠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自己中心的) 생각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자기 연민에 의한 자기 중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자기 연민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대한 향수심(鄕愁心)에 빠지게 합니다. 5절에 보시면
"내가 옛날, 오래 전 일을 생각해 봅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옛날이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보다 정이 더 많고 더 따뜻하며 더 정직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날이 지금보다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 좋았던 때가 언제였던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느 사회학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사람들은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지만 100명중 99명은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애처롭게 여기고 자기 연민을 가지게 되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현재에 비해 과거가 행복했던 것 같아 과거를 미화(美化)시키게 됩니다. 즉, 자기 중심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 연민은 모든 관심을 자기에게로만 집중시킵니다. 불행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나 자신의 처지에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기도도 나 중심의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도 나 중심의 묵상이기에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찬 묵상이 됩니다. 6-9절 말씀을 보시면 그 마음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6. 밤에 부르던 내 노래를 기억해 봅니다. 내가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며 영에게 곰곰이 물어봅니다.
7. “여호와께서 영원히 버리시려나? 더 이상 은총을 베풀지 않으시려나?
8. 그 신실하신 사랑이 영원히 그쳤는가? 그 약속이 영원히 끝장나 버렸나?
9.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를 잊어버리셨나? 진노하셔서 그 부드럽던 자비의 마음을 거두셨나?” (셀라)
라고 기록합니다.
자자의 눈이 닫혔을 뿐이지 하나님이 숨으시겠습니까? 저자의 마음이 소심하여 낙망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약속을 파기하시겠습니까? 저자의 믿음이 연약하여 불평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이 변할 수가 있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의 미쁘심(순 우리말로서=믿음직 스러움)과 신실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비아냥거리고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 보는 눈을 이제는 높은 곳을 보고 멀리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세상만 보고 자기만 보는 눈이 영적 세계를 보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9절까지 내용은 자기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깊은 낙망(落望)의 수렁에 깊이 빠지고 있었지만, 10절 이하에서는 자기 중심적 생각으로부터 하나님 중심으로 초점이 바뀌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중심으로, 자기 연민에 빠져 결국은 멸망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초점을 바꾸며 사는 것입니다. 생각의 초점을 하나님께로 옮길 때 자기 연민에서 해방되고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초점의 변화는 반드시 자신의 연약함, 부족함을 인정해야만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의 저자도 10절에서
“10.그러고 나서 나는 말했습니다. “내가 정말 연약하기 짝이 없구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의 마음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편 77편의 후반부는 자기 초점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관심을 하나님께로 집중할 때 그의 삶을 마비시키는 모든 악에서부터 해방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춤으로 기쁨이 회복됩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춤으로 넉넉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좀 성공했다 싶으면 자서전(自敍傳)을 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을 영혼 치유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교의 고전으로 큰 감동을 주는 자서전은 St. Augustine (or Augustinus, 성 어거스틴, AD 354-430)의 자서전 「고백론=Confessiones」입니다. 이 고백론이 기독교 역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어거스틴의 자서전인 고백론은 독자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어거스틴이 자기의 젊은 시절의 방탕(放蕩)했던 모습, 그리고 이교(異敎)에 빠져 방황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을 떠나 살았을 때의 자기 중심적 삶이었는데, 그가 돌이켜 하나님 중심으로 삶의 초점을 바꾸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고백론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며 깊은 감명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77편의 전반부만 읽으면 자기 연민에 빠진 한 사람의 불평과 원망하는 이야기에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후반에서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며 하나님을 묵상함을 통하여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오래 전에 주께서 하신 기적들을 기억해 내겠습니다"(11)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기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능력이 필요합니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소망과 비젼이 필요합니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때 할 수 있습니다.
짐 베이커(Jim Bakker)라는 유명한 미국 TV 설교가가 있었습니다. "PTL(Praise The Lord)"라는 유명한 기독교 TV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인기와 명성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수많은 기부금을 통하여 사치한 삶과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의 개집에도 에어콘을 달아주어 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디즈니랜드를 모방한 엄청난 크리스천 위락시설을 짓느라고 시청자들에게 거짓약속을 하고 기부금과 헌금을 모았습니다. 결국 그는 사기 횡령죄로 기소되어 45년이라는 장기 감옥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후에 모범수로 풀려나 지금은 LA의 빈민촌에서 자원봉사자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감옥에서 새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석방된 후에 그는 「I was wrong」(나는 잘못 됐었다)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감옥에서의 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밤, 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오시더니 주님의 눈을 하나 빼어서 짐 베이커의 눈에 끼워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네 눈에 끼워준 내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를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짐 베이커는 이제부터 모든 것을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기로 결심하고 행동했습니다.
우리의 바른 믿음은 하나 하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삶이 될 때 하나님은 하나하나 회복시켜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게 갇혔을 때 자기 연민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바라보며 환경을 탓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초점을 하나님께 향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묵상함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y)는 인간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짐승처럼 감사할 줄을 모른다. 정말 인간은 놀랍게도 감사할 줄 모른다. 인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정의는 인간이란 두발로 걸어 다니는 감사할 줄 모르는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시편 62편 1-2절에서 다윗도
"내 영혼이 조용히 하나님만 기다리는 것은 내 구원이 그분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분만이 내 반석이시며 내 구원이시며, 그분만이 내 산성이시니 내가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사람은 감사를 회복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만 바라보는 연약한 신앙인이 되지 맙시다. 하나님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믿음과 지혜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일에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관심을 바꿉시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Amen !!
8.찬송: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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