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5일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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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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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25.(수)
이제는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덥고 습하고 출입이 어려워지기도
할텐데 건강들 잘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요 예배순서 올립니다.
* 묵상: 야곱아 내 말을 잘 들으라. 내가 불러낸 이스라엘아 내가 바로 그다. 내가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내 손으로 땅의 기초를 놓았고 내 오른손으로 하늘을 펼쳤다. 내가 땅과 하늘을 부르면 다 함께 내 앞에 나와선다. 너희 모두 함께 모여서 들어 보라. 우상들 가운데 누가 이런 일을 일러 준 적이 있느냐?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바벨론에서 여호와의 뜻을 이루고 그의 팔로 갈대아 사람을 쳐부실 것이다. 나 바로 내가 말했다. 그렇다 내가 그를 불렀다. 내가 그를 데려왔으니 그는 그의 방식대로 잘 수행할 것이다. 아멘 (사48:12~15)
* 기원: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으로 우리를 만드신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 구원의 감격과 감사로 오늘도 예배하기 원하오니 성령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를 받아 주옵소서 주의 영으로 새롭게 거듭난 우리 영혼이 기쁨으로 주께 드리는 예배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 신앙고백: (사도신경)
* 찬송: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 기도: 지순자권사
* 성경: 창1:1~5 ( 빛이 있으라 )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므로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되게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가운데 참 빛으로 오셔서 우리의 길을 밝혀 주시고 진리와 생명으로
함께하여 주시니 오늘도 우리가 주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를 받아 주시고 거룩하신 진리의 말씀으로 채워주소서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는 우주와 세계의 창조, 인류 역사의 시작,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을 다루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른 족장들과 맺으신 언약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서는 창조, 인류의 타락, 죽음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약속을 알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한 구약의 첫 번째 책으로서 성경 전체의 서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창조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맨 정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사랑하면 콩깍지가 낀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은 벗겨지지 않는 콩깍지가 끼신분 같습니다. 습3:1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우리와 함께 살고 싶으셔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은 곳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고....하나님은 그 빛으로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고 그리고 자신이 창조하신 물질을 사용하여 우주 만물을 당신의 뜻에 따라 만드셨습니다, 형체도 없이 흩으러진 혼돈속에 빛을 비추사 질서가 잡히게 하셨습니다. 텅빈 공허를 의로 바르게 하시고 평강과 희락으로 채우시고 흑암의 깊음이 물러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창조를 통해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과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나타내 비추셨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과 하나님이 없는 인간들의 영적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세상과 하나님 없는 죄인들에게 빛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요1:1~이하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요1:1절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 빛을 비추심으로 죄사함과 구원과 부활로 우리에게 영생을 누리게 합니다.
요3:16~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와 함께 하시려고 말씀이 육신되어 예수님의 몸을 입고 사람들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랑이 이와 같겠습니까? 이것은 요즘 아이들의 표현대로 찐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후4: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두운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신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연적인 빛의 창조를 비유로 들어 참 빛 되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는 빛의 창조를 통해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분리한 반면 둘째 창조에서는 하나님께서 참 빛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비추심으로 빛에 속한 자와 어둠에 속한 자를 분리하실 뿐만 아니라 빛에 속한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요청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옵소서 예수님의 대답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하셨습니다.(요14:8~9)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므로 그 빛을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빛은 밝고 따뜻하고 살게하고 변화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시므로 혼돈을 질서로 공허를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채우시고 분별하는 지각이 생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빛과 어둠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밝고 따뜻해지면 살맛이 나고 곳곳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빛이 비추면 깊은 어둠이 물러가고 분별하는 지각이 생깁니다. 지각이 생기면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이 생기면 성령의 감동을 따라 밝고 따뜻하고 살리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변화된 마음을 가진 성도가 가는 곳은 밝아지고 따뜻해집니다. 따뜻해지면 얼어붙었던 동토가 녹아 내리듯 모든 자연만물들 뿐 아니라 냉냉하게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도 무장해제 시키고 맙니다. 따뜻한 빛이 비추면 모든 대지에 생명의 약동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딱딱한 껍질을 깨고 씨앗들이 발아가 되어 움을 티우고 예쁜 새싹들이 돋아나고 그 싹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천지에 있는 모든 것들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빛의 사명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드러내어 비추는 것입니다.
엡5:8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고 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라는 말씀은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며 죄와 허물로 죽었던 것을 말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엡5:9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는 결과로서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신앙의 품격이며 마지막날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 (계22:12) 빛의 일은 열매가 있고 어둠의 일은 열매가 없습니다. 빛된 생활은 열매가 있으며, 주를 기쁘시게 하며, 세상의 죄를 책망합니다.
이런 삶은 죄악을 멀리하는 소극적 단계에서 더 나아가 죄악을 책망하는 적극적인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적극적으로 죄악과 싸우는 것입니다.
엡5:11절에 보면 너희는 열매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했습니다. 책망하라는 것은 ‘폭로하여 드러내라’는 뜻으로 이는 빛의 속성입니다. 우리가 어둠의 일을 책망해야 할 이유는 진리에 충실하고 악인들을 빛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며 불신과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혼돈, 공허, 흑암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없이 살았습니다.
세상의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만듦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인 생명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게 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영광을 아는 빛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요8:12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빛과 생명이 하나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오 빛이시오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엡2:5~6절의 말씀처럼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또 함께 일으키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빛이 우리에게 비친 결과입니다.
이 결과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시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도록 하기 위함이라“ 빌2:15~16절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빛의 사명은 생명의 말씀을 세상에 밝히는 것입니다.
빛은 보여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신 자신을 밝혀 이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신 자신을 밝혀 이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빛 되신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빛을 받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마5:1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을 밝히는 방법은 믿는자의 착한 행실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착한 행실로 의로움과 진실함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의는 거룩하여 구별되고 깨끗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5:14절도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등을 켜서 말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추느니라“ 빛의 역할은 능동적인 역할입니다. 빛은 능동적으로 밝혀주고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빛과 같은 생활로 모범을 보여 남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널리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을 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욱 힘써서 교회와 이웃에게 믿음의 덕을 끼쳐야 합니다. 믿음의 덕을 끼칠때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을 가지고 절제하고 인내하며 경건에 힘쓰고 형제와 우애하고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행실에 힘써야 합니다.
사42:5~9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에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이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적 기원과 권위를 밝히고 있는 말씀입니다.
첫째로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알게 해주는 동시에 둘째로 예수님의 뒤를 좇아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을 위한 종의 길을 걸어야 할 성도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명의 빛을 받은 성도들이 작은 예수로 구별된 순종의 삶을 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이에게 주는 것이며 하나님의 찬송을 우상에게 주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생명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굴종과 정복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원하셨기 때문에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으로써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 사이에 맺은 언약의 중보자로 일 하셨고 (사49:8) 성도들의 소망이 되어 주셨고 (사전1:3) 시험받는 자들을 돕는 역할을 담당하셨습니다.(히2:8) 뿐만 아니라 영육간에 연약한 성도들을 강하게 하시고(사61:1~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며(요17:4) 영원한 의를 드러내시고(단9:24) 율법을 온전케 하는 역할을 담당하셨습니다.(롬10:4)
눅7장에서도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22절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걷는 자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마땅히 왕으로써 영광을 취할 자격과 능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연약한 종의 지위를 취하신 것은 극도로 교만한 우리의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써 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발하는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갖가지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방해 요인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복음의 빛을 비추는 도중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쉽게 낙심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교훈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까지 복음을 전하셨듯이 끈기 있게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하는데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셨던 긍휼입니다. 사랑의 마음입니다.
시크릿 썬샤인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세상에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서로에게 죄를 짓기도 하고 그 죄를 용서하기도 한다. 상처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품어주는 것도 사람이다. 용서의 진정한 의미와 인간에 대한 구원의 원천을 찾고자 하는 스토리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신애가 힘든 결심으로 새로운 삶을 다짐하며 자른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모인 곳은 멋지고 좋은 곳이 아니라 후미지고 그늘지고 냄세나는 하수구였습니다. 이때 한줄기의 빛이 그곳을 비추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신애의 모습이 우리 인생들의 삶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속 죄인들의 삶은 후미지고 축축하고 냄새나는 하스구와 같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은 흑암속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세상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므로 세상을 밝게 하고 따뜻하게 하고 살아나게 하고 변화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빛을 받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영으로 사랑과 생명의 빛을 받음으로 예수 안에서 그 빛을 발하는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빛의 사명은 빛의 특성을 가지고 혼돈하고 공허하고 깊은 어둠을 밝히는 것입니다.
모든 착함과 진실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의로움과 진실함을 보임으로 빛을 밝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끝은 창대하도록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빛을 겸손하게 비출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레몬서1:6절은 말씀합니다.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이 구절은 사도 바울의 기도의 내용으로 빌레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세상에 알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이 돌려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의 교제 곧 성도간의 물질적 봉사, 성도간의 신앙적 교제,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제로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빛의 사명은 비추고 보여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등을 켜서 독안에 두면 산소부족으로 꺼지고 맙니다. 등경 위에 높이 올려 두고 비추지 않으면 사탄이 그 불을 꺼버리므로 동네를 밝게 비출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믿음이라는 등경위에 높이 올려 온 세상을 향하여 밝게 비추어 나로 하여금 내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이웃이 밝고 따뜻하게 살아나고 변활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눌려 생명이 없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빛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보고 느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받은 빛을 독안에 두지 않게 도우시고 믿음의 등경위에 높이 올려 비추게하여 주옵소서 빛의 자녀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주옵소서 우리의 생명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 425장 (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
* 주기도: 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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