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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8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5-06-19 추천 0 댓글 0 조회 19

2025.6.18.(수)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기의 나이만큼 세월의 속도를 느낀다고 하는데 요즘은 화요일만 지나면 일주일이 다 간것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느끼는 속도는 왜 이렇게 빠르게 느껴질까요? 여러분들의 속도는 어떠신지요? 우리가 느껴지는 속도가 어떠하든지 여전히 주님께 가는 길 위에 굳건하게 서있기를 바라며 수요 예배순서 올립니다.

* 묵상: 깨어나거라. 깨어나거라. 힘으로 무장하여라. 시온아! 아름다운 옷을 걸쳐라.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아! 할례받지 않은 사람과 부정한 사람이 다시는 네게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흙먼지를 흔들어 털고 일어나서 보좌에 앉아라 예루살렘아! 네 목에서 사슬을 풀어 버려라. 포로 됐던 딸 시온아!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값없이 팔려 갔으니 돈 없이 풀려날 것이다. 아멘 (사52:1~3)

* 기원: 우리의 목에서 죄의 사슬을 풀어주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의의옷을 입고 큰 영광중에 계신 아버지를 뵙기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주께 나아 가오니 받아 주시고 생명과 능력과 말씀의 쟁기로 묵어버린 우리 영혼의 밭을 갈아 엎어주시고 소성시켜 주옵소서 우리들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 신앙고백: (사도신경)
* 찬송: 9장 (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
* 기도: 김주환집사
* 성경: 히브리서2:1~4 ( 더욱 유념하므로 )

*말씀 듣기전에 잠시 기도

히브리서의 저작 동기와 목적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의 배교 방지를 위하여 먼저 유대인들이 존귀히 여기던 구약적 존재들보다 예수께서 우월하심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저자는 선지자, 천사, 모세 등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들에게 온전히 보여주시며 영원한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 중에 그리스도 대신 다른 존재들을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듯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것 즉 율법, 자기공적, 또는 인간 지도자를 더 귀중히 여기는 자들이 많이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더욱이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이용하여 이단 종파가 들끓고 있음을 기억할 때 예수 신앙의 유일성을 재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히2:1~4절은 복음을 소홀이 함에 대한 경고입니다.
1장에서 천사와 그리스도를 비교함으로써 그분의 우월성을 논증한 저자는 이제 본서에 나오는 다섯 가지 훈계 중 첫 번째 것을 전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서의 가르침이 이론적인 것만이 아니라 성도의 일상 생활과 관계된 실제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과 삶의 불가불리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은 신약 성도들에게는 더 높은 윤리 수준이 요구된다는 것과 주의 계명을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신적 심판의 필연성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1절의 시작은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들었던 모든 것에 더욱 유념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복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빌2:12절에서 강조하고 복음을 소중히 여기고 간수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은 구약 계시의 신적 권위성에 대한 말씀으로 죄인들에게 가해지는 엄중한 징벌도 결코 그들이 지은 죄보다 무겁지 않으며 순종하는 자에 대한 상급도 순종에 비해 결코 작지 않음을 깨닫게 합니다.

3~4절은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구원이기 때문에 이것을 소홀히 여기면 천사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범하는 것보다 더 큰 징계가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귀한 은총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며 구원 계시의 전달자이신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요3:18절입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계시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졌지만 근본적으로 그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그대로 확신 있게 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전도자는 복음의 본질이 훼손됨 없이 듣고 본 것을 숨김없이 전해야 한다는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4절에서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도 표적과 놀라운 일들과 여러 가지 기적들 그리고 그분의 뜻에 따라 나눠 주신 성령의 은사들로 함께 증언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1~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은 늘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들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의 또 하나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을 계시하여 보여 주시며 우리를 하나님과 만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만나면서 살도록 만드셨는데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을 분리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늘 궁핍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을 찾아야 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구속의 복음을 가져왔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그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하나님과 그 하신 일을 말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죄인인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통해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자신과의 교제로 돌아오라고.... 하나님은 보다 완벽한 하나님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한때는 선지자를 통해 부분적이고 잠정적으로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침내 그 아들 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사모하는지 얼마나 우리를 구원하사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시는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이끄사 하나님 자신과 교제 가운데 살게 하시기 원하시는지를 우리가 깨닫도록 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산 경험을 주시기 위해 아들의 몸으로 오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아들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께서 낮아지심입니다. 그분이 낮아지는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만물을 우리에게 주려 하심이라고 히2:5~18절은 말씀합니다. 시8:4절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라고 사람의 나약함을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권고하신다는 놀라운 사실과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다고 시편 기자는 시8:4절에서 말합니다.
히브리서는 이 약속이 사람에게 이루어진 것을 보지 못하지만 예수 안에서 그것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사람에게 참이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과 영에 동참할 수 있는 생명과 본성과 영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거룩하심 안에서 하나님을 닮고 그분과 교제하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다스리는 것 얼마나 놀랍고 있을 수 없는 영광입니까?

하나님은 이 놀라운 영광을 여러분과 저에게 덧입혀 주시기 위해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삼가서 경청하고 더욱 유념함으로 삶을 통해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말은 말하는 자의 지혜, 성실성, 능력, 그리고 사랑에 대해 내가 느끼는 만큼 무게를 가집니다. 사람의 말도 종종 놀랍고 위대한 영향력을 끼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하겠습니까? 말씀은 전적인 생명과 구원 능력과 사랑을 그 자체 안에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창조 행위이며 그 말하는 바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시33:9절은 말씀합니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도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안에서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되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함께 살도록 우리 안에 계시도록 주셨습니다. 사람의 말은 머리나 의지, 느낌이나 정열에 호소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보다 더 깊은 마음속 중심에 말씀하시기 때문에 생명의 영역에 가져올 강력한 소생의 능력을 신뢰하고 경청해야 합니다. 하늘의 진리는 오직 듣는 자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목소리로 말씀되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듣게 됩니다.

히1장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존귀하신 성자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제시해 주고, 2장은 예수님의 인성과 낮아지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않음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이는 아들이 말한 바를 유의하도록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삶의 연약과 병적 상태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보다 성실한 따름과 강렬한 충심의 결여라는 현실이 하나님께와 믿는 일에 우리 삶의 첫째 자리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최선의 능력이 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의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시킵니다. 복음은 그것을 등한히 여기는 자의 형벌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공할 만큼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형벌을 피할 수 없게만드는 것은 성실히 주님을 붙들지 않는 것과 무의식중에 세속적인 물결과 냉담한 종교로 떠내려 가는 것이며 더 나아가 구원이 요구하는 주권과 전적인 헌신을 등한히 여기는 것들입니다.

복음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이 큰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존재 자체가 그분의 항상 있는 표적과 기사이고 하나님의 신성한 능력의 증거입니다.
이 큰 구원을 붙들지 않고 태만히 여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그 큰 구원을 증거하셨을 뿐 아니라 그 모든 것 위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증거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거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마음 안에서 싸워주시고 변론해 주시며 증거해 주십니다.
성자를 통하지 않고 성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성자와 그분의 구원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말하고 계신 아들을 아는 것, 아들이 우리를 인도해 가는 것과 그 아버지와 그 분의 사랑을 아는 것, 성령과 그분의 은혜와 능력의 놀라운 선물을 아는 것,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형상과 교제가 회복되는 것,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성령께서 이루신 큰 구원의 영광에 대한 모든 생각을 듣고 믿으려는 충만한 바램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증거해 주시기를 구하고 그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비록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들의 가르침이라 해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구원의 위대함은 영존하시는 사랑의 아버지께서 그 아들 안에서 나에게 그 자신을 말씀하심에 있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보여주시고 가져와 주시며 나는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말씀하시고 주시는 모든 것을 듣고 알고 소유하고 즐기도록 해주시는 성령을 내 안에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신 복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빌2:12)절에서 우리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고 강조합니다. 흘러 떠내려 간다는 것은 악한 유혹에 의해 구원의 복음에서 이탈함을 뜻합니다. 이는 복음을 소중히 여기고 간수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복음의 진리와 그 지시에 귀를 기울이고 묵상할 뿐 아니라 삶으로 옮겨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2절에 공정한 보응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죄인들에게 가해지는 엄중한 징벌도 결코 그들이 지은 죄보다 무겁지 않으며 순종하는 자에 대한 상급도 순종에 비해 결코 작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주신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구원이기 떄문에 이것을 소홀히 여기면 큰 징계가 있습니다. 구원을 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귀한 은총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고 또한 구원 계시의 전달자 이신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무시하는 자들은 이미 정죄아래 있어 심판을 받은 것이요 그 징벌은 심히 두려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셔서 사람의 생명이 무엇이며 얼마나 낮아지고 얼마나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영광과 존귀로 가는 확실한 길인가를 증거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인성은 우리가 돌아갈 모습의 계시이고 그분의 신성도 우리가 입을 모습의 보증입니다.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하나 우리가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님을 보니 이만큼 족한 은혜가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신 것이 실제로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온전한 성품을 받고 지상의 삶에서와 하늘에서 우리를 구분과 같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나 사람의 아들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모든 역사도 동일하게 그리고 전적으로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되심은 우리 구속의 보증이고 우리가 그분과 하나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능력입니다. 믿는자의 궁극적인 운명은 예수님과 함께 그의 보좌에 앉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지금부터 더욱 유념하여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안에서 말씀하신 영광이 내안에서 실제가 되도록 고귀한 정신을 개발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 사십시오 그리하면 그분께서 반드시 여러분 안에 사실것입니다.
세상은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세상에 복종하도록 만들어 버린 죄의 파괴가 얼마나 가공합니까? 그리스도는 우리가 세상을 거부함으로써 그것을 정복하라고 가르치시며 세상의 것이 되지 않음으로써 세상을 복종시키라고 가르치십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안에서 불가분한 두가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1) 그분이 현재 계신 영광의 장소와
2) 그분을 거기에 이르도록한 겸손의 길입니다. 겸손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유념합시다.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그분의 영광의 자리 하나님 우편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지상에서 낮아짐 안에 있는 영혼은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써 영광 속에 나타나실 때 모든 것이 천국에 합당하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이 영광의 길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는 기도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찬송: 542장 ( 구주 예수 의지함이 )

* 주기도: 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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