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1일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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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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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11.(수)
이제는 아침과 저녁에도 여름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평안들 하시겠지요?
주의 이름으로 문안드리며 수요 예배순서 올립니다.
* 묵상: 그러나 네 많은 원수들은 미세한 흙먼지처럼 되고 포악한 무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겨처럼 될 것이다. 갑자기 순식간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번개와 지진과 큰 소음을 내시며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삼킬 듯한 불꽃으로 오실 것이다. 그러면 아리엘과 싸우고 그 요새를 공격하며 그를 포위하는 모든 민족들의 무리는 꿈에서 볼 듯한 모습처럼 한밤중의 환상처럼 될 것이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허겁지겁 먹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면 그 배고픔이 여전함과 같고 목마른 사람이 벌컥벌컥 마시는 꿈을 꾸다가 갈증을 풀지 못한 채 기력 없이 깨어난 것과 같을 것이다. 시온 산과 싸우는 모든 민족들의 무리가 이와 같을 것이다. 아멘 (사29:5~8)
* 기원: 원수들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번개와 지진과 큰 소음으로 지키시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그 크신 은혜 가운데서 붙들어주시고 오늘도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거짓되고 우둔한 마음들을 살피시사 주의 영으로 정결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아버지 홀로 영광 받으시옵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 신앙고백: (사도신경)
* 찬송: 348장 ( 마귀들과 싸울지라 )
* 기도: 최정숙선교사님
* 성경: 왕상18:1~40 (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
오늘은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정하게 된 것은 TV 채널을 놀리다가 우연히 ‘귀궁’이라는 드라마의 마지막회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를 돕는 귀신의 왕을 부르는 장면에서 자신의 손이 상해서 피가 흐르는데도 열을 다해서 북을 치면서 자기 신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바알과 아세라를 부르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찬양이 떠올라 흥얼흥얼 부르다가 오늘 본문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은 노년의 다윗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가 죽을 때가 다가오자 궁중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다음 왕이 누가 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위 계승을 두고 알게 모르게 줄타기가 생기고 세력이 만들어졌습니다. 다윗의 큰 아들이었던 아도니야는 장자였기 때문에 가장 유력했습니다. 아도니야의 추종 세력은 제사장 아비아달과 당시 최고의 권세자였던 군대 장관 요압이었기 때문에 아도니아가 왕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도니야가 갑작스런 쿠테타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알게된 밧세바로 인해 솔로몬을 노새위에 태워서 왕권을 선포해버렸습니다. 20세에 왕위에 등극한 솔로몬은 다윗의 유언에 따라 형 아도니야와, 요압, 제사장 아비아달을 죽입니다. 그 후 정계를 계편하고 자신만의 든든한 왕국을 세우고 솔로몬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영토의 넓이와 명성에 있어 최고에 이르게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정치적, 영적, 군사적으로 복을 더하시고 그를 세상 가운데 높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도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평안히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480년이 지난 후 솔로몬에 의해 7년 동안 성전이 건축되고 하나님께 봉헌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화려한 성전을 세웠습니다. 또한 성전을 포함한 그의 위대한 업적들은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과 존경을 안겨주었습니다. 다윗이 뿌려놓은 영광의 씨를 솔로몬이 거둔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솔로몬의 신앙적 열심은 생애 후반에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지고 맙니다.
그 이유는 천 명의 이방인 아내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인들의 요구를 들어주다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분열된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며 북 이스라엘 왕국이 언제나 정치적으로 불안했던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기 때문이고 남 유다마저 패망하게 된 것은 그들 역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며 하나님보다 열강을 더 신뢰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마음이 나뉜 솔로몬은 그의 사후 분열된 왕국,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이라는 쓴 열매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나뉘게 된 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다윗의 범죄로 가정과 국가가 재앙을 당했듯이 솔로몬의 범죄로 나라가 나뉘게 된 것입니다.
열왕기상은 뚜렷하게 두 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뉩니다. 솔로몬 치하의 통일와국(1~11장) 분열된 왕국의 이야기입니다.(12~22장) 특히 후반부를 차지하고 있는 열왕들의 열전은 북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왜 실패한 북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가 많이 소개됐을까요? 그들의 실패는 하나님에 대한 배반의 결과였다는 것을 가르치며, 왕들의 흥망성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신실했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210년 동안 북이스라엘이 존속되며 19명의 왕이 있었는데 선한 왕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아홉 번의 쿠테타가 일어나 왕조가 바뀌었고 계속되는 혼란과 피흘림의 역사였습니다. 크게 두 왕조가 있습니다. 오므리 왕조와 예후 왕조입니다. 오므리 왕조 때 있었던 선지자가 엘리야와 엘리사, 예후 왕조 때 있었던 선지자는 호세아, 아모스, 요나입니다.
오므리는 정치적 욕심이 있어 두로와 시돈의 왕이었던 히람의 딸 이세벨과 자기 아들 아합을 결혼시킵니다. 이세벨이 북이스라엘에 왔다는 것은 그때부터 북이스라엘의 국교가 바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북이스라엘의 영적 계보는 하나님을 버리고 계속 바알을 추종하는 계보가 만들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예후를 준비시키시고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리셨습니다.
결국 앗수르의 살만에셀 왕이 쳐들어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식민정책을 펴고 주변 국가들과 인종 혼합정책을 펴 다신종교 사회와 혼혈인들이 생겨났고 그 후손들이 신약에 이르러 사마리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남유다는 다윗의 계보입니다.
사울과 다윗시대 때 지파간 갈등이 이었습니다. 다윗시대 때 어렵게 통합한 12지파가 르호보암 때 다시 갈라진 것입니다. 335년 동안 20명의 왕이 있었지만 대체로 괜찮았던 왕은 네 명뿐이었습니다. 여호람이 아합과 이세벨이 낳은 딸 아달랴와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아달랴는 엄마 이세벨을 닮아서 지독한 바알 우상숭배자였습니다. 남유다가 이때부터 바알의 피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아달랴가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다윗 계보를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마지막 계보에 요아스가 숨겨져있었습니다. 요아스가 장성해서 아달랴를 죽이고 남유다 왕이 됩니다. 그래서 요아스, 아마샤, 웃시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아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로 이어지다가 B.C. 586년에 남유다는 멸망하게 됩니다. 아사, 요아스, 히스기야, 요시야는 좋은 왕이었습니다. 남유다가 함락될 때 예루살렘 성전도 훼파되었습니다.
이세벨의 소명은 북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씨를 뽑아내고 바알의 씨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자자들을 다 죽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준비시키십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아합에 대한 심판으로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왕상17:1) 그 소문을 들은 아합은 엘리야를 죽이려고 찾아다녔습니다.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다 죽일 때 선지자 100명을 데려다가 굴속에 몰래 숨겨주고 떡과 물을 공급해 주었던 여호와를 경외하는 궁내대신 오바댜의 주선으로 아합과 엘리야가 만났습니다. 아합 왕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맹세를 어기거나 어리석은 맹세를 함으로써 공동체에 불행을 가져오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말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 집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바알을 쫓았기 때문에 이 땅에 기근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그들이 매일 예배드리는 홈그라운드인 갈멜산으로 불러 대결을 요청합니다. 불로서 먼저 제물을 태우는 신이 진짜 신이다. 이것은 아합과 엘리야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보존하기 위한 영적 전투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옷을 찢고 자해를 하면서 제사를 지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참 신이 아니므로 그들에게 응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엘리야가 나가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 수에 따라 12돌을 가져와 제단을 쌓고 제물을 올려놓고 도랑을 파고 네 개의 양동이로 세 번 물을 길어다 번제물과 나뭇가지들 위에 붓고 온 백성이 운집한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응답하셔서 주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는 분임을 이 백성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뭇가지와 돌과 흙을 태웠고 구덩이에 고인 물마저 다 말려 버렸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온 백성들이 이것을 보자 엎드려 소리쳤습니다. “여호와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엄위하신 능력을 목도한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배척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두 신앙 사이에서 머뭇거리면서 하나님께 예배할 뿐 아니라 바알도 숭배했습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던진 도전은 하나님과 바알 중 누가 참 신인지를 선택하고 그 신을 전심으로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왕상18장은 무엇보다도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400명의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운 자는 엘리야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자 백성들의 망설임과 두려움은 돌연 분노로 변하여 바알 선지자들을 향했습니다.
불의 응답을 간구한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고 땅에 꿇어 엎드린 장엄하고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기도였습니다. 가증한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모독된 당시의 세태를 개탄한 엘리야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백성들의 회개와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야곱으로 12지파의 조상들을 낳게 하시고, 출애굽을 인도하시고, 마침내 가나안 복지에 정착시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기도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활동하였던 엘리야가 열두 돌을 취하여 돌단을 쌓은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었지만 그들 모두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음을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 왕국은 분열 이래로 한 번도 재통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간 북이스라엘 백성들 중 대부분은 영원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스라엘 집안의 잊혀진 열 지파로 사라져 갔습니다. 하지만 열두 지파 온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은 열두 사도의 터전 위에 건축된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창35:9~12, 삼하7:16, 계7:4~8)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네 보좌가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 삼하 7:16절에서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가운데 인 침을 받은 사람들이 14만 4,000명이었습니다. 라고 계7:16절은 말하고 있음이 증명합니다.
열왕기상의 마지막은 육신의 탐욕을 위해서 살아왔던 아합의 비참한 죽음과 하나님의 전사로서의 삶을 산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 대비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은 엘리야는 패자 아합은 승자로 생각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엘리야를 죽음을 거치지 않고 승천시키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하나님을 알고 또 순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라고 하셨을 때 그는 그리로 갔고,(왕상17:5) 사르밧 땅 과부의 집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에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영향력은 사르밧 과부가 그의 죄를 깨닫게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기도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사생활로 모본이 되어야 하고 공적 사역에 있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었고,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죽은 영혼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했습니다.
약5:17~18절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본성이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더니 3년 반 동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 했더니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땅이 열매를 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개와 비를 준다고 여겼던 바알 신이 실제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된 갈멜산 대결 이야기에서 자연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필요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르밧 과부의 하나님의 선지자를 공궤한 선행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보상해 주시며 궁내대신 오바댜의 목숨을 건 신앙 운동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돌보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그들을 본받도록 격려를 받았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엘리야와 함께 바알의 선자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잡아 기손 골짜기로 데려가 그곳에서 죽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3년 반의 가믐을 큰 비의 소리로 축복하셨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큰 비의 소리가 그립지 않으십니까?
작은 구름 한 조각 보고, 나와 내 가정과 일터와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영적 민감성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사소하고 미미한 변화를 직감하고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 한조각이 떠오른다 희망의 언어를 선포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배교와 타협과 혼돈과 불신앙이 기독교계에 가득합니다.
자유주의 신학과 연합주의가 유행하고 근본주의의 폐쇄성과 주관적인 잣대와 판단에 반대하는 신복음주의의 타협이 유행하고 은사주의의 혼란이 많고 윤리적 부패도 심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성경을 더 열심히 연구해야 하고 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신앙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경적 신학과 신앙, 성경적 견해가 무엇인지 분별하고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분별하고 확신 가운데 그의 뜻과 그 교훈에 온전히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갈멜산에서 쌓은 번제물을 불로써 태워버린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 되시고 구원과 영광이 되심을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들의 한결같은 신앙고백은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기 원합니다 우리를 받아 주시고 불과같은 성령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 350장 ( 우리들의 싸울 것은 )
* 주기도: 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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