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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4월 16일 수요예배 | 운영자 | 2025-04-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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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6.(수) 참으로 알 수 없는 계절을 맞아 너무나 당황스럽습니다. 봄인가 하면 눈이 내리고 돌풍이 불어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 것같습니다. 모두 각별히 건강에 유의하셔야 하겠습니다. 평안들 하신지 문안드리며 수요 예배순서 올립니다. * 묵상: 깨어나라, 깨어나라. 힘으로 무장하여라. 시온아 아름다운 옷을 걸쳐라.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아 할례받지 않은 사람과 부정한 사람이 다시는 네게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흙먼지를 흔들어 털고 일어나서 보좌에 앉아라 예루살렘아 네 목에서 사슬을 풀어 버려라. 포로됐던 딸 시온아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값없이 팔려갔으니 돈 없이 풀려날 것이다. 아멘 (사52:1~3) * 기원: 죄악으로 포로 되었던 시온의 딸에게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 흙먼지를 털고 일어나게 하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목에서 사슬을 풀어버리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돈 없이 풀려나게 하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따라 예배하기 원하오니 우리를 받아주시고 성령으로 도우셔서 온 몸과 마음으로 예배하게 하시고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신앙고백: (사도신경) * 찬송: 246장 (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 * 기도: 최길환장로 * 성경: 창6:9~22 ( 사명자 노아 )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창6장 가운데서 하나님이 의로움을 보신 사명자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께서 진리로 함께 해주셔서 전하는 말씀과 듣는 말이 우리 영의 양식이 되게하여 주옵시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받아 믿음으로 행하는 능력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비록 부족한 종이 전하는 말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오직 진리의 성령님을 의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창5장 1절부터 32절은 아담에서부터 시작하여 노아와 그 자식에 이르기까지의 족보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족보인 이 족보에는 세 가지 강조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강조점은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족보는 모든 구절이 “죽었더라”는 동사로 끝납니다. 모든 인간은 700년이 아니라 800년, 심지어 969세를 살아도 죽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강조점은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자녀를 세우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죽음을 강조하는 이 죽음의 족보에서 단 한 사람의 예외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에녹인데 육신을 가진 채로 승천한 최초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대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으면 육신을 가진체로 승천하는 최초의 사람이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은 창5:22절에 나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양육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믿고 맡기신 자녀들은 그의 소유가 아니었기에 세속적인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바르게 세우는 것은 사명자의 첫걸음입니다. 이러한 에녹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음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로 이 족보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강조점은 노아는 실패자였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재산은 자식들 그중에서도 아들들이었습니다. 농업이든 목축이든 아들들은 중요한 생산력이고 산업의 기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500세가 된 이후에야 세 아들을 얻었습니다. 아들이 재산이요 아들들의 수가 성공의 척도이던 시대에 500년 동안 아들들이 없었으니 그는 실패자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시대는 노아 홍수 이후여서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었을 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무자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늘 실패자를 부르십니다. 인간의 실패는 인간에게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유익을 안겨줍니다. 실패는 자신의 한계를 통감하게 하고 교만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결과적으로 겸손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창6장은 사람의 죄악과 노아의 계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 6:1~12 ) 노아 시대의 인간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과 포악함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악할 뿐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 제도는 일부일처제인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들기만 하면 모든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신성해야 할 결혼이 욕정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것입니다. 당시 네피림이라 불리는 영웅과 스타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명성과 인기는 더없이 높았지만 하나님의 영이 떠나 버린 그들은 단지 움직이는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네피림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으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며 그들을 지면에서 모두 쓸어버리려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당장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패역한 인간들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유예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패역한 인간들은 회개의 기회마저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멀리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현재형으로 우리에게 임하여 계십니다. 그 은혜를 은혜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삶으로 응답할 때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자가 될 것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셨을 때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다 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이었습니다. 창6:13~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으로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6:13~16) 이것을 오늘날의 단위로 옮기면 길이 136.8미터, 폭22.8미터, 높이는 13.6미터의 방주입니다. 배기량을 계산하면 32.800톤에 달한다고 합니다. 부산이나 목포에서 제주를 오가는 페리 여객선이 3.000톤급이라고 하는데 노아의 방주는 그보다 열배나 더 큰 대형 선박인 것입니다. 노아가 건조한 ‘방주’가 히브리 원어로 테바라고 합니다. 방주가 위에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엄청난 크기의 배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대한 구조물을 연상하게 되는데 그렇지만 테바는 본래 그런 뜻이 아니라 출애굽기2장의 모세 출생 이야기에 나오는 갈대상자도 테바로 불립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테바’의 특성은 크기가 아니라 무동력에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도 모세의 갈대상자에도 자체 동력이 없습니다. 진행 방향, 진행 속도, 정박등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속도가 빠르든 늦든 어디에서 멈추든 그 모든 결정 사항을 철저하게 하나님께 위임한 것이 테바입니다. 어떤 경우이든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인생의 동력이 되기를 포기할 때에만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의한 구원의 ‘테바’가 될 수 있습니다. 노아 가족이 방주로 들어가고 7일 후 홍수로 온 땅을 뒤덮은 물은 150일 동안 땅에 넘쳤습니다. (창7:24) 방주의 밀폐된 공간, 온갖 짐승들과 새들의 울음소리, 배설물의 역겨운 악취를 견디며 매일매일 모든 짐승들의 밥을 챙기는 것은 노동중에 중노동입니다.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무려 1년 17일 동안이나 그들은 어떻게 최악의 환경을 견디며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노아 가족들이 그 열악한 방주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위에 있는 창을 통한 하늘 아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매일 천정 위 창문을 통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한 방주 속의 모든 괴롬과 고통, 회의와 번민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의 천정에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뚫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비록 쓰디쓴 실패의 잔을 마신다 해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의해 이 시대를 위한 노아로 쓰임받을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영역을 존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전하게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본문은 노아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말속에는 성경에 구구절절 기록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면서 언제일지 모르는 긴긴 시간을 견디며 방주를 건조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을 다 준행하였습니다. 요한복음19:30절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한마디 말씀 속에는 인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와 같이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준행했습니다. 성경은 노아의 순종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7:5) 이 짧은 한 문장이 지닌 무게와 그 의미는 실로 엄청납니다. 히11: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일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자신의 인생과 전 재산을 걸고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는 인류의 두 번째 시조가 되었습니다. 당시 인간들이 홍수의 심판으로 멸망당하기 직전까지 노아를 비웃으며 오직 육욕을 따라 먹고 마시고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은 그것이 자신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게도 심판을 재촉하는 자멸 행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코 끝에 호흡이 있는 동안 이 세상에서 사명자로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다 준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다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다 준행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다 경청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존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으로 예수님의 극찬을 받았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다’ 듣지 않은 탓에 졸지에 사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마16장에서 베드로는 주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항변하다’라는 원어의 뜻은 질책하다, 비난하다, 훈계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그런말 하지 말라는 식으로 꾸짖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하는 순간은 베드로가 하나님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영역에 뛰어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다 듣지 않는 한 우리가 열심을 내면 낼수록 우리 자신도 모르게 사탄으로 전락하기가 쉽습니다. 사탄은 머리에 뿔난 도깨비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위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여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지 7일만에 홍수가 터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 7일은 패역한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최후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패역한 인간들은 그 마지막 기회마저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오늘이 혹시 그 마지막 7일의 기회가 아닌가 라는 종말의식을 갖고 살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노아시대의 패역한 인간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여도 그 말씀이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인내의 과정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한 것이 자신의 공로로 착각하는 자기 교만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노아의 전 생애가 온통 인내의 삶이었습니다. 500세가 되기까지 자식이 없는 실패자의 삶을 인내로 극복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인내로 방주를 지었고, 방주 속에서 1년 17일간의 삶 자체가 인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40일간의 홍수 이후 150일 동안 땅에 넘치던 물은 점점 물러가며 줄어들어 아라랏산에 닿고 방주는 멈추었고, 물이 계속 줄어들어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노아 가족과는 상관 없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셨습니다. 드디어 방주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노아는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그 감격적인 순간 노아가 염두에 둔 것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향기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드신 모든 것들 가운데 사람에게만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생령으로 살지 않는 인간은 짐승과 다를바 없습니다. 짐승과 사람의 본질적 차이는 예배에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노아에게는 예배가 삶이 되어 있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사명에 일평생 순종한 노아는 결과적으로 새 역사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를 통해 인류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에 순종한 제자들에 의해 사도행전, 사명자 행전의 새 역사가 시작된 것과 같습니다. 노아의 사명자 행전은 철저하게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방주 건조 이전의 삶의 현장, 방주 건조의 삶의 현장, 방주 속의 삶의 현장, 새 역사를 일구는 삶의 현장 노아는 그 어떤 삶의 현장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동력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실패자 노아가 당대의 의인이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방주에 오를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 역사를 일굴 수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남은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부터 사명자 행전을 일구어 가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실패의 자리로 찾아오셔서 구원의 사람으로 세워지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은혜가 지금 우리의 삶 속에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 은혜를 의지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노아처럼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잘 듣고 하나님의 영역을 존중하고 예배가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코 끝에 호흡이 있는 동안 생령으로 살면서 복음의 새 역사를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 240장 ( 주가 맡긴 모든 역사 ) *주기도: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샬롬~~ 부활주일 맞이 대청소에 많은 참석바랍니다. 토요일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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