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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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2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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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12.(수)


오늘도 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자주 내리는 것 같네요! 눈이 많이 오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오래된 말이 생각나는데 그래도 우리는 일상의 지장이 더 신경이 쓰입니다. 모두 조심들 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바라며 수요 예배순서 올립니다.

* 묵상: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공의를 지키고 정의를 행하여라. 내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내 정의가 곧 드러날 것이다. 복되다 이것을 행하는 사람아 하나님의 정의를 꼭 붙들고 안식일을 지켜서 더럽히지 않고 손을 지켜서 어떤 악한 일도 행하지 않는 사람아 이방 사람이라도 여호와께 속했다면 여호와께서 나를 그분의 백성과 차별하시는구나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라 아멘

* 기원: 우리에게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이 온 이때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지켜 행함으로 복되다 하시는 저희가 되기 원합니다. 주의 은혜로 붙들어 주셔서 믿음을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저희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베푸실 아버지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마음과 뜻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하여 주시고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 신앙고백:(사도신경)
* 찬송: 9장 (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
* 기도: 류시성집사
* 성경: 출3:1~15 ( 하나님의 이름 )

* 하나님 아버지 이시간 저희가 주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성령으로 도우셔서 듣게 하시고 들은 말씀을 상고하며 되세기고 그 말씀을 따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으로 도망간 모세가 자기 아버지의 양떼에게 물을 주기 위해 나온 그곳 제사장 르우엘(이드로)의 딸들을 도와준 인연으로 르우엘의 사위가 되어 장인의 양을 치게됩니다. 이집트 궁중에서 자란 왕자의 신분으로 양을 치는 일은 모세에게 너무나 비천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장차 이집트의 총리로 등장시키기 위해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의 신분으로 살게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훗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가나안으로 인도할 지도자로 성장시키기 위해 먼저 양떼를 돌보는 일부터 시키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양치기가 된 모세가 호렙산에서 떨기나무에 불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나고 소명을 받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는 모세가 미디안에 온지 4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이끌고 호렙산 서쪽 광야에 이르렀습니다.그곳에서 이상한 광경을 봅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욥42:5절에서 욥이 지금까지 귀로 듣기만 했던 주를 내 눈으로 보게 됐다고 고백 했듯이 모세 또한 귀로 듣기만 했던 조상들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는 우주 안에 모든 인과 법칙을 초월해 계신분으로 모든 존재의 근거와 기반이 되시는 주체자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 말이 언약적 관계에서 쓰일 때는 이스라엘의 구속자로 그 영원한 불변성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출6:6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의 압제에서 건져줄 것이다. 내가 쭉 뻗은 팔과 큰 심판으로 너희를 구원해 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알 수 있고, 그는 절대적이시나 또한 인격적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다 알 수 없지만 그분에 대한 지식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일상적인 방식과 특별한 방식으로 자연과 역사에서 예언과 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으로 하나님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눈을 뜬 사람은 하나님 존재에 대한 증언과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에 대한 증언을 받아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 계시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영생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요17: 20,2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주 안에 계시하셨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분명합니다.
행17:24절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제시해 줍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라 알지 못하는 신까지 섬기고 있는데 그 신은 온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들 안에 살지 않으십니다. 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해준 하나님은 여러 가지 이름과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의 자존성이라는 절대적 본질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과 그의 속성을 알게 되는 유일한 수단은 자연과 성경 가운데 있는 계시 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을 하나님의 이름이라 부릅니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분을 그가 계시하시는 여러 속성에 따라 부르는 것이며 그를 통해 그가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은 그분의 계시입니다. 구약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신 신약에서는 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보다도 그가 외적으로 드러내시는 덕과 우월성, 그의 영광, 영예, 구속하시는 능력등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인 그 이름은 크고, 거룩하고, 무서우시며, 높고, 견고한 망대입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더 풍성하고 깊은 의미를 가지고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아버지 품속에 계시던 로고스(말씀)가 우리에게 아버지를 가르치시고 그 이름을 계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1:18절의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품에 계신 독생자께서 하나님을 알려 주셨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피조물들에게 그의 계시에 근거한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셨습니다. 자연과 은총 안에 주어진 전계시를 다 포함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다양하고 많은 이름으로 나타냅니다. 우리는 오직 그분의 계시의 풍성함과 그의 이름의 깊은 의미를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일컬으시고 우리가 그분을 부르는 모든 이름들은 지상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들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강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엘 샤다이,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여호와로 부르며 인간 관계에 근거하여 은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표현들이 아버지, 아들, 신, 선하시고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등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고유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들은 하나님을 지칭하는 호칭들로 그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독립적인 인격적 존재로 말할 수 있습니다. 엘, 엘로 힘,- 힘있는 자, 아도나이- 통치자, 엘샤다이- 전능하신 자, 야웨-스스로 있는 자로 전체이름은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입니다.
엘욘은 지극히 높으신 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도 학적인 여러 이름들이 있는데 너무 어려워서 정리가 잘 되지 않고 제가 감당이 안되는 관계로 넘어갑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란 칭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이름도 신약의 마, 막, 눅,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고 하나님은 보다 자주 나의,너희, 우리등의 속격과 함께 나타나는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과 하나님과 아버지요 각 자녀들의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구약에서 아버지란 이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과 특별한 신정적 관계를 표현하는데 쓰였는데 신약에서 아버지란 이름이 사용될 때는 기원과 창조주라는 일반적인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고전8:, 엡3:, 히12:, 약1: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곳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과 깊고, 윤리적이며, 개인적인 관계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관계는 아버지의 유일한 독생자와 사랑하시는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성도들은 성령을 통해 자녀로 입양되었고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 안에서 풍성하게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처음부터 힘있는 자 안에 풍성하였던 것이 점차로 계시된 것입니다. 충만함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이름 안에서 가장 영광스럽게 된 것입니다.
지금 모세를 부르시고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그가 조상들에게 나타나셨던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모세에게 나타나신 분은 새롭거나 이상하고 낯선 하나님이 아니라 그 조상들의 하나님 불변하시고 신실하시고 영원하시고 결코 자신의 백성들을 떠나시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찾으시고 구원하시는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사야에서 그는 하나님 자신을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에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고 하셨습니다. (사41:4, 43: 10,13, 44:6, 48:12)
하나님의 이름이 가진 특징과 성질을 속성이라하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은 크게 비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비공유적 속성은 무한하심, 불변하심, 영원하심, 전능하심, 편재하심(무소부재)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개념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이 두 가지 범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성경과 신학적 관점에서 그분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특성으로 피조물과는 공유되지 않는 속성입니다. 이러한 속성은 하나님의 본질적 차원과 그분의 절대적 권능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무한성: 하나님은 무한하신 존재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시간, 공간, 지식, 능력에서 제한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147:5절은 말합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긍하시도다” 라고 선언하므로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의 크기와 시간의 시작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해서도 끝없는 연구와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그분의 무한성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불변성: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이 영원히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3:6절에서는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불변성은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이 변함이 없이 이루어짐을 보장하며 신학적으로도 하나님의 모든 시간과 상황 속에서 신실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분의 신실함의 기초이며 그분의 약속이 변함없음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영원성: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존재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90:2절은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지으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했습니다. 철학적으로도 하나님의 영원성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됩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이 모든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여 존재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전능성: 하나님은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제한이 없고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음을 말합니다. 창18:14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분의 전능하심을 확증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그분의 모든 계획을 완벽하게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 신앙의 기초를 세우는 중요한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편재성(무소부재):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신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공간에 제한되지 않고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렘23:24절에는 ”여호와의 말씀이다.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곳에 계시며 그분의 임재가 어느 곳에서든지 경험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러한 속성은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 공유적 속성은 사랑, 거룩, 공의, 자비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은 하나님과 피조물 모두에게 존재할 수 있는 특성입니다. 이러한 속성들은 하나님의 본성을 인간에게 비추는 방식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어떻게 그분의 성품을 반영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속성은 완전하지 않지만 하나님과 공유할 수 있는 속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은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은 때로는 선하고 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며 영원토록 선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과 기도로 성령을 따라 거룩함을 좇아 살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항상 거룩하십니다. 인간은 때에 따라 정의를 외치며 의로운 삶을 지향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의로우십니다. 우리의 인격은 부족하여 완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인격은 우리와 달리 완전합니다.

사랑: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요일4:8절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그분의 피조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으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고 C,S 루이스는 말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우리가 아직 죄인임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롬5:8절 말씀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룩: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이 죄와 분리되어 계시며 도덕적으로 완전하신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6:3절에서 천사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찬양합니다.
거룩함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과 관련하여 가장 자주 언급되는 속성 중 하나입니다. 이는 그분의 본질적 성품을 드러내는 중요한 특성입니다.
R,C 스프로울은 하나님의 거룩함은 그분의 모든 속성들을 조명하는 빛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다른 존재들과 구별되신 분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의: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의로움과 모든 행위에서 공평함을 의미합니다. 신32:4절에서 “그는 반석이시니 그의 일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며 그가 공정하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결코 부정의를 행하지 않으시며 모든 결정과 행동이 완전히 공정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사랑과 함께 균형을 이루며 이는 모든 창조 세계에 질서와 정의를 세우는 기초가 됩니다.

자비와 은혜: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자비는 하나님이 마땅히 받을 벌을 면제해 주시는 것이고,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선물입니다. 엡2:4~5절은 말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는 그분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놀라운 길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과 기도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무한하시고, 불변하시며, 영원하시고,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더욱 더 깊이 알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와 공유하시며 우리를 붙드시는 사랑의 하나님,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단 마음으로 경배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 존귀하신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늘 기억하며 살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찬송: 15장 ( 하나님의 크신 사랑 )

*주기도: 로 예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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