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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3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5-04-25 추천 0 댓글 0 조회 26

2025.4.23.(수)


겨울에는 비가 한 번 올 때마다 추워지고 봄에는 비가 올 때마다 더워진다고 하는 말이 있던데 너무나 짧은 봄이 아쉬울 정도로 여름이 빨리 오려나 봅니다. 평안들 하시지요? 수요 예배순서 올립니다.

* 묵상: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부릅니다. 어서 속히 내게로 오소서. 내가 주를 부를 때 내 소리에 귀 기울이소서. 내 기도가 주 앞에 피운 향처럼 올라가게 하시고 내 손을 드는 것이 저녁 제물처럼 되게 하소서. 오 여호와여 내 입의 파수꾼을 두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 주소서. 내 마음이 악한 것에 이끌려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들과 함께 악한 것을 일삼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않게 하소서. 아멘 (시141:1~4)

* 기원: 성도들의 기도를 금향로의 향기처럼 기뻐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지금 시편 기자의 마음처럼 간절한 기도로 주께 나아오게 하시니 감사와 찬송으로 아버지께 예배하기 원합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이 예배를 통하여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베푸실 은혜를 사모합니다. 마음과 뜻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 신앙고백: (사도신경)
* 찬송: 315장
* 기도: 김선미권사
* 성경: 행9:1~19 (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 )

사도행전은 교회의 시작과 그리스, 로마 세계 전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신약성경 중 유일한 역사서로 복음서와 서신서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록 목적은 기독교의 역사성과 복음의 진실성 및 그 전파 과정을 밝힘으로써 기독교가 참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임을 변증하기 위해서입니다. 특징으로는 성령 강림으로 시작된 교회의 역사를 밝히고 있으며 로마 정권, 유대 율법주의 및 헬라 신비주의에 대한 변론을 위시하여 전도, 설교, 토론, 권면등에 대한 풍부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초대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가장 결정적 사건이 행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비견될 만큼 중대한 구속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육신이 복음서의 시작으로서 신약의 근거라면, 성령 강림은 사도행전의 시작으로서 교회의 태동과 보호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 강림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에 연속된 구속 사역의 필수적인 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행9장은 사울의 회심과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사 내에서 바울이 차지하는 비중은 심히 막대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활약으로 인해 비로소 복음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려고 하셨는데 아나니아가 사울을 두려워 할 때 예수님께서 이 사람은 이방 사람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내 이름을 전하도록 선택한 내 도구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바울이 유대인을 전도하는 정도에만 그쳤더라면 기독교가 로마와 정면 충돌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스스로의 계획하에 이방인의 사도로 나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로 말미암아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방 선교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이 말은 7장에서 스데반이 순교를 하고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진 후에도 바울은 계속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비록 헬레니즘의 영향력 하에 있던 다소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엄한 유대교 관습에 따라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났으며 자신의 유대교적인 전통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으로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열심당원으로 교회를 핍박했던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가말리엘 문화생이라 빌3;5절 이하에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 바울이 역시 교회를 핍박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던 중 다메섹도상에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비추는 강한 빛을 보고 땅에 쓰러졌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사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잔해하려고 가는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울의 지난 삶이 눈 뜬 장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울은 율법과 복음의 실체를 바로 보지 못한 장님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성령의 세례로 영의 눈을 바로 떠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메섹에서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존경을 받는 경건한 아나니아(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다 라는 뜻)를 보내 사울에게 안수하게 하시므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 다시 보게 하시고 사울의 변호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일을 행하실 때 아무렇게나 마음 내키는 대로 일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이 정하신 방식을 따라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그 일하심의 방식을 알아야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통하여 일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람들은 방법을 찾고 프로그램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한 이후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이 직접 사울의 눈을 뜨게 해 주실수도 있고 부르심의 소명도 가르쳐 주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말하지 않으시고 시내로 들어가면 네가 앞으로 행할 일을 네게 이를 자가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행9:6) 그리고 아나니아를 통하여 사울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그 부르심의 소명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하여 세례를 받게 하심으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사람을 통해 기도의 응답도 받게 하시고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도 경험하게 하시고 사람을 통해 부르심의 소명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싱앙생활이 무엇입니까? 관계를 맺는 것이고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람들에 대해 아픔과 상처 때문에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 안에 죄성이 있기 때문에 가까이 하면 할수록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에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먼 훗날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여호와 이레의 축복으로 아니 내 인생의 아나니아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영이 역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습니다. 늘 언제나 홀로만 있고 싶어합니다. 기도하기 위해 홀로 있고자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언제나 외톨이처럼 홀로 있고자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 알려면 이 사람이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 번도 혼자만의 신앙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관계를 맺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입니다.

출4:10~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일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고 있던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면서 신음하는 동족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이 자신을 믿지도 따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하고 손에 나병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이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신의 말 주변이 없음을 내세웠습니다.
모세의 대답은 겸손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입을 지으신 하나님은 언변이 없는 사람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음 보다 자신의 할 수 없음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눈에 보이는 조력자를 원했습니다. 우리의 약함이 주님의 일을 제한할 것 같지만 도리어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가져오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언떤 일을 맡긴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능력을 감안해서 맡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을 맡기실 때는 당신께서 사람을 통해 직접 일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통해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특정 조건에서만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자기 맘대로 섬기겠다는 말입니다. 순종에 조건을 달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존 헨리 뉴먼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고유한 일을 내게 맡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맡기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인도하실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더 이상 집에서 키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
에 담아서 하나님의 손길에 맡겼습니다. 에스더9:29~32절에서 하나님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에 의해 부림절이 국가적 절기로 정해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만나러갑니다. 라는 프로그램을 잘 알고 계시지요?
저는 가끔씩 주일 저녁에 이 프로그램을 봅니다. 얼마전 남희석씨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한 탈북 여성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일곱 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 이현서양의 영화같은 탈북스토리를 들으면서 그녀가 가는 곳에 함께 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불현 듯 꼭 이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스토리는 가는 곳마다 다른 이름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일곱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요약하면 이랬습니다. 비록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국경에서 밀수를 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소녀가 중국 드라마를 보고 의도치 않게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아닌 탈북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된 일들과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맨 몸으로 그저 잠깐 드라마에서 보던 중국이 어떤지 보고자 했던 여학생이 무일푼으로 입은 옷 그대로 빨간 구두를 신고 연길에 오게되었고
무작정 택시를 타고 심양에 있는 엄마와 거래하면서 밀수 물건을 대주던 사람 집을 찾아가면서 탈북생활이 시작됐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그곳에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으고 중국어를 배우고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도착 후 가족들을 탈북시키려고 다시 중국으로 가게 되었답니다.

먼저 탈북해 있던 남동생을 중국에서 찾게 됐고 어머니를 탈북시켜 라오스까지 가는 여정의 과정들을 이야기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때 중국은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중국의 안전대책 때문에 군인들의 잦은 검문으로 다시 북송될 수 밖에 없는 순간을 맞을 때마다 속으로 해본적이 없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또 버스를 세우고 불시 검문을 받게 됐는데 차에 올라온 군인이 뒷자리에 앉아 있는 동생에게 너 이름이 뭐야? 라며 동생에게로 가는데 시선을 돌리려고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던 카메라로 군인들을 마구 찍고 창 밖에 있는 군인들의 차도 찍었답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시선을 돌려 소녀에게 오더니 큰 소리로 야단을 치면서 너 뭐야?
함부로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거 몰라? 라면서 야단을 치니까 유창한 중국말로 미안하다 내가 몰라서 그랬다 자 이렇게 다 지우면 되지? 하고 한컷씩 지우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팔을 휘저으며 딸에게로 나오는데 군인들이 저사람은 또 뭐야? 하는 순간 이 소녀가 뒤에 있는 남자와 저 여자랑 일행인데 저 사람들은 다 벙어리다 내가 저 사람들을 쿤밍까지 여행 가이드를 하는 중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이 차에는 왜 이렇게 벙어리가 많아? 라면서 기사한테 이 사람들이 정말 벙어리가 맞느냐 물었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현서양의 가족을 처음보는 사람인데 기사가 그렇다고 대답을 해 주더랍니다. 기사가 그렇다고 하니까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미심적은 눈초리로 뒷걸음질을 하면서 쳐다 보고 내리더랍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기사는 기사라고 하지만 차 안에 함께 타고 있던 많은 승객들이 이 가족들이 조금전까지 서로 얘기하면서 오는 것을 다 보았는데 저 사람 것짓말 한다고 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순간 사자 굴속의 다니엘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굶주린 사자의 입을 봉하셨던 하나님께서 소녀의 가족과 함께 차에 타고 있던 모든 이들의 입을 봉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또 한 고비를 넘기고 라오스까지 가게 되었는데 자신과 어머니와 동생은 국적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함께 라오스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따로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헤어진 엄마와 동생을 찾던 중 브로커로부터 두 사람은 라오스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몇 일 동안 수소문 끝에 탈북민들이 갇혀 있는 곳에서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동생이 구금된 감옥을 겨우겨우 찾았는데 당시 상황에서는 어머어마한 벌금을 내야 풀어줄 수 있다는 말에 망연자실하고 말았답니다. 이렇게 낙심천만한 가운데 있었는데 우연히 길에서 만난 한 외국인이 선 듯 도움을 주겠다고 벌금을 내주어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사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완벽한 구비 서류가 문제가 되고 말았답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증명서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다 가지고 갔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될지는 몰랐다고 합니다. 결국은 한국 대사관에 연락을 하게 되었고 신분 확인이 되어서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오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이 소녀는 일곱 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게 되었고 이 책이 인터넷을 타고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를 끌게 되면서 초대를 받아 미국까지 가게되었는데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의 좌담회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방송에까지 나가게 되었는데 인터뷰를 통해 라오스에서 도움을 주신 분을 찾고싶었답니다. 그래서 이 방송을 보시면 꼭 연락을 달라도 했답니다. 그렇게해서 찾게되었는데 그분은 호주인으로 어떻게 한 번도 본적없는 자신을 도와주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니까 자기는 너 개인을 도운 것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을 도운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실까요?
하나님은 각자의 성품을 쓰십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도 각자의 역할과 성품에 맞게 쓰임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약점조차 누군가에게 필요한 장점으로 사용하십니다. 그 장점을 통해 이웃과 공동체를 살리게 됩니다. 교회는 서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신것에 감사하며 서로를 귀하게 여길 뿐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면 누구나 능력의 도구가 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포로로 끌려와 볼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쓰시기로 작정하시니 총리와 왕후가 되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붙들릴 때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능력있는 삶을 위해 애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붙들리면 능력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람과 함께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말씀으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최고의 가치를 누리는 자들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 312장
* 주기도문: 으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샬롬~~ 기쁜 얼굴로 주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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