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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말씀/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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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말씀/주보
2025년 10월 15일 수요예배 운영자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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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5일 수요예배


<묵상> 마태복음 11:28-29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내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기원>
우리의 참된 안식처 되시는 주님. 분주했던 세상의 한복판에서 저희를 불러주시고, 주님의 날개 아래에서 쉼을 얻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세상의 모든 염려와 무거운 짐을 주님 발 앞에 내려놓사오니, 하늘의 평강으로 저희의 심령을 가득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 사도신경

<찬송> 438장 / 내 영혼이 은총입어

<기도> 최길환 장로

<성경봉독> 창세기 12장 1-3절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2)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설교> 하나님의 부르심
말씀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를 사랑하시어, 이 복된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염려와 분주한 마음은, 이 시간 다 내려놓게 하여 주시고 저희의 귀와 마음을 열어주시어, 주님이 주시는 음성을 있는 그대로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선포되는 말씀이 상하고 지친 저희의 심령을 어루만져 주시는 치유의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고 남은 한 주간 세상을 살아갈 빛과 소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히 인도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혹시, 예배의 자리에 나오시면서 무거운 짐을 그대로 지고 오신 분이 계십니까? 매일 반복되는 삶의 무게에 어깨가 짓눌리고,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홀로 걷는 것처럼, 내일을 기대할 소망마저 희미해져 가는 깊은 절망의 골짜기를 지나고 계신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내일을 바라보며,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하는 서글픈 질문들이 마음속을 맴돌고,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면, 오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 속에서 만나는 아브람의 첫 모습은, 사실 우리가 상상하는 위대한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창세기 12장이 그를 소개할 때, 그는 이미 75세의 노인이었습니다.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기에는 너무나도 늦어버린 것 같은 나이입니다.

게다가 그는 이미 한번의 큰 이동을 경험한 뒤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데라를 따라, 본래 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목적지인 가나안에 이르지 못하고, ‘하란’이라는 곳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머물던 하란은 아마도 교통과 상업이 발달한 아주 살기 좋은 도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람은 그곳에서 낯선 이주민으로 시작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곳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안정적인 삶의 터전을 일구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익숙하고, 모든 관계가 편안하며, 내일의 삶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안전한 땅. 어쩌면 그는 이제 더 이상의 변화를 원치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낯선 땅까지 와서 이만큼 이뤘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이제는 여기서 조용히 남은 생을 보내면 되겠다.’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현실에 안주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아브람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저마다의 ‘하란’에 살고 있습니다. 꼭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더라도, 우리는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떨치기 어려워합니다. 지금의 직장, 지금 살고 있는 동네, 매일 만나는 사람들, 반복되는 생활 패턴. 때로는 불평하고 지겨워하면서도, 우리는 이 익숙한 울타리를 떠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이 울타리 안에서는 비록 큰 기쁨이나 감격은 없을지라도, 적어도 감당 못 할 위험이나 예측 불가능한 고통은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안도감이 우리를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곧 불확실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매일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정작 그 삶의 궤도를 바꾸는 것에는 엄청난 저항감을 느낍니다. 아브람은 바로 그 익숙하고 안전한 땅, 하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평온한, 어쩌면 침체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아브람의 일상에,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2:1)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여러분, 하나님의 이 음성은 부드러운 권유나 제안이 아닙니다. ‘한번 떠나보는 게 어떻겠니?’ 하고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거부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단호하고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너의 고향, 너의 친척,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이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사회에서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자, 안전망이며, 존재의 뿌리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가 의지하고 있는 모든 관계와 소유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브람에게 그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아브람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현재를 포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계획할 때, 현재 내가 가진 것들, 나의 능력, 나의 경험, 나의 인간관계, 나의 재산 같은 것들을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내가 가진 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현재를 잃으면 미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도 같은 마음이었겠죠. ‘아니, 이 나이에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이 살기 좋은 하란을 떠나라고요? 제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 모든 것을 이루었는데, 이 재산과 가축들은 다 어떡하고요? 이 집 대출금도 이제 막 갚았는데… 무엇보다, 왜 하필 저입니까?’ 그는 밤새 잠 못 이루며 고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기쁨과 영광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거대한 혼란과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의 고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정직하게 선 모든 인간이 겪는 지극히 당연하고 솔직한 갈등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다가올 때가 있지 않습니까? “네가 먼저 용서해라”, “그것을 내려놓아라”, “이제 그만 순종해라”. 그 말씀이 얼마나 우리를 불편하게 할 때가 많습니까? 아브람은 바로 그 거대한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아브람을 움직이게 했을까요?
그를 두려움에 주저앉히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떼게 만든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것은 바로 ‘명령’ 뒤에 따라오는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2절과 3절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12:2-3)
2)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떠나라’는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떠남을 통해 이루실 놀라운 비전과 약속을 함께 주셨습니다. 아브람의 여정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상실의 여정이 아니라,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것을 얻게 될 약속의 여정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막막한 질문에서 벗어나 ‘과연 나에게 가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누구신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하게 됩니다.
문제는 내 눈앞에 펼쳐진 환경이 얼마나 암담한가가 아니라, 그 너머에서 일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내가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는 위대한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누가 우리에게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고 확신에 차서 약속할 수 있습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지만, 그것은 덕담일 뿐 약속이 아닙니다. 세상은 치열하게 경쟁해서 복을 쟁취하라고 우리를 부추기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을 얻기 위해 죽도록 애쓰면서도, 마음속에는 늘 ‘실패하면 어떡하지?’, ‘넘어지면 끝나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포하십니다. “복은 네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복은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다. 복의 근원은 나, 여호와에게 있다.” 이 음성을 듣고 믿는 순간, 우리의 삶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들이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걸을 때, 때로는 세상의 것들을 잃어버리고 손해 보는 것 같아 억울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길 위에 참된 복을 예비해 두셨다고 약속하십니다. 세상이 말하는 ‘대박’과 ‘플렉스’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복, 영원한 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너는 복이 될지라(개역개정)"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을 받는 존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 그 자체가 되어, 복을 나누어주는 통로가 되리라는 엄청난 약속입니다. 이것은 아브람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그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브람의 순종은 단순히 그의 개인적인 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포함한 ‘땅의 모든 족속’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거룩한 통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란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사라지고, 떠나야 할 이유만이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브람의 이야기는 수천 년 전 중동의 어느 한 노인의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바로 오늘, 힘들고 지친 삶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생생한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부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광야에서 양을 치던 80세 노인 모세를 부르셨고, 가족에게조차 무시당하던 어린 소년 다윗을 부르셔서 위대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배하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나의 하란’은 어디입니까? 그것은 과거의 상처일 수 있습니다. ‘나는 안돼’라고 스스로를 가두는 패배감일 수도 있습니다.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는 미움의 감옥일 수도 있고,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던 낡은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안정된 직장이나 인간관계, 심지어는 죄악된 쾌락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익숙한 절망과 안주함으로부터 떠나라. 내가 너에게 보여줄 새로운 삶,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나아가라.

물론 아브람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망설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이 길이 맞습니까? 저에게 작은 증거라도 하나 보여주시면 제가 큰 믿음으로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경우 침묵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증거를 보고 따르는 확인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7절은 모세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11:27)
27)믿음으로 모세는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같이 여기고 인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보이는 것을 따라가는 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 같이’ 믿음으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보여주셔야 가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실 것을 믿고 가는 길입니다.


힘든 삶을 살아가고 계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 아무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복의 통로’로 사용하기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결단하길 원합니다. 계속해서 익숙한 하란의 성벽 안에 머물러 계시겠습니까? 아니면 두렵고 떨리지만,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으시겠습니까? 그 길은 모든 것을 알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 길의 끝에는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여정의 모든 순간 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고 함께 걸어가실 것입니다. 이 시간, 세상을 향해 있던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란에 주저앉아 있던 우리의 발을 들어 믿음의 길, 순종의 길로 한 걸음 내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지치고 상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반복되는 일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우리가 머물러 있는 ‘하란’이 얼마나 벗어나기 힘든 곳인지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아브람을 부르셨던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떠나라,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너를 복의 통로로 삼으리라” 하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오니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눈에 보이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신뢰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 낡은 습관의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께서 보여주실 새로운 땅을 향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이 때로 외롭고 힘들지라도,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손을 붙잡고 동행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우리의 삶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송> 370장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폐회>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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