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8일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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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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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8 “수요 예배 순서” 올립니다.
1.묵상:<시125편1-5>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든든해 시온 산과 같을 것입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둘러싼 것처럼 여호와께서도 그 백성들을 지금부터 영원히 둘러싸실 것입니다.
의인들에게 분배된 땅 위에 악인들의 힘이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의인들이 악인들의 손을 빌어 악을 행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오 여호와여, 선한 사람들과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소서.
그러나 굽은 길로 돌아선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내쫓아 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위에는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2.기원:
3.신앙 고백
4.친양: 23장 “만 입이 내게 있으면”
5.기도 인도: 명 현옥 집사
6.성경 봉독: 데살로니가 전서 1장 2-10절
7.말씀 선포: “주님을 본받는 자”
오늘의 본문 성경, 살전 1:2-10의 말씀을 근거로 가정의 달 Series-IV, “주님을 본받는 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살전 1:2-10>
(2)우리가 기도할 때 여러분을 말하며 여러분 모두로 인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는 끊임없이
(3)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4)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들이여, 우리는 여러분이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5)이는 우리의 복음이 여러분에게 단순히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 가운데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을 위해 어떤 사람이 됐는지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6)또 여러분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이 주신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7)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됐습니다.
(8)주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시작돼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의 소문이 방방곡곡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9)그들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환영을 받았는지 우리에 대해 친히 보고하고 또한 여러분이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하늘로부터 임할 그분의 아들을 기다리는지 보고합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시며 다가올 진노에서 우리를 구원해 내실 예수십니다.
인도의 위대한 정치인이었던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의 일화입니다.
그는 비록 부모의 영향으로 힌두교도가 되었지만, 그의 사상은 박애정신(博愛精神)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는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여인은 간디 앞에 무릎을 꿇고 아들을 도와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선생님, 제 아들을 도와주세요. 아들이 설탕을 너무 좋아해요. 건강에 나쁘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안 들어요. 그런데 아들이 간디 선생님을 존경해서 설탕을 끊으라고 하면 끊겠다는군요.” 간디는 소년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도와드릴 테니 보름 뒤에 다시 아드님을 데려오십시오.” 그러자 그 여인은 “저희는 선생님을 뵈러 아주 먼 길을 왔습니다. 그냥 돌려보내지 마세요. 제 아들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고 한마디만 해 주세요.”라고 간청했습니다. 간디는 다시 한 번 소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보름 뒤에 다시 아드님을 데려오십시오.” 어쩔 수 없이 여인은 아들을 데리고 돌아갔습니다. 보름 뒤, 그 여인은 다시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간디는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설탕을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치니 먹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
그 여인은 간디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보름 전에 제가 아들을 데리고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왜 보름 후에 다시 찾아오라고 하셨습니까?” 간디가 대답했습니다.
“실은 저도 설탕을 좋아합니다. 보름 전 그 날도 저는 설탕을 먹고 있었거든요. 아이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고 하기 전에 제가 먼저 설탕을 끊어야 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예화도 많을 텐데 굳이 이교도인 간디의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교도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도 지도자나 앞선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본이 되는 삶’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도 그러합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대통령 후보자나, 정부의 각료를 세우는 일이 너무도 어려워 보입니다. ‘도대체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없을까?’라는 생각까지도 하게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정직하고 신실한 삶으로 본(本)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주었다.”(요 13:15)고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들이 되십시오.”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3:17절에서는 “형제들이여, 모두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는 것처럼 그렇게 행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라고 말씀합니다.
이 성경 말씀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본(本)을 통하여 전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달에 주시는 말씀의 제목을 “주님을 본(本)받는 자”라고 정하였습니다.
‘본’이란 원래 ‘본보기’의 준말입니다. 그 뜻은 “본보기가 될 만한 방법”의 의미입니다.
‘본(本)이 되라.’는 주제는 자주 언급된 낯익은 주제입니다. 자주 언급되는 주제일수록 중요한 것이며, 잘 실천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정말 중요한 내용인데 잘 실천되지 않으니 더 많이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本)”이 되는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실천적 삶에 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보다 더 나아가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본을 보이는 삶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 같은 그런 삶이며,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6절에서 말씀하시는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1.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AD 51-52 년에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바울 사도의 따뜻한 배려로 가득합니다. 어려운 환경을 만난 자녀를 염려하며 그들을 깊이 생각하는 부모 심정의 편지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궁금해 하는 교리 - 죽은 자의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 등. - 에 대하여 정성어린 답이 들어 있습니다. 편지의 서론인 본문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들이 속해 있는 마케도니아 지역과 아가야 지역에 까지 믿는 자의 본이 되어 있음을 칭찬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과정에서부터 그들이 가진 믿음과 소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이러한 믿음의 본은 결국 주님과 사도 바울을 본받은 것이었습니다.
본문 6절과 7절 말씀입니다. “또 여러분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이 주신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됐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본이 된(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단순한 의미로 볼 때 ‘본(本)이 된다는 것’은 ‘모범적인 삶’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학교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때 상을 주면서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 상을 수여합니다.’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직장 공동체나 사회생활에서도 그들의 기준에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때에 그 공로를 기리거나 상을 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본문 3절을 보시면,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한 구절 말씀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어떤 삶으로 모범이 되었는지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이 세 가지는 본질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교리가 아니라 교리를 생활 속에서 나타낸 실절적인 삶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과 바울 전도단이 이론적인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신앙을 전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본문 5-7절을 봅니다.
(5)이는 우리의 복음이 여러분에게 단순히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 가운데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을 위해 어떤 사람이 됐는지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6)또 여러분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이 주신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7)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됐습니다.
(5)절에서
그들이 전한 복음이 말로만 그들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바울 전도단이 어떻게 신앙의 본이 되었는지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말씀 안에서 예수님과 바울 전도단의 삶을 본받았으며,
또한 7절에서는
자신들이 본받은 삶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오늘까지 전수되어 온 방법이며 표본입니다.
1865년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이 나라에 처음 전해 준 한자 성경으로 복음이 한국교회는 세상에서 본이 되는 삶으로 복음을 전해왔습니다. 6.25 전쟁 후 나라가 복구되고 경제성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때만 해도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서 본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삶이 부유(富裕)해지면서부터 기독교는 신앙의 본질인 ‘삶의 신앙’을 잃어 버리고 ‘이론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에 빠져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삶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도움에 매달렸지만, 삶이 부유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간섭으로 여겨지고 거추장스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신앙의 형식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15-17절입니다.
(15)나는 네 행위들을 알고 있는데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바란다.
(16)네가 이렇게 미지근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으니 내가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낼 것이다.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풍족해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 너는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사람임을 알지 못한다.
미지근한 신앙은 삶이 따르지 않는 형식적인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오늘의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指彈)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서 형상화시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디(Dwight L. Moody)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 사람 중 하나가 성경을 읽으면 나머지 아흔 아홉은 그리스도인을 읽는다.”
2. 어떻게 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생활에서 선행을 이루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런 것은 세상 사람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본입니다.
본문 9, 10절을 봅니다.
(9)그들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환영을 받았는지 우리에 대해 친히 보고하고 또한 여러분이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하늘로부터 임할 그분의 아들을 기다리는지 보고합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시며 다가올 진노에서 우리를 구원해 내실 예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 대하여 바울 전도단에게 하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궁금해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보여야 할 본은 ‘우리의 구원과 소망에 관한 삶’입니다.
베드로전서 3:15, 16절 말씀입니다.
(15)오직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여러분이 가진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16)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이는 여러분이 비방을 받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비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따라가면서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로 구원에 관한 소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어봅니다.
작은 여객선이 운항을 하던 중 날씨가 거칠어지면서 바다에 거센 바람이 불면서 배가 나뭇잎처럼 파도에 흔들립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로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만은 난간을 꼭 잡고 서서 흔들리는 배를 즐기기라도 하듯이 태연했습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곁에 있던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무섭지도 않니?” “아니요. 아주머니는 무서운가요?” “무섭다마다. 죽을 지경이다.”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우리 아버지가 이 배의 키를 잡고 계시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일등 선장이셔요.” 아주머니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 아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아이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는 분이에요. 걱정 마세요. 아주머니도 무사하실 거예요.”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사람이 찡그린 얼굴, 걸핏하면 걱정하고, 부정적인 말, 신뢰를 주지 못하는 행동 등. 생활 속에서 이런 모습이라면 아무도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불신하는 삶을 돕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믿는 사람은 그 말이나 행동이 흔들림 없이 평온합니다. 모두가 걱정하고 두려워 할 때 오히려 그들을 격려하며 평온한 모습을 보이며, 남들이 싫어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즐겁게 할 때에 사람들은 궁금해 합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뭐지?”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대가 젊다고 해서 누구라도 그대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 대해 믿는 사람들의 본이 되어라.”(딤전 4:12)라고 가르치십니다.
이처럼 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삶을 이루는 것이며, 예수님처럼 산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Amen !!
8.찬송: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9.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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